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급성이 돼서, 까딱하면 큰일나겠는데, 이 시골구석에서 이를 어떡헌담' 하고 뒤통수를 북북 긁는데, 그 머리 속에 번개같이 떠오르는 것은 '급성맹장염은 24시간 이내에 수술을 해야 한다. 때가 늦으면 생명을 빼앗긴다'는 생각이었다.

그것은 생리 시간에도 배웠고, 저를 치료해 주던 의사에게도 들은 말이다. 그러나 서울 큰 병원은 생각도 할 수 없고, 도청소재지에 있는 자혜의원 같은 데로 간대도 꼼짝도 못하는 사람을 어떻게 추슬려 가지고 갈는지 난감하였다. 그는 곰곰 생각을 해보다가 냉수를 떠오래서 수건을 담가 이마에 냉습포를 하게 한 후,

“영신씨!”

하고 가만히 손을 잡았다.

“네……”

영신은 눈을 감은 채 가만히 입을 연다.

“급성이면 한 시간이래두 빨리 수술을 해야 하는데요. 나 하자는 대로 하시지요?”

“어떻게요?”

“지금이래두 떠나서 자혜의원에 입원을 하도록 합시다.”

“……”

영신은 한참만에 머리를 흔든다.

“왜요?”

“난 싫어요!”

이번에는 머리를 더 내두른다.

“수술하는 건 겁날 게 없어요. 오래 되지 않았으면 퍽 간단하게 된다는데요.”

“……”

영신은 다시 아픈 것을 이기지 못해서 동혁의 손을 사뭇 쥐어 뜯으면서도, 병원으로 가는 데는 승낙을 하지 않는다. 배를 째는 것이 겁이 나서 마다는 것이 아니라, 정신이 없는 중에도 학원을 지은 빚도 많은데, 수술비와 입원 비용이 적지아니 들 것을 생각한 것이다.

“어떻게 여기서 낫게 할 수 없을까요?”

하고 애원하는 것을 동혁은,

“안돼요. 한약으론 안돼요!”

하고 벌떡 일어서며 밖으로 나가서 자동차 시간을 물었다. 마침 오후 두 시에 읍으로 가는 자동차가 있었다.

동혁은 한사코 싫다고 고집을 세우는 영신을,

“사람이 살고 볼 일이지, 내가 당신이 죽는 걸 보고 가만히 있을 듯싶어요?”

하고 강제로 들쳐업고는 한 번도 쉬지 않고 십리 길을 내쳐 걸었다. 학부형들과 청년들이며 아이들은 울면서 자동차 정류장까지 따라 나왔다.

친부모만큼이나 정이 들고 은혜를 입은 선생이 불시에 세상을 떠나서 영구차(靈柩車)나 전송하는 것처럼 아이들은 자동차 차창에 가 매달려 우는 것을,

“어서들 들어가거라. 내 열 밤만 자고 오마 응?”

하고 영신은 동혁에게 안겨서 손을 내젖는데 차는 가솔린 냄새를 풍기며 떠난다. 원재 어머니와 청년들이 앞을 다투어 차에 오르며 간호를 하러 가겠다는 것을 다 물리쳤건만 중간에서 원재가 뛰어올랐다.

차는 두어 간 거리나 굴러 나가는데,

“여보 여보 - 잠깐만 기다류.”

하고 헐레벌떡거리며 쫓아오는 것은 교회의 회계를 보는 장로의 아들이었다. 동혁은 자동차를 정거시켰다. 회계는 숨이 턱에 닿아서 땀이 나도록 쥐고 온 것을 영신에게 내주면서,

“학부형들이 급히 추렴을 낸 건데요, 우선 급한 대로 쓰시라구요.”

하고는 뒤도 안 돌아보고 뺑소니를 친다. 영신의 손에 쥐어진 것은 십 원, 일 원짜리가 뒤섞인 지전이었다.

“얼마에요?”

“모르겠어요. 온 염치 없이…”

영신은 그 돈을 동혁에게 준다. 동혁은 돈을 세어 보고,

“이것만 가지면 급한 대로 쓰겠군.”

하고 집어넣는다. 그는 하도 일이 급하니까 자동차 삯이나, 병원에서 들 것은 '설마 어떻게든지 되겠지' 하고 닥치는 대로 떼거리를 쓸 작정으로 영신을 업고 나섰던 것이다. 그는 그때에 처음으로 '왜 내가 돈이 없었던가?' 하고 돈 있는 사람이 부러워서 탄식을 하였다.

영신이가 쓰러지는 것을 목도한 학부형들은 눈들이 휘둥그래서,

“허어, 이거 큰일났군.”

“아무리 억지가 세지만, 잔약한 여자가 석 달 동안이나 염체에 할 일을 다 했나베.”

“그러구 보니, 우리들은 남의 집 색시 하나를 잡은 셈이 되지않겠나.”

“두말 말구 우리 기부금 적은 거나 빚을 얻어서래두 이번엔 다 내놉시다.”

하고 이 구석 저 구석 모여서 공론을 하고 제일 머릿수가 큰 한 낭청 집으로 몰려가서 그제야 그 말썽 많던 돈을 받아 낸 것이다.

…자동차 속에서도 차체가 자갈을 깐 길바닥에서 들까부는대로 영신은 창자가 울려서 아픔을 참기 어려웠다.

“아이고! 갈구리 쇠로 막 찢어 당기는 것 같아요.”

하고 동혁의 팔과 손등을 막 물어뜯기를 여러 차례나 하였다.

동혁은 아프단 말도 못하고,

“몇 시간만 눈 딱 감고 참읍시다.”

하면서 가엾고 애처로운 생각에 '내가 대신 앓았으면' 하다가, '마침 내가 왔기에 망정이지 혼자 이런 일을 당했다면 어쩔 뻔했누?' 하고 사랑하는 사람이 의료기관 하나도 없는 곳에서 고집을 세우다가 비참한 최후를 마쳤을 것을 상상하니 몸서리가 쳐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