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 도무지 대체 채 선생이, 아아니 이게 웬 일이란 말씀요?”
하고 모주 냄새를 풍긴다. 그는 영신의 감화로 오늘날까지 품삯도 못 받고 일을 한 목수였다. 아뭏든 낙성식까지 하게 된 것이 덩달아 좋아서, 아침부터 주막에 가서 주렸던 막걸리를 잔뜩 마시고는 엉덩춤을 추며,
“에헤 에헴, 내 손으루 지은 집 낙성식을 하는데 한 몫 끼어야지, 아무렴 그렇구말구, 어느 놈이 날 빼논단 말이냐”
하고 혼잣말을 주고받으며 한창 뽐내고 들어오다가 영신이가 넘어지는 광경을 보고 허겁지겁 뛰어나가서 이력차게 냉수를 떠온 것이다.
동혁은 냉수를 영신의 얼굴에 두어 번 뿜어 주고 원재의 웃옷을 벗겨서 방석처럼 접어 어깨 밑에 고여 머리를 낮추어 놓고 두 팔을 올렸다 내렸다 하며 천천히 인공호흡(人工呼吸)을 시킨다. 그리고 원재 어머니더러,
“아랫도리를 가만가만 주물러 주세요.”
하였다.
영신은 한 오 분 동안이나 숨을 괴롭게 몰아쉬더니,
“휘유!”
하고 악몽에서나 깬 듯이 정기 없는 눈을 뜨고, '여기가 어딘가?' 하는 듯이 실내를 둘러본다.
“정신이 좀 나세요?”
동혁이가 나직히 묻는 말에 그는 눈을 커다랗게 뜨며,
“네…”
하고 안심과 감사의 뜻을 잡힌 손에 힘을 주는 것으로 표시한다.
“아이들은 다 어디루 갔어요?”
“밖에들 있어요. 마룻바닥이 차서 어떡하나?”
원재 어머니도 겨우 숨을 돌린 듯, 동혁의 얼굴을 쳐다본다.
“좀더 진정해야 해요.”
하고 동혁은 강당으로 나가서 돌아앉아 중얼중얼 기도를 올리고 있는 장로의 어깨를 잡아 흔들며,
“절대루, 안정을 시켜야 하겠는데, 고만 다들 헤어지라구 해 주시지요.”
하고 일렀다. 아이들은 문밖에서 홀짝홀짝 울면서 가지를 않는다. 금분이는,
“우리 선생님! 아이고 우리 선생님!”
하고 선생이 죽기나 한 듯이 사뭇 통곡을 하다가, 동혁의 소매에 매달려 들어오더니 영신의 앞으로 달려들며 흐느껴 운다. 영신은
“금분아, 너 왜 우니? 응 왜 울어? 선생님은 아무렇지도 않단다.”
하고 달래 주고는 '나가 봐야 할 텐데…'하고 억지로 몸을 일으킨다.
“아이구 배야!”
하며 아까 쓰러질 때처럼 오른편 아랫배를 움켜쥐며, 지독한 고통을 참느라고 입술을 깨문다.
이제까지 태연한 기색을 보이던 동혁의 얼굴에도 당황한 빛이 떠돈다. 너무나 과로한 끝에 흥분이 되어서 일어난 단순한 뇌빈혈이 아닌 것만은 분명하다.
“아뭏든 집으로 내려갑시다.”
하고 동혁은 영신을 고쳐업고 뒷문으로 빠져서 원재 어머니의 집으로 내려갔다. 영신이가 거처하는 방은 사내아이 계집아이들로 두 겹 세 겹 에워싸였다. 부인친목계의 계원들은 얼굴이 흑빛이 되어 가지고 방으로 꾸역꾸역 들어오는 것을 동혁은,
“안됐지만 나가들 주세요. 조용히 누워 있어야 합니다.”
하고 원재 어머니만 남겨 놓고 다 내보낸 뒤에 문고리를 안으로 걸어 버렸다. 땀이 이마에 숭숭 내배었건만 그는 씻으려고도 안 하고 영신의 앞으로 가까이 앉는다. 영신은 고통이 조금 진정된 듯하나 기함이나 한 것처럼 누워있다.
동혁은 한참 동안 눈을 꽉 감고 있다가,
“똑바루 누우세요.”
하고 영신을 반듯이 눕혔다.
그는 의사처럼 이마를 짚어 신열이 있고 없는 것을 보고 맥박을 세어본 뒤에,
“여기에요? 아픈 데가 여기에요?”
하면서 영신의 배를 명치로부터 배꼽까지 여기저기 꾹꾹 눌러 본다. 영신은 말대답을 할 기운도 없는지 아프지 않는 데는 조금씩 고개를 흔들어 보일 뿐…
“그럼 여기지요?”
동혁의 손가락이 영신이가 두 번이나 움켜쥐던 오른 편 아랫배를 누르자 영신은,
“아야야!”
하고 비명을 지르며 상체를 펄쩍 솟치다가 불에나 데인 것처럼 온 몸을 오그라뜨린다. 동혁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서투른 의사의 진찰이언만 저도 학창 시절에 폿볼에 열중하다가 된통으로 앓아 본 경험이 있는 맹장염인 것이 틀림없었다.
“맹장염 같은걸요.”
“네? 맹장염?”
하고 영신은 간신히 동혁의 말을 흉내내듯 한다. 그러다가 금시 아랫배가 뻗치고 땡기고 하다가는 사뭇 송곳으로 쑤시는 것 같아서 자반 뒤집기를 한다. 그는 고통을 참느라고 이를 악물고 있다가,
“아이고 그럼 어떡해요?”
하는 듯이 동혁의 얼굴을 쳐다본다.
“안심하세요, 아는 병이니까요. 나도 한번 혼난 적이 있는데.”
하고 위로를 시키면서도 동혁의 마음속은 먹장구름이 뒤덮는 듯이 캄캄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