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성식에 와 달라는 영신의 청첩을 받은 동혁은 저의 일과 조금도 다름이 없이 기뻤다.

'아무렴 가구 말구. 오지 말래두 갈 텐데…'

하고 혼잣말을 하면서 벽에 붙은 달력을 쳐다보았다.

'내일은 떠나야겠는걸' 하고 노자를 변통할 궁리를 하였다. 추수라고는 하였지만, 잡곡을 섞어 먹는대도 내년 보리 때까지 댈 양식조차 없었다. 간신히 계량이나 하던 것을 그야말로 문전의 옥답을 반나마 팔아서 강도사집의 빚을 청산하였기 때문에, 풍년이 들었어도 광 속에는 벼라고 겨우 대여섯 섬 밖에는 들어가지 못하였다.

각종 세금과 비료대와 곗돈과 온갖 추렴이며 동화가 각처 주막에 술값을 진 것과 일 년 동안에 든 가용을 따지고 보면, 그 벼 몇 섬까지 마저 팔아도 회계가 닿지를 않는다. 노인을 모신 사람이 생선 철이 되어도 비린내조차 맡아보지를 못하고 제법 광목 한 필 사들인 적이 없건만 씀씀이는 논 섬지기나 할 때보다 더 줄지를 않는다. 그것은 동혁이가 집안 일에만 매어달리지 않는 까닭도 다소간은 있겠지만, 소위 자작농이 그러하니, 남의 소작을 해먹는 사람들은 참으로 말이 못된다.

회원 중에도 건배는 실농군도 되지 못하지만 남의 논 한 마지기도 못 얻어 하는 사람이라 가을이 원수 같았다.

“난 타작마당에서 빗자루만 들고 일어서는 꼴을 당하지 않으니까 배포만은 유하거든.”

하고 배를 문질러 보았지만, 그 뱃속에서는 쪼르륵 소리가 나는 것이다. 실상은 삼사 년씩 묵은 빚만 대추나무에 연 걸리듯 해서 어떻게 해야 할는지 도무지 엄두가 나지를 않는 모양이다. 그는 입버릇처럼,

'노름하다 밤샌 건 제사지낸 셈만 치구 돈 내버린 건 도둑맞은 셈만 치면 고만이지.'

하고 제 손으로 패가한 것을 변명하며 낙천가의 본색을 발휘하지만, 실상은 어린것들의 작은 창자조차 곯리는 때가 많다.

생활의 안정을 얻지 못하는 그는 동네 일을 한다고 덜렁거리고 다니기는 해도, 노상 횃대에 오른 오리 모양으로, 어느 때 어느 바람에 불려서 어디로 떠달아날지 모를 것 같은 기색이 올 가을부터 현저히 보일 때, 유일한 친구인 동혁의 마음은 어두웠다.

제 코가 석자 가웃이나 빠져서, 물질로 도와 줄 수는 없는데, 그렇다고 끼니를 굶고도 먹은 체하고 농우회 일을 보는 것이 여간 마음 아픈 것이 아니다. 회의 일만 해도 그렇다. 회원들이 그렇게 집안의 괴로움을 무릅쓰고 일을 하건만, 실상 생기는 것이라고는 드러내어 말할 것이 못된다.

공동답의 수확은 작년보다 대여섯 섬이나 늘었다. 개량식으로 지은 보람이 있어 재미가 나고 구식만 지키는 사람들에게 경종도 되지만 한 마지기에 석 섬 마수나 타작을 하였대도 반은 답주인 강도사집으로 들어가니 그것을 나누면 한 사람 앞에 한 가마니도 차례가 가지 못한다. 그것이나마 회관의 비용을 쓰려고 팔아서 저금을 하는 것이니 실속을 따지고 보면 헛수고를 한 셈이다. 회원들은,

“이거 너무 섭섭해서 안됐는걸.”

하고 겨우 고무신 한 켤레와 삽 한 자루씩을 사서 나누었을 뿐이다.

그러나 한 길이나 되는 볏단을 조리개로 큼직하게 묶어서 개상에다가 둘러메치자, 싯누런 몽근벼가 와르르 쏟아질 때 회원들은 재미가 쏟아졌다. 도급기(稻扱機)의 으르렁거리는 소리가 바심꾼들의,

“어거 - 띠 윗- 윗-"

하고 태질을 하는, 그 기운찬 소리를 들을 때 황금가루로 외를 쌓아 놓은 듯한 볏무더기 속에 말을 폭 파묻고 벼를 끌어 담으며,

“…두 말이요 - 두말. 서 말이요 - 서 말 - .”

