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계의 촛점이 돌아가는 소린 듯 창 틈에서 재깍거리는 벌레 소리에 가을밤은 쓸쓸히 깊어갔다.

수술대 위에 올라서도, 영신은 동혁의 손을 놓지 않았다. 하얀 소독복을 입고 매우 긴장한 빛을 띠우면서 수술할 준비를 하고 난 의사와 간호부가 두 번째나,

“고만 밖으로 나가 주시지요.”

하고 재촉을 하여도 영신은,

“나가지 마세요. 여기 꼭 서 있어 주세요.”

하고 온몸의 힘을 다해서 동혁의 손을 끌어당긴다.

“네 지키고 섰으께 걱정마세요.”

하고 동혁은 환자의 머리맡을 떠나지 않았다. 의사가 가아제를 덮은 코 밑에 마취액을 방울방울 떨어뜨려 들여 마시게 하면서,

“하나…둘…셋…”

하고 부르는 대로 영신은 따라 부른다. 오 분도 못 되어 영신은 핀셋으로 살을 찔러도 모를 만큼 전신의 감각을 잃고 힘이 풀려서 동혁의 손을 놓았다.

동혁은 수술하는 것을 차마 볼 수 없어서 수술실 밖으로 나갔다. 응접실로, 대합실로, 복도로 왔다 갔다 하며, 생명이 좌우되는 일이 무사히 끝나기를 기다리는 마음은 몹시도 초조하였다. 예수교 신자인 원재는, 대합실 문밖에 가 꿇어 엎드려 정성껏 기도를 올리고 있다. 동혁은 안절부절 못하고 왔다 갔다 하면서도 원재와 같이 일종의 엄숙한 기분에 머리가 들려지지 않았다.

배를 가르고 맹장에 달린 벌레 같은 것을 잘라버리고 다시 꿰매면 고만인 비교적 간단한 수술이언만, 그것이 거의 두 시간이나 걸린다. 몇 번이나 수술실 도어에 귀를 대고 들어보아도 바스락 거림조차 없다.

동혁은 점점 불안해졌다.

“왜 여태 아무 소리도 없을까요?”

원재는 겁이 나서 우둘우둘 떨기까지 한다.

“글쎄…”

하면서도 동혁은 속이 바짝바짝 타서 '좀 들어가 볼까' 하고 수술실 도어의 손잡이를 비틀어 열고 들어서는데, 그와 동시에 소독약 냄새가 확 끼치며 의사가 손을 닦던 수건을 던지고 마주 나온다. 수술대 위에 허연 홑이불을 씌워놓은 것이 눈에 띠자 동혁은 가슴이 선뜻 내려앉아서,

“어떻게 됐읍니까?”

하고 당황히 물었다. 의사는 수술복 소매로 이마에 흘린 땀을 씻으며,

“혼났쇠다. 맹장이 썩도록 내버려 뒀으니, 까딱하면…”

하고 담배를 피워물고 쭉 들이빨다가 한숨과 함께 후우하고 연기를 토해 낸다.

“아, 그래서요?”

동혁이와 원재의 눈은 의사의 입에 가 매달렸다.

“그 수술만 같으면 문제가 없지만, 대장(大腸) 하고 소장(小腸)이 마주 꼬여서 간신히 제 위치로 돌려 놨는데…”

하더니,

“아아니, 여자가 무슨 일을 창자가 비꾀두룩 하게 내버려 뒀더란 말씀이요?”

하고 동혁을 나무라듯 한다.

“…”

동혁은 그 말대답을 할 수 없었다. 간호부가 눈앞을 지나 제약실로 들어가는 것을 보니, 맵고 뜨거운 음식을 먹고 나온 것처럼 얼굴에 땀이 주르르 흘렀다.

“너무나 수고를 하셨습니다. 이젠 염려 없겠지요?”

“나 아는 대로 힘껏은 했소이다마는, 퇴원한 뒤에도 여간 조심을 하지 않으면 재발될 염려가 있으니까, 거기까지는 보증할 수는 없는걸요.”

하고 시원하지 않은 대답을 하는데, 동혁은 또다시 우울해졌다.

병실로 떠메여 들어온 뒤에야 영신은 차츰차츰 의식을 회복하였다.

“어…어머니! 어머니!”

하고 헛소리하듯 어머니를 찾다가,

“도 도…동혁씨!”

하고 머리맡을 더듬는다. 동혁은,

“나 여깄에요. 이젠 아주 안심하세요.”

하고 가만히 그의 두 손을 잡았다.

“물을 좀, 어서 물을 좀…”

영신은 조갈이 나서 식도가 타는 듯이 목을 쥐어뜯으며 물을 찾는다. 원재가 밖으로 나가는 것을,

“안돼, 지금 물을 마셨다간 큰일 나네.”

하고 붙들었다. 그래도 환자는,

“한 모금만 네, 한 방울만…”

하고 어린애처럼 안타깝게 조른다. 물이 있고도 못 주는 동혁의 마음은 환자만큼이나 안타까왔다.

다행히 수술한 경과는 좋았다. 식욕도 나날이 늘어서 이제는 죽을 먹고도 잘 삭이고 붙들어 주면 일어나 앉아서 이야기를 해도 피곤을 느끼지 않을 만큼이나 원기가 회복되었다.

그동안 청석골서 원재 어머니가 와서 아들과 교대를 하고 교인과 친목계의 회원들이 그 먼길에 반은 타고 반은 걸어서 문병을 왔었다.

“아이고 여기꺼정 어떻게들 오셨어요?”

영신은 고마움에 겨워 그들의 손을 잡고 말도 못하기를 몇번이나 하였다. 그중에도 원재 어머니가,

“인전 아무 염려들 마시구 어서 퇴원이나 하세요. 일전에 학부형들이 모두 새 집에 모여서 기부금 적은 걸 죄다 내기로 했어요. 집 짓느라고 빚진 건 한 푼도 안 남기고 갚게 됐으니깐, 학원 때문엔 조금두 걱정을 마세요.”

하는 보고를 들을 때, 영신은 어찌나 기쁜지 금새 날개가 돋혀서 훨훨 날아다닐 듯싶었다. 전장에서 부상을 당한 병정이 승전고(勝戰鼓) 울리는 소리를 듣는 것만큼이나 감격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