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니까 뒷일은 제게다만 맡겨 주시고 그 대신 제 말씀을 들어 주셔야 합니다.”

하고 동혁은 바짝 들러붙었다.

제 아무리 깐죽깐죽한 사람이라도 술이 잔뜩 취한데다가, 말을 안 들으면 당장에 저를 엎어 누를 듯한 형세를 보이는 동혁의 위품에는 한 손 접히지 않을 수 없었다. 신변의 위험을 모면하려는 것뿐 아니라, 제딴에는 술기운에 마음이 커져서,

“어디서 돈들이 생겨서 한몫 갚는다는 건가?”

하며 머리맡의 문갑을 열고 극비밀로 넣어 둔 치부책을 꺼내는데 열쇠가 제 구멍을 찾지 못할 만큼이나 수전증(手顫症)이 나서, 이 구멍 저 구멍 허투로 꽂다가 열었다.

동혁은 그 돈이 삼사 년 동안이나 죽을 애를 써서 모은 돈이라는 것을 설명하고 서류를 꺼내서 채권자가 적어 둔 것과 차용증서를 일일이 대조를 해서, 금액을 맞추어 본 뒤에 수건에 꼭꼭 싸서 허리에 차고 온 지전 뭉치를 꺼내더니,

“자아, 세 보시지요.”

하고 밀어놓는다.

기천의 눈은 버언해졌다. 담배진이 노랗게 앉은 손가락에 침칠을 해 가며 지전을 세어 보더니,

“이걸루야 빠듯이 본전밖에 안되네 그려?”

하고 변색을 한다. 동혁은 '이때를 놓치면 안 된다!' 하고 위엄 있게 기천을 똑바로 쏘아보며,

“아 아니, 그럼 오푼 변으로 놓은걸 변리까지 다 받으실 줄 아셨던가요? 법정 이자(法定利子)도 두 푼 오 리밖에 안되는데 그 사람들의 편리를 봐 줍시사구 제가 일부러 온 게 아니겠어요? 그 사람들이 안 내겠다고 버티면 어떡하실 텝니까? 그 여러 사람을 걸어 재판을 하려면 소송 비용이 얼마나 들지두 따져 보면 아시겠지요!”

하고 무릎이 마주 닿도록 더 부쩍 다가앉는다. 기천은 바윗덩이 만한 사람에게 짓눌린 것 같아서 '저놈이 여차즉하면 날 한 구석에다 몰아넣고 목줄띠라도 조르지 않을까?' 하고 속으로는 겁이 났다. 그러면서도,

“여보게, 내가 자선 사업으로 돈놀이를 하는 줄 알았나? 이제 와서 천 원 돈에 가까운 이자를 한푼도 받지 말라는 거야 될 뻔이나 한 수작인가?”

하고 실토를 하면서 앙버틴다. 동혁은 그 말에 정말로 흥분이 되어서,

“아, 그래 회장 체면에 앞으로도 고리대금을 해 자실 텝니까? 그만큼 긁어모았으면 흡족하지. 죽지 못해 사는 회원들의 고혈까지 긁고도 양심에 가책을 받지 않을까요? 그 돈인즉슨 조합에 근저당(根抵當)을 해놓고 한 푼도 못되는 변리로 얻어다가 오 푼씩 심하면 장변까지 논 게 아닙니까?”

하고 목소리를 버럭 높이며 목침을 들어 장판바닥이 움쑥 들어가도록 탁 내리쳤다. 그와 동시에 기천의 가슴도 쿵 하고 울렸다. 그래도 기천은 눈살을 잔뜩 찌푸리고 노랑수염만 배틀어 올리면서 꽁꽁 하고 안간힘을 쓰더니 최후로 용기를 내어 발악하듯,

“난 할 수 없네!”

하고 똑 잡아뗀다. 기한을 몇번만 넘기면 채무자를 불러다 세워놓고 '이놈아, 이 목을 베고 재를 칠 놈같으니라고. 외손 씨아에 불알을 넣고는 배겨도, 내 돈을 먹곤 못 배길라' 하고 진땀이 나도록 기름을 짜던 솜씨라 아무리 동혁의 앞이라도 돈에 들어서만은 저의 본색을 나타내는 것이다.


“정 할 수 없을까요?”

동혁의 얼굴은 뻘개졌다. 씨근거리는 숨소리가 유난히 크게 들린다.

“두 번 말할 게 있나. 할 수 없으니깐 할 수 없다는 게지.”

그 말을 듣자,

“그럼 나 역시 할 수 없쇠다. 우격으로 될 일이 아니니까요.”

하고 기천의 손에 내놓았던 지전 뭉치를 도로 집어 꼭꼭 싸서 허리춤에다 차며,

“하지만 이 돈은 졸연(卒然)히 받지 못할 줄 아세요. 앞으로 무슨 일이 생기든 나는 책임을 질 수도 없구요.”

하고 목침을 걷어차며 벌떡 일어섰다.

동혁이가 장지를 탁 닫고 나갈 때까지 기천은 달싹도 안하고 앉았다가 신발 소리가 어둠침침한 마당으로 내려가는 것을 듣고야 발딱 일어나서,

“여보게 날 좀 보게.”

하고 쫓아나갔다.

아무리 생각해 보아도 동혁의 말마따나 까딱하면 본전도 건지기가 어렵고 두고두고 녹여서 받는대도, 여간 힘이 들 것 같지가 않았던 것이다. 게다가 기만이에게 오백 원이나 급전을 도둑맞아서 그 벌충을 대야만 되게 된 형편인데 또 한편으로는 동혁이가 감정이 잔뜩 난 회원들을 선동해 가지고 밤중에 습격이라도 할 것 같아서 미상불 겁이 났던 것이다.

“왜 그러세요?”

동혁의 대답은 매우 퉁명스럽다.

“이리 잠깐만 들어오게.”

“들어간 뭘하나요?”


“글쎄 잠깐만 들어와 이 사람, 왜 그렇게 변통수가 없나?”

동혁은 못 이기는 체하고 따라 들어갔다.

“그거 이리 내게. 오입해 없앤 셈만 치지.”

하고 기천은 손을 벌린다. 동혁은,

“그럼 그 차용증서 모아 둔걸 이리 주시지요.”

하고 돈과 차용증서를 바꾸어 들었다. 그리고는 눈을 꿈벅꿈벅하더니,

“매사는 불여튼튼이라는데, 돈을 한 푼도 안 남기고 다 받았다는 표를 하나 써 주시지요.”

해서 빚 갚은 증서를 쓰이고 도장까지 찍게 하였다. 동혁은 그제야 수십 장이나 되는 인찰지를 구겨쥐고 한참이나 들여다보다가 재떨이 위에 성냥을 집어 확 그어대었다.

 

 

'6. 이별(離別)'로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