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부형들과 집을 짓는데 수고를 한 사람들이며, 부인근로계원들은 물론, 교실의 간을 터놓은 새학원이 비집고 들어설 틈이 없도록 꽉 찼다. 동혁은 맨 뒷줄에 가서 앉았다가 구경꾼들이 꾸역꾸역 모여들어서 떠들어대는 것을 보고 '손님처럼 서서 구경만 할 게 아니다' 하고,
“여보슈, 어른들은 뒤로 나섭시다. 나서요.”
“쉬 - 떠들지들 맙시다.”
하고 사람의 틈을 비비고 다니며 장내를 정돈시켜 주었다. 여러 사람은,
“저게 누군가?”
“어디서 온 사람이여?”
하고 두리번거리면서 비슬비슬 비켜선다.
그러자 교회의 장로인 대머리영감이 단 위에 올라섰다. 장로는 서양 사람의 서투른 조선말을 그나마 어색하게 입내 내는 듯한 예수교 식 독특한 어조로 개회사를 하고, 일부러 떨리는 목소리로 기도를 인도한다. 겉장이 떨어진 성경책을 들고 예배나 보듯이 성경까지 읽는다. 그 동안 동혁은 꿈벅꿈벅하며 교단 맞은편 벽에 붉은 잉크로 영신이가 써 붙인 몇 조각의 슬로건을 쳐다보고 있었다.
'갱생의 광명은 농촌으로부터'
'아는 것이 힘, 배워야 산다'
'우리의 가장 큰 적은 무지다'
'일하기 싫은 사람은 먹지도 말라'
'우리를 살릴 사람은 결국 우리뿐이다'
이러한 강령 비슷한 것이 조금도 신기한 것은 아니언만 그 장로와 비교해 볼 때, 동혁은 '이것도 조선의 현실을 그려 놓은 그림의 한 폭인가' 하고 속으로 씁쓸히 웃었다. 그러나 이러한 모임에 양복장이들이 와서, 앞줄에 가 버티고 쭈욱 늘어앉지 않은 것만은 유쾌하다면 유쾌하였다.
귀에 익은 손풍금 소리가 들리며 '삼천리 반도 금수강산'을 부르는 찬미 소리가 일어났다. 그제야 장내는 활기가 돌기 시작하는데 아이들과 어른들이 함께 목청을 높여,
일하러 가세 일하러 가…
하고 소리를 지를 때는 '그런 찬송가는 꽤 좋군' 하고 동혁이도 따라 부르고 싶은 충동을 느꼈다.
찬송가가 끝난 뒤 장로는 일어서서 매우 경건한 어조로, 그러나 여전히 서양 선교사의 입내를 내듯이,
“먼저 여러분께셔, 이처럼 마안히 와 주신 것 감샤합내다. 오늘날 우리가 이와 같은 큰 집 짓고, 낙성식을 서엉대히 열어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된 것은, 다아만 우리 청석동의 무지한 백성을 불쌍히 여기사, 당신의 귀한 따님 한 분을 보내주신 은택인 줄로 압내다.”
하고 연단 아래서 머리를 숙이고 선 영신을 가리키며,
“지금 채영신 선생이, 그 동안에 고생 마안히 하신 말씀하시겠읍네다.”
하고 뒤로 물러가 앉는다. 아이들이 딱딱딱 치기 시작한 박수소리가 소나기처럼 장내를 지나갔다. 동혁이도 그 넓적한 손바닥이 아프도록 쳤다.
영신은 발갛게 상기가 되어서 연단 위로 올라갔다. 먼 빛으로 보니, 영신의 얼굴이 파리하고 몸이 수척한 것이 더 분명해서 동혁은 바로 보기가 어려울 지경이었다. 그러나,
“여러분께서 이 새 집이 꽉 차도록 와 주셔서, 여간 기쁘고 고맙지가 않습니다.”
