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준이는 삼대째 강도사네 행랑살이를 하다가 언사가 불공하다고 기천에게 작대기 찜질을 당하고 쫓겨나서 그 원한을 품고 잔뜩 앙심을 먹고 벼르는 판에, 외나무 다리에서 호되게 걸려들었던 것이다.

기천은 아주 초죽음이 되었다가 새벽녘에야 간신히 저의 집으로 기어들었다. 머슴놈에게 얻어맞았다기는 창피해서,

'취중에 자전거를 타다가 이 봉변을 했다'

고 꾸며대고, 산골을 캐어 오너라, 약을 지어 오너라 하고 야단법석을 하였다. 분한 생각을 하면 용준이란 놈의 배를 가르고 간을 날로 씹어도 시원치 않겠지만 창피한 소문이 날까 보아 단골 버릇인 고소(告訴)도 못하고 속으로만 꽁꽁 앓고 있었다.

그러나 그 소문은 온 동네는커녕 읍내까지도 좌악 퍼져서,

“아이고 잘코사니나! 그래도 뼈다귀는 추렸다든가?”

하고 고소해서들 하는 소리를, 제 귀로만 듣지 못하고 있었다.

그러다가 면역소의 지휘로 음력 대보름날을 기회 삼아 한곡리 진흥회의 발회식을 열게 되었다. 낮에는 편을 갈라 윷놀이를 하게 되었는데, 그때까지도 갑산이와 동화는 회관의 열쇠를 내놓지 않았다. 발회식만 할 테니 임시로 빌려 달라고, 기천이가 사람을 줄달아 보내도,

“천만의 말씀이라고 여쭤라.”

하고 끝끝내 버티었다. 기천이가 읍내로 장거리로 돌아다니며 '우리 한곡리 진흥회 회관은 미상불 다른 동네 부럽지 않게 미리 지어 놓았다'고 제 손으로 짓기나 한 것처럼 생색을 뿌옇게 내는 것이 깨물어 죽이고 싶도록 얄미웠던 것이다.

집에서 형제가 가마니를 치고 있던 동혁은 틈틈이 손을 쉬고 눈을 딱 감고는 대세를 살펴보았다.

'허어, 이러다간 큰일나겠군. 양단간에 규정을 지어야지'하고는

“얘 동화야!”

하고 아우를 넌지시 불렀다.

“너 이제 고만 회관 열쇠를 내놔라. 누구한테든지 저의 주장을 굽혀선 못 쓰지만, 일이란 그때그때 형편을 봐서, 임시변통을 하는 수도 있어야지, 너무 곧이곧대로만 나가면 되려 옭히는 경우가 있느니라.”

하고 타일러도 동화는 머리를 끄덕이지 않았다.

“넌 날더러 물렁 팥죽이라고 별명을 짓지만, 형도 생각하는 게 있어서 그러는 거야. 들어 봐라, 입때까지는 우리 청년들 열 두 사람만이 단합해서 일을 해 오지 않았니? 한 일도 없다만… 그런데 이번에 기회가 좋으니, 우리 온 동네 사람이 다 모이는 김에, 우리의 운동하는 범위를 훨씬 넓혀서 한번 큼직하게 활동을 해 보자꾸나. 인심이 우리한테로 쏠릴 건 정한 이치니까, 결국은 우리들이 주장하는 대로 될 게 아니냐.

진흥회란 무슨 행정기관도 사법기관도 아니고, 그저 일종의 자치기관 비슷한 게니까, 웬만한 일은 우리 손으로 다 할 수가 있단 말이다. 아무튼 강기천이 한 사람을 상대로 끝까지 다투는 동안에 동네 일은 아무 것도 안되고, 그 애를 써서 지은 회관도, 우리 맘대로 쓰지를 못하니, 실상은 우리의 손해지 뭐냐? 그러니 모든 걸 형한테 맡기고, 문을 열어 놔라. 잘 질 줄을 아는 사람이라야 이길 줄도 안단다.”

하고 진심으로 권하였다. 동화는 그제야 마지못해서,

“난 몰루. 형님꺼정 아마 마음이 변했나 보우.”