하는 처량스러운 듯한 소리를 들을 때만은,

“아이구 이걸 다 남을 주다니…”

하고 분한 생각이 들어 한탄을 마지않으면서도, 한편으로는 대견하기도 해서 작다란 걱정을 잊을 수 있었다.

…노자를 변통할 궁리를 하던 동혁은 '적어도 십 원 한 장은 가져야 할 텐데…' 하고 입맛을 다셨다. 그러나 언뜻 눈앞에 나타난 것은 기만의 얼굴이었다. 그러나,

'치사하게 그 자한테 돈을 취해 가지고 가긴 싫다' 하고 튼튼한 두 다리로 걸어서, 산을 넘고 물이라도 건너갈 결심을 하였다.

낙성식 전날 영신은 십 리도 넘는 자동차 정류장까지 마중을 나갔다. 의외로 근친을 하였기 때문에, 그럭저럭 사흘 동안이나 빠져서 준비를 하느라고 잠시도 떠날 사이가 없건만, 별러별러 찾아오는, 더구나 청해서 오는 사랑하는 사람을 앉아서 맞을 수는 없었던 것이다.

낮 차에서 헛걸음을 치고 돌아와서, '저녁 차에는 꼭 오겠지'하고 저녁 때 또다시 나갔다.

가슴을 조이며 자동차를 기다리는데 멀리서 엔진 소리가 들렸다.

영신은 신작로로 뛰어 나가며 손을 들었다. 차는 브레이크 소리를 지겹게 내며 우뚝 섰다. 동혁은 벌써 알아보고 뛰어내릴 텐데, 만원도 안된 승객을 훑어보았으나, 땅이 두 쪽으로 갈라져도 꼭 올 줄 믿었던 사람은 그림자도 없다. 영신은 실망 끝에 어찌나 화가 나는지,

'이놈아, 왜 그이를 안 태워 가지고 왔느냐?' 하고 운전수를 끌어내려 퍽퍽 두드려 주고 싶었다. 그는 그만 맥이 떨어져서 가로수 밑에 가 펄썩 주저앉아서, 거의 한 시간 동안이나 뻘겋게 노을이 낀 하늘만 원망스러이 쳐다보았다.

'못 오면 성실한 이가 전보래두 쳤으련만…' 하고 여러 가지로 추측도 공상도 해보다가 내왕 이십 리 걸음이나 곱배기를 쳐서 그만 풀이 죽어 가지고 어둑어둑할 무렵에야 집으로 돌아왔다. 공연히 짜증이 나서 학원에는 들르지도 않고 바로 하숙으로 갔다. 낙성식 준비라야 지도책을 펴 놓고 만국기를 헝겊 조각에다 물감 칠을 해서 달 것과, 상량할 때도 씁쓸히 지낸 목수며, 저와 함께 죽도록 애를 쓴 청년들을 점심이나 대접하려는 그 준비를 하는 것뿐이다.

소위 내빈이라고는 청하지도 않았으나 학부형들이나 모아 놓고 그 동안 경과를 보고하려는 것이다. 서울 연합회에는 청첩을 보내지 않을 수가 없어, 회장이 못 오면 간사라도 한 사람 보내달라고는 했으나, 속으로 오지 말았으면 하였다. 농촌을 이해한다고 하더라도 서울서 눈은 한껏 높은 하이칼라가 내려오면 보여줄 만한 것도 없거니와 대접하기가 거북할 것 같았다.

그런데 내빈의 총대표라고 할 만한 동혁이가 오지를 않으니(건배 내외와 농우회원들에게도 형식적으로 청하기는 하였지만) 낙성식이고 무엇이고 다 집어치우고 싶도록 부아가 났다. 내일 온대도 정각인 아침 열 시까지는 도저히 대어 들어올 수가 없지 않은가.

영신은 컴컴한 중문간에서

“원재 어머니!”

하고 불쾌히 부르며,

“서울선 아무도 안 왔어요?”

하고 물으면서 운동화를 벗어 던졌다. 서울로 통한 길은 다른 방향인데 그 길로는 원재를 보냈던 것이다. 집으로 들어오자 자기가 쓰는 방에 불이 켜진 것을 보고, '혹시 서울서 누가 왔나?'하고 물었는데, 아무 대답이 없다. 영신은,

“원재 어머니꺼정 어디루 갔을까?”

하고 입 속으로 꾸짖으며, 방문을 펄석 열고 들어서다가 깜짝 놀라 멈칫하고 뒤로 물러섰다.

“왜 서울서 오는 사람만 찾으세요?”

방 한 구석에 앉아서 각반을 풀다가 검붉은 얼굴에 웃음을 가득히 담고 돌아다보는 것은 동혁이다. 천만 뜻밖에 떡 들어와 앉은 사람은 틀림없는 동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