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이게 누구세요?”

영신은 놀라움과 반가움에 겨워서 가슴속은 두방망이질을 한다. 동혁은 벌떡 일어나 영신의 두 손을 덥석 쥐고 잡아 흔든다.

“아아니, 어디로 어떻게 오셨어요?”

“어떻게 오다니요? 이 두 바퀴 자동차를 타고 왔지요.”

하고 동혁은 제 다리를 탁 쳐 보인다. 영신은 혀끝을 내두르며,

“아이고 어쩌면! 배도 안타고 돌아오셨으면, 한 삼백 리나 될텐데…”

하니까,

“압다, 삼천리는 못 올까요?”

하고 동혁은 그저 손을 놓을 줄 모른다.

“그래 언제 떠나셨어요?”

“어저께 새벽에요.”

영신은 그만 동혁의 가슴에, 그립고 그립던 그 넓다란 가슴에 얼굴을 파묻었다. 동혁은 두 팔로 영신의 어깨를 힘껏 끌어안았다. 두 사람은 함께 한참 동안이나 말을 못하였다.

영신은 얼굴을 들었다. 등잔불빛에 번득이는 두 줄기 눈물! 그것은 반가움에 겨워서만 흘러내리는 것이 아니다. 거칠고 어두운 벌판을 홀로 헤매다니다가 어버이의 따뜻한 품속으로 기어든 듯한 느낌과, 살이 찢기고 뼈가 깎이도록 고생한 것을 무언중에 호소하는 그러한 눈물이었다.

동혁은 눈을 꽉 감았다가 뜨며,

“신색이 매우 못되셨군요.”

하고는 손등으로 눈물을 비비고 난 영신의 얼굴을 무한히 가엾은 듯이 들여다본다. 반 년 남짓이 만나지 못한 동안에 영신은 그 탐스럽던 두 볼이 여위고 눈 가장자리에는 가느다란 주름살까지 잡혔다. 더운 때도 아닌데 입술이 까맣게 탄 것을 보니, 그 동안 얼마나 노심초사를 했나 - 하는 것이 역력히 들여다보여서, 동혁은,

'그래 집짓기에 얼마나 애를 쓰셨에요?'

하는 말이 입 밖에까지 나오려는 것을 도로 끌어들였다. 그런 인사 치레는 일부러 하기가 싫었던 것이다. 등잔불은 고요히 두 사람 사이의 침묵을 흔드는데,

“우리 집 보셨지요? 동혁씨 집보다 잘 지었지요?”

한참 만에야 영신은 딴전을 부리듯이 묻는다.

“아까 잠깐 바깥으로만 둘러봤는데, 너무 훌륭하더군요. 한곡리 회관 쯤은 게다 대면 행랑채 같아요.”

하고는,

“집들은 엄부렁하게 지어놨지만, 이젠 내용이 그만큼 충실하게 돼야 해요.”

하고 동혁은 제가 주인인 듯이 영신의 손목을 끌어다 앉혔다. 회관의 설계도를 보고, 또는 편지로 자세히 짐작은 하고 있었지만, 여자 혼자 시작한 일로는 엄청나게 규모가 큰 데 두 번 세 번 놀랐다.

“좀 누세요. 여간 고단하지가 않을 텐데.”

고 영신은 목침을 내어놓고 일어서며,

“시장도 하실 걸. 원재 어머닌 어딜 가서 여태 안 들어와.”

하며 일어나는데,

“아이고 선생님이 벌써 오신 걸 몰랐네.”

 

하고 마주 들어오는 것은 이 집의 주인이었다. 그는 손님이 혼자 와서 기다리는 것이 보기 딱해서, 영신의 뒤를 쫓아보낼 사람을 얻느라고 회관으로 올라갔다가 내려온 것이었다.

영신은 원재 어머니에게만은 동혁이와의 관계를 이야기하여서, 그 역시 동혁이를 여간 기다리지 않았었다. 그는 부엌으로 들어가며,

“어쩌면 그렇게 대장감으로 생겼어요? 첨 뵈서 그런지, 마주 쳐다보기가 무서웁디다.”

하고, 혀끝을 내둘러 보이면서 밥상을 차린다. 그는 청석골 밖에는 나가 보지도 못하였지만 동혁이처럼 건강하고 우람스럽게 생긴 남자를 처음 보았던 것이다. 천사와 같이 숭앙하는 채 선생의 남편 재목이요 방안에 뿌듯하게 들어설 때, 그의 마음속까지 뿌듯하였다. 영신도 동혁이를 칭찬하는 말이 듣기 싫지 않아서,

“그렇게 무서워 뵈어요. 아뭏든 보호 병정 하나는 튼튼하게 뒀죠?”

하고 느긋한 웃음을 웃어 보였다. 원재 어머니가,

“찬이 없어서 어떡헌대유?”

하고 성화를 하니까,

“뭘 돌멩이를 깨물어 먹어두 새길걸.”

하면서도, 밥상을 들고 들어가서는,

“한곡리처럼 대접을 해드릴 수는 없어요. 우린 쩍의 반찬 '배고플 쩍이란 뜻' 밖에 없으니까요. 당초 부엌에 들어설 틈도 없구요.”

하고는,

“호호호호”

하고 명랑히 웃는다. 동혁은,

“내가 요리집을 찾아온 줄 아슈?”

하고는 밥상을 들여다 보더니,

 

“외상을 먹고는 언제 갚게요. 밥 한 그릇만 더 갖다가 우리 같이 먹읍시다.”

하고 우겨서, 둘이 겸상을 해서 먹으며 피차에 지낸 이야기를 대강 주고받았다.

두 사람은 이야기를 하면서도 '저 사람을 그다지도 그리워했었던가' 하는 듯이 피차에 얼굴에서 눈을 떼지 않고 기계적으로 숟가락질을 했다. 동혁은 숭늉을 마신 뒤에 입이 찢어지도록 하품을 하더니,

“이 근처에도 주막이 있겠지요?”

하고 억지로 몸을 일으킨다. 제아무리 장사라도 이틀 동안에 거의 삼백 리 길이나 줄기차게 걸어왔으니, 노그라지지 않을 수가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