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영신은 수술한 뒤로 마음이 약해져서 애상적인 감정에 지배를 받는 것은 물론 한 가지 까다로운 습관이 생겼다. 그것은 동혁이가 제 곁에 있지 않으면 긴긴 밤에 잠을 이루지 못하는 것이다. 신앙심도 있거니와 여자로는 보기 드물게 중심이 튼튼한 사람이언만, 난산을 하고 난 산모와 같이 곁에 사람이 없으면 허수해서 못견디어 한다. 어느 때는 도깨비나 보는 것처럼 손을 내두르며 헛소리를 더럭더럭 할 때가 있다. 그러면 문병을 온 부인들이 성경을 읽고 찬송가를 불러서 들려 주고 하건만 귀에 들어가지 않는 듯,
“동혁씨 어디 갔어? 동혁씨!”
하고 사랑하는 사람만 찾는다. 그러면 동혁은 길거리로 산보를 나갔다가도 붙들려 들어와서 그에게 손을 잡혔다. 그래야만 환자는 비로소 마음을 놓고 잠이 든다.
“저렇게 잠시 잠깐도 떨어지질 못하면서 입때까진 어떻게 따루따루 지냈다우?”
하는 것은 문병 온 부인들네의 뒷공론이었다.
동혁은 그런 말을 귓결에 듣고 싱글벙글 웃으면서도, '이거 한곡리 일 때문에 큰일 났군. 강기천이가 그 동안 또 무슨 흉계를 꾸밀지 모르는데, 온 편지 답장들이나 해 주어야지' 하고 몹시 궁금해하였다. 동화와 건배에게 거의 격일해서 편지를 했지만, 무슨 연고가 있는지 답장이 오지를 않아서 몸이 달았다.
그러나 동혁이 역시 어떤 때는 어린애처럼 응석을 더럭더럭 부리며 어머니 생각에 눈물이 마를 때가 없는 영신을 차마 떼치고 떠나갈 수가 없었다. 아무리 호인처럼 무뚝뚝한 사람이기로, 죽을 고비를 천행으로 넘겨서 아직도 제 몸을 마음대로 추스리지 못하는 사람을 보고,
“난 볼일이 급해서 가야겠소.”
하고 휘어잡는 소매를 뿌리치며 일어설 용기가 나지를 않았다.
그래서 동혁은 그 사정을 건배에게 편지로 알리고, 밤이 들면 꼭 환자의 침상머리에 앉아서, 신문이나 잡지를 얻어다가 읽어주고 어떤 때는 흑인종으로 무지한 동족을 위해서 갖은 고생과 백인의 학대를 받으면서 큰 사업을 성취한 '부커티 와싱톤' 같은 사람의 분투한 역사를 이야기해서 들려주었다.
그러면서 한편으로는 농촌 운동에 관한 의견도 교환하여, 시간을 될 수 있는 대로 헛되이 보내지 않으려 하였다.
그러다가 밤이 깊어 영신이가 잠이 드는 것을 보고야, 동혁은 벽 하나를 격한 대합실로 가서 의자를 모아 놓고 그 위에 담요 한 자락을 덮고는 다시 갈피를 잡을 수 없는 공상에 잠겼다가 잠이 드는 것이었다.
“인전 갑갑해 못 견디시겠죠? 그렇지만 퇴원할 때까지는 꼭 붙들고 안 놀 거요.”
하고 영신은 하루 한 번씩은 동혁을 놀리듯 한다. 아닌게 아니라 동혁은 펄펄 뛰어다니던 맹수가, 별안간 철장 속에 갇힌 것 같아서 여간 갑갑하지가 않았다. 위험한 시기가 지나서 마음이 턱 놓이니까, 그 동안 바짝 옥죄였던 온몸의 신경과 근육이 가닥가닥 풀리는 듯 아무 데나 턱턱 눕고만 싶었다. 사지가 뒤틀리도록 심심해하는 눈치를 챈 영신은,
“이런 기회가 아니면 나하구 이 주일씩이나 같이 있어 보시겠어요? 이것두 하나님의 덕택이지요.”
하고는 염치 불구하고 하루라도 더 붙들려고만 든다.
“그 하나님 참 감사하군요. 죽도록 일을 한 상금으로 그 몹쓸 병이 나게 하고, 그것도 부족해서 배꺼정 짼 게 다 하나님의 덕택이지요?”
동혁이도 영신이를 놀리며 청석골 교회의 장로처럼 합장을 하고 일부러 목소리를 떨며,
“오 - 전지 전능하신 하나님, 감사 감사하나이다.”
하고는 껄껄껄 웃어 젖힌다.
“그렇게 하나님을 놀리면 천벌을 받는 법이야요. 아뭏든 나같은 사람을 영영 버리지 않으시고 이만큼이나 낫게 해 주신 게 다 하나님의 뜻이지 뭐야요?”
하고 영신은 사랑하는 사람을 곁눈으로 살짝 흘겨본다.
영신이가 평소에 동혁에게 대한 다만 한 가지 불평은 저와 같이 예수를 믿지 않는 것이다. 부모형제간에도 종교를 믿는 것은 절대 자유요, 신앙은 강제로 할 수 없는 것인 줄 알면서도, 이 세상을 툭툭 털어도 단지 한 사람인 저의 애인이, 저와 똑같은 믿음을 가졌으면 얼마나 좋을는지 몰랐다.
믿지를 않으면 보고 가만히나 있지를 않고, 제가 밥상 앞에서 눈을 내려감고 기도를 올릴 때면 곁에서 일부러 헛기침을 칵칵 하기, 김이 무럭무럭 나는 찌개 남비를 코밑에다 들이대기가 일쑤다. 그럴 때면,
“저리 가세요! 자기나 안 믿으면 안 믿었지 왜 그렇게 비방을 해요?”
하고 여무지게 쏘아붙이기를 한두 번 하지 않았다. 그래서 그런 끝에는 처음으로 악박골 약물터에서 밤을 새울 때에 뿌리만 따다가 둔 종교 문제를 끄집어내어 가지고 서로 얼굴에 핏대를 올려 가며, 토론을 하였다.
동혁은 인류와 종교의 역사적 관계를 모르는 것도 아니요, 편협한 유물론자처럼 덮어놓고 종교를 아편과 같이 생각하지는 않으면서도, 근래에 예수 교회가 부패한 것과, 교역자나 교인들이 더 떨어질 나위 없이 타락한 그 실례를 들어, 맹렬히 공격을 하는 것이었다. 그러다가는,
“권세에 아첨을 하다 못해 무릎을 꿇고, 물질과 타협을 하다 못해 돈 있는 놈의 주구(走狗)가 되는, 그런 놈들 앞에 내 머리를 숙이란 말씀요? 그따위 교회에 다니다간 정말 지옥엘 가게요!”
하고 마룻바닥에다 헛침을 탁 뱉았다. 그러나 영신은,
“교회 속은 누구버덤두 직접 관계를 해 온 내가 속속들이 잘 알아요. 아무튼 루터 같은 분이 나와서 큰 혁명을 일으키기 전엔 조선의 예수교회도 이대로 가다간 멸망을 당하고 말 거예요.”
하고 저 역시 분개하기를 마지않다가,
“나는 그리스도가 인류를 위해서 십자가에 피를 흘리신 그 정열과, 희생적인 봉사의 정열을 숭앙하고 본받으려는 것뿐이니까요. 그 점만은 충분히 이해해 주셔야 해요.”
하고 변명을 한 후, 새삼스러이,
“도대체 동혁 씨는 아무 것도 믿으시는 게 없어요?”
하고 정중하게 질문도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