하고 갑산이와 번 차례로 차고 다니던 열쇠를 끌러서 기직 바닥에다가 퉁명스러이 던졌다.

저녁 때에야 회관 문은 열렸다. 연합진흥회장인 면장과 면협 의원들과, 주재소에서 부장이 나오고, 금융조합 이사며, 근처의 이른바 유력자들이 상좌에 버티고 앉았다. 한곡리에 거주하는 백성들은 매호에 한 사람씩 호주(戶主)가 참석을 하게 되었는데, 상투는 거의 다 잘랐지만 색옷을 장려한다고 면서기들이 장거리나 신작로에서 옷 입은 사람만 보면 잉크나 먹물을 끼얹기 때문에 미처 흰 두루마기에 물감을 들여 입지 못한 사람은, 핑계 김에 나오지를 않았다. 그래도 대동의 큰 회합이니만큼 회관이 빽빽하게 들어찼다.

기천이는 맨 나중에 단장을 짚고 기엄기엄 올라왔다. 그 푼더분하지 못하게 생긴 얼굴은 노랑꽃이 피었는데, 머슴에게 얻어맞은 자리가 몸을 움직이는 대로 결리는지, 몇 발짝 걷다가는 가슴에다 손을 대고 안간힘을 쓰며 낙태한 고양이상을 한다. 그러면서도 면장과 기타 공직자에게 최경례를 하듯이 허리를 굽히는 것은 물론, 동민들이 인사를 하면 전에 없이 은근하게 답례를 하고, 그 중에도 말마디나 할 만한 사람에게는 얄궂은 추파까지 던진다.


기천이가 맨 앞줄에 가 앉자, 구석에 한 덩이로 뭉쳐 앉은 회원들의 눈은 빛났다.

기천의 사촌인 구장이 개회사를 하고, 면장이 일어서서 진흥회의 필요와 역사와 또는 사명을, 거의 한 시간 동안이나 늘어놓은 뒤에, 순서를 따라 회장을 선거하는 데 이르렀다. 임시 의장인 구장이 일어나서,

“지금부터 새로 창립된 우리 동네 진흥회를 대표할 회장을 선거하겠소. 물론 연령이라든지 이력이나 재산 같은 것을 보아 회장 될 만한 자격이 충분한 분을 선거할 줄 믿는 바이오.”

하고 저의 사촌형을 곁눈으로 흘겨보며,

“자, 그럼 간단하게 호명을 해서, 거수로 결정을 하는 것이 어떻겠소.”

하고 동민에게 형식적으로 묻는다. 그러나 농우회의 회원들밖에는 호명이라든지, 거수라든지 하는 말조차 못 알아듣고서 어리둥절하는 사람이 태반이다.

“좀 시간은 걸리지만 신중히 선거할 필요가 있으니, 무기명으로 투표를 합시다.”

하고 동혁이가 일어서며 반대를 하는 동시에 동의를 하였다.

“찬성이요 - ”

“찬성이요 - ”

소리가 이 구석 저 구석에서 일어났다.

구장이 기천의 이름을 부르고 찬성하는 사람은 손을 들라고 하면 기천의 면전이라, 속으로는 마땅치 않으면서도, 면에 못 이겨 남의 뒤를 따라 손을 들게 될 것을 상상한 까닭이다.

동혁이 자신은 결코 경쟁자는 아니면서도 정말 민심이 어느 편으로 돌아가나? 그것을 참고로 보려는 것이었다.

또는 기천이가 전례에 없이, 정초라고 동리의 모모한 사람을 불러다가 코들을 골도록 술을 먹였고 이러한 수단까지 쓴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수단이란 다른 것이 아니다. 바로 섣달 대목에 기천의 집의, 이십 원을 주마 해도 안판 큰 돼지가, 새끼를 낳다가 염불이 빠져서 죽었다. 저의 집에서는 꺼림칙하다고 먹는 사람이 없고, 장거리의 육지기를 불러다 팔려니 죽은 고기라고 단돈 오 원도 보려고 들지를 않는다. 기천은 큰 손해를 보아서 입맛은 썼으나 썩어가는 고기를 처치할 것을 곰곰 생각하던 끝에, 묘안(妙案)을 얻고 무릎을 탁 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