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것을 본 계집아이들은,
“내 주물러 드리께유.”
“선생님, 내 주물러 드리께유.”
하고 달려들어 다투어 가며 선생의 팔을 주무르고 다릿마디를 쳐준다.
영신은 마전을 한 통무명을 펼쳐 놓은 것같이, 달빛에 비치는 시내를 내려다보다가 소녀 시절의 생각이 어렴폿이 나면,
“얘, 우리 소꼽질하련?”
하고 사기그릇 깨진 것이나 조약돌을 주워 모아, 제단을 만들었다 허물었다 하기도 하고, 모래로 성을 쌓기도 한다.
“두껍아 두껍아, 헌 집 주께 새 집 다구.”
해 가며 도두룩하게 쌓아 올린 모래를 토닥토닥 두드리기도 한다. 그러면 참 정말 소녀와 같은 기분으로 돌아가서 지나간 그 옛날을 추억하느라고 비록 잠시나마 극도로 피곤한 것을 잊을 때도 있었다.
토역을 할 때에도 손이 째이면 맨발로 들어서서 흙을 이기고, 죽가래를 들고 진흙을 섬겨 주느라면 땀이 철철 흘러서 눈을 바로 뜰 수가 없었다.
동네 사람들은 틈만 있으면 모여들었다. 그러나 그네들은 집짓는 것을 조금이라도 거들어 주려고 오는 것이 아니요, 젊은 여자가 아슬아슬한 데까지 걷어 붙이고 상일을 하는 것이 신기해서, 구경차로 모여드는 것이다. 남은 죽기 기를 쓰고 일을 하는 것을 입을 헤에 벌리고 바라보는 것을 보고 '왜 저렇게 얼이 빠진 사람처럼 머엉하니들 섰을까'하고 혀를 끌끌 차면서도, 그는 비릿비릿하게 일을 도와 달라는 말은 한 마디도 안하였다. 그럭저럭 집을 짓기 시작한 지 한 달이나 지나갔다. 젊은 목수가,
'이런 일은 번갯불에 담배를 붙이듯이 해치워야지, 오래 끌수록 내 손해다.'
하고 다른 봉죽꾼들을 휘몰아서 일은 여간 빨리 진행이 되지를 않는다. 그래서 벌써 중방까지 꿰고 욋가지를 얽게 되었다.
이때까지 구경만 하던 동네 사람들도 영신이가 진종일 매달려서 일을 하는 것을 보고 매우 감동을 받아,
“우리가 사내 명색을 하구, 그대로 볼 수는 없네.”
하고 바심이 끝나자 와짝 모여들어서, 청솔가지를 꺾어다가 두툼하게시리 물매를 잡아 새를 올리며, 일변 초벽까지 끝이 났다.
그 중에도 부인친목계의 회원들은,
“채 선생님 혼자서 저렇게 일을 하게 내버려 뒀다간 참말 큰일 나겠구료. 집안 일은 못해두, 우선 저 집버텀 지어 놔야 맘을 놓겠수.”
하고 자기네 남편을 하나씩 끌고 와서 일이 부쩍부쩍 늘었던 것이다. 영신은 평생 소원이던 학원집이, 비록 설계한대로 되지는 않았어도 한 간 두 간 꾸며나가는 데 재미가 나서 여전히 침식을 잊고 지냈다. 늙으신 어머니를 그리워할 겨를도 없고, 토요일 저녁이면 무슨 일이 있든지 동혁에게 꼭꼭 써 부치던 편지도, 두 번씩이나 거르기까지 하였다. 그래서 동혁에게서는,
'너무 과도하게 노력을 하다가 병이나 나지 않았느냐?'
고 매우 궁금히 여기는 편지가 연거푸 왔다. 영신은 '아이, 내가 집 짓는 데만 절망구를 해서…'하고 어느 날 밤은 속눈썹이 쩍쩍 들러붙는 것을 참으면서, 그 동안의 경과를 소상히 적고 이제는 만날 날이 가까와온다는 기쁜 소식을 전해 주었다.