하고 말을 꺼내는 목소리만은 여전히 짜랑짜랑하다. 영신은 말끝을 얼핏 대지를 못하고 아이들과 학부형을 둘러보더니,
“여러분은 이 집을 짓는 것을 처음부터 여러분의 눈으로 보셨으니까, 얼마나 어렵고 힘이 들었다는 말씀은 하고 싶지가 않습니다. 또는 이만한 학원 하나를 짓느라고 고생한 것도 내가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한 것뿐이니까 생색이나 내는 것 같아서 얘기하기도 싫습니다. 그렇지만 이것이 결국은 여러분의 자녀를 기를 집이니까 어떠한 예산을 세워 가지고 얼마나 들여서 지었는지, 그것은 아셔야 할 것입니다.”
하고, 들고 올라온 책보를 끄르더니 계산서를 꺼내들고 공사비가 든 것을 조목조목 따져서 들려주고 나서,
“들어보십시요, 여러분! 우리가 덤벼들어서, 품삯 한 푼도 덜 들이려고 죽기 작정하고 일을 했건만, 칠백 여 원이나 들었습니다. 그런데 처음에 얼마를 가지고 착수를 한 줄 아십니까? 단돈 백 여 원으로 시작을 했습니다. 그 돈이나마 누구의 돈인 줄 아십니까? 이 치마를 두른 여자들이 죽지 못해 살아가는 처지에서 삼 사 년을 두고 푼푼이 모은 돈을 아낌없이 내 놓은 겁니다.
여러분, 그 나머지 육 백 원이나 되는 빚은, 조 어린애들이 졌습니다. 각처에서 꾸어대고 외상 일을 시킨 채 영신이가 물론 책임을 집니다마는, 사실은 조 어린애들이 배우기 위해서, 길거리로 헤매 다닐 수가 없어서 저희들로서는 태산같은 빚을 진 것입니다. 여러분! 여러분은 당신네의 귀여운 자녀들이 이 집에서도 쫓겨 나가는 걸 보시렵니까? 간신히 뜨기 시작한 조 영채가 도는 눈들을 다시 뽀얗게 멀려 노시렵니까!”
하고 주먹을 쥐고 목청껏 부르짖자, 그는 몹시 흥분되었다. 발을 탁 구르며 무슨 말을 하려고,
“여 여러분!”
하고 목소리를 높이다가 별안간 무엇에 꽉 질린 것처럼 바른편 옆구리를 움켜쥔다. 금방 얼굴이 해쓱해지더니 앞에 놓인 교탁을 짚을 사이도 없이, 그 자리에 가 고꾸라지듯이 엎으러졌다.
“저런!”
“앗!”
“저게 웬일야?”
여러 사람은 동시에 부르짖었다. 그 소리와 함께 동혁의 눈은 휘둥그래지더니, 두 팔로 헤엄을 치듯이 사람의 물결을 헤치며,
“에그머니, 우리 선생님!”
“절 어째!”
하고 새되게 소리를 지르는 아이들을 사뭇 파밭 밟듯 하고 연단으로 뛰어 올라갔다. 같은 연단 위에 있던 장로는 손도 대지 못하고 쩔쩔 매는 것을, 동혁은,
“비키세요.”
하고 밀치며 대들어서 침착히 영신을 안아 일으켰다. 입술까지 하얗게 바래가지고 까무러친 것을 보고는 '뇌빈혈이군' 하고 사지를 늘어뜨린 영신의 다리와 머리를 번쩍 들고 사무실로 쓰게 된 옆방으로 들어갔다. 원재 어머니와 청년들이며 아이들이 우루루 따라 들어와서는 말도 못하고 바들바들 떨기만 하는 것을,
“너희들은 나가 있거라.”
하고 나직한 목소리로 내몰고는, 저의 노동복저고리를 벗어서 마루에 깔고 영신을 그 위에 고이 눕혔다. 그리고는,
“냉수를…”
하고 원재 어머니에게 명령하였다. 원재 어머니가 당황히 나가는데, 지까다비를 신은 사람이 술이 취해서 얼굴이, 삶은 게빛이 되어 가지고 냉수 사발을 들고 찔끔찔끔 엎지르며 들어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