그날 저녁 동네의 육십 이상 된 노인이 있는 집에는 죽은 지 이틀이나 되어서 검푸르게 빛 변한 돼지고기 두 근 혹은 세 근씩이나 세찬이란 명목으로 배달되었다. 북어 한 쾌 못 사고 과세를 하는 그네들에게…
무기명 투표로 하는 데도 대필로 쓴 사람이 많았다. 여러 해 가르쳐서 한곡리 아이들은 남녀를 물론하고, 글자를 모르는 아이가 거의 하나도 없게 되었건만, 어른들은 반수 이상이 계통문( 通文)에 제 이름을 쓴 것도 알아보지 못하는 까막눈들이다.
매우 긴장된 공기 가운데 개표를 하게 되었다.
투표된 점수를 적어 들고 이름을 부르는 구장의 손과 입은 함께 떨렸다.
“강기천 씨 육십 칠 점!”
손톱여물을 썰고 앉았던 기천의 얼굴에는 남의 눈에 띄지 않을 만한 안심의 미소가 살짝 지나갔다.
“박동혁 씨 삼십 팔 점!”
하고 나서,
“이 나머지는 몇 점씩 되지 않으니까 읽지 않겠소.”
하고 구장은 목소리를 높여 투표한 사람들을 둘러보며,
“여러분의 추천으로 당 면의 면협 의원이요, 금융조합 감사요, 학교 비평의원인 강기천 씨가 절대 다수로 우리 한곡리 진흥회의 회장이 되셨소이다.”
라고 선언을 하였다. 내빈들 측에서 박수소리가 일어났다. 동혁은 의미 깊은 미소를 띄우고 앉아서 박수하는 광경을 바라보는데,
“반대요!”
“썩은 돼지고기가 투표를 한 게요-”
“암만 투표가 많아도 그건 무효요 - 협잡이 있소!”
동화와 정득이가 번 차례로 일어서며, 얼굴이 시뻘개 가지고 고함을 지른다. 회관에 가득 찬 사람들의 시선은 농우회원들이 몰려 앉은 데로 쏠렸다.
기천도 그편을 힐끔 돌아다보는데, 동혁은 어느 틈에 아우의 곁으로 갔다. 동화는 눈을 부릅뜨고 더한층 흥분이 되어서,
“아무리 우리 동네에 사람이 귀하기로서니 고리대금업자가 아니면 회장감이 없단 말이요? 주막거리 갈보년허구 상관을 하다가 머슴놈헌테…”
하고 소리를 버럭버럭 지르다가, 형에게 입을 틀어막히듯 해서 말끝을 맺지 못하며 주저앉는다. 동혁은 아우의 내두르는 팔을 잡아 누르고 무어라고 귓속말을 하다가 손목을 잡고 밖으로 끌어냈다. 동화는 뻗딩기다 못해 끌려 나가면서도,
“너 이놈, 어디 회장 노릇을 해먹나 두고 보자! 이건 우리 회관이다. 피땀을 흘리며 지은 집이야!”
하고 고래고래 지르는 소리가 들리는 대로, 머리를 떨어뜨리고 앉은 기천의 얼굴은 노래졌다 하얘졌다 한다. 장내는 수선하고 살기가 떠도는데, 구장은,
“여러분, 조용하시오. 성치 못한 사람의 말을 탓할 게 없소이다.”
하고 내빈들의 긴장된 얼굴을 둘러보며 연방 허리를 굽힌다.
동혁은 갑산이와 정득이를 불러내어,
“이 사람들아, 혈기를 부릴 자리가 아니야. 어서 나가서 동화가 또 못 들어오게 붙들고 있게.”
하고 엄중히 명령을 한 뒤에 다시 회관으로 들어갔다.
기천은 여러 사람에게 눈총을 맞아서, 얼굴 가죽이 따가운 듯 고개를 수그리고 있다가 발딱 일어서더니,
“온, 동리에 미친놈이 있어서, 창피해 견딜 수가 있어야지.”
하고 중얼거리다가,
“몸이 불편해서 먼저 실례합니다.”
하고 내빈석을 바라보고 나를 좀 붙들어 달라는 듯이 허리를 굽히고는 앞에 앉은 사람을 떠다밀며 나간다.
“아, 어딜 가세요?”
“교오상(강 선생), 왜 이러시오? 어서 이리와 앉으시지요. 주착없는 젊은것들이 함부로 지껄이는 말을 관계할 게 있소?”
하고 면장과 구장은 기천의 소매를 끌어들인다. 기천은,
“내가 이까짓 진흥회장을 하고 싶댔소? 불러다 앉혀 놓고 욕을 뵈니, 온 그런 발칙한 놈들이…”
하고 한사코 뿌리치는 체하는 것을,
“자, 두말 말우. 지금버텀 교오상이 회장이 됐으니, 역원들이나 선거를 하시요.”
하고 면장은 명령하듯 하고 회장석에다 기천을 앉혔다.
기천은 마지못해서 붙들려 들어온 체하면서도, 독을 못 이겨 쌔근쌔근한다. 동혁이도 억지로 흥분을 가라앉히며 기천의 하는 꼴을 바라다보았다.
유력한 편의 지지로 기천은 몇 번 사양하다가 못이기는 체하고 회장의 자리로 나갔다.
“애헴, 애헴”
하는 밭은기침 소리는 염소라고 별명을 듣는 저의 아버지의 목소리와 똑같다.
“에에, 본인이 박학천식임을 불구하고 회장의 책임을 맡게 된 것은 여러 동민이 자별히 애호해 주는 덕택인 줄 아오. 굳이 사퇴하는 것은 도리어 여러분의 호의를 어기는 것 같아서 부득이 이 자리에 나오게 된 것이요. 미력이나마 앞으로는 관청에서 지도하시는 대로, 우리 농촌의 진흥을 위해서 전력하겠으니, 여러분도 한맘 한뜻으로 나아가 주기를 바라는 바이요.”
새로운 회장이 일장의 인사를 베푼 후, 금융조합 이사며 군 서기와 기타 내빈들의 '이러니만큼' '저러니만큼'식의 형식적인 축사가 끝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