두 달 열흘 남짓해서 청석학원은 문패까지 걸게 되었다. 가장 돈이 많이 드는 내부의 수장은 손을 대지도 못하고 창에 유리도 끼지 못하였지만, 이제는 마루까지 놓았으니까 급한 대로 쫓겨간 아이들도 수용할 수는 있게 되었다.
아이들은 새 벽한 것이 미처 마르기 전부터 모여들었다. 그 아이들이 우리 속에서 뛰어 나온 토끼처럼 넓은 마루에서 깡충깡충 뛰고 미끄럼을 타고 뜀박질을 하다 못해서, 펄떡펄떡 재주를 넘으며 좋아서 어쩔 줄을 몰라하는 것을 볼 때, 영신은 기쁜 눈물에 옷깃을 적시는 것을 깨닫지 못하였다. 그 자리에 쓰러져 죽어도 눈이 감길 성싶었다.
낙성식을 하기 닷새 전을 기해서 영신은 동혁에게,
'무슨 일이 있든지 그 날 꼭 와 달라.'
는 편지를 썼다. 그러나 좋은 일에 마(魔)가 든다는 것은 이런 경우에 쓰는 말일까. 영신은 그 이튿날 아침 천만 뜻밖에도,
'모친 위독 즉래'
라는 급한 전보를 받았다.
그날밤으로 부랴부랴 길을 떠난 영신은 자동차에 시달린 몸을 기차에 실린 뒤까지도 놀란 가슴이 가라앉지 않았다.
기차는 그믐밤의 어둠을 가르며 북으로 북으로 숨가쁘게 달린다. 한 정거장 두 정거장이 휙휙 뒷걸음질을 쳐서 고향이 가까와 올수록, 불안과 초조는 점점 더해 가는데 앞에 앉은 사람이 누군지 거들떠보지도 않고 두 눈을 꽉 감은 채 생각에만 잠겼다.
'전보까지 쳤을 땐 암만해두 어머니가 돌아가신 거야'하는 방정맞은 생각까지 들었다. 그다지도 못 잊어 하시던 딸의 얼굴을 끝내 보지 못하고 외로이 숨을 거두는 어머니의 임종을 눈앞에 그려보니 쌓이고 쌓였던 묵은 설움이 북받쳐 올랐다.
김정근과의 혼인 일로 청석골까지 오셨을 때 이틀 밤을 울며 밝히시다가,
'넌 내 자식이 아니다'
하고 돌아서실 때의 그 쓸쓸하던 뒷 모양! 자동차가 떠날 때 차창을 스치는 저녁 바람에 한가닥 두가닥 휘날리던 서릿발 같은 머리털! 정처없이 굴러다니는 가랑잎처럼 마르고 찌들은 그 노쇠한 자태!
'아아, 그 얼굴이 마지막이로구나!'
영신은 차창에 이마를 들비비며 소리를 죽이면서 흐느껴 울었다. 저 하나 공부를 시키려고 육십이 넘도록 생선 광주리를 내려 놓지 못하시던 홀어머니를 다만 몇 달이라도 제 곁에 따뜻이 모시지 못한 생각을 할수록 저의 불효하였음이 뼈에 사무치도록 뉘우쳐졌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로는 무슨 병환이 드셨는지는 몰라도 노환일 것 같으면 갑자기 위독하다는 전보까지는 치지를 않았을 터인데 수산조합엔가 다니는 외삼촌이 한 집에 모시고 있으면서 여지껏 엽서 한 장 안해 주었을 리야 없지 않은가. 그럼 어느 해 여름처럼 뇌빈혈로 길거리에서 졸도나 하지 않으셨을까.
오만가지 생각이 머리 속에 들끓어서 영신은 잠시도 눈을 붙이지 못하였다. 창 밖의 그믐밤보다도 마음속이 더 캄캄한데 입술이 타도록 조바심이 나서, 좀 눕는 체하다가는 다시 일어나 앉았다 하는 동안에 기차는 북관 천리를 내쳐 달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