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적은 동해변의 조그만 항구의 새벽 공기를 새되게 찢었다. 밤새도록 차창에 들비빈 머리를 빗어 올릴 사이도 없이 뛰어내렸건만, 플랫포옴은 기차가 떠난 뒤처럼 휘덩그렇게 비었는데, 마중을 나온 몇 사람 중에서 영신을 맞아주는 사람은 하나도 없다.

출찰구(出札口)에는 여관 이름을 쓴 초롱을 켜들은 차인꾼들이 양옆으로 벌려서서 졸린 듯한 목소리로 손님을 끄느라고 법석이건만 거기서도 영신의 손을 잡아 줄 사람은 아무리 둘러보아도 눈에 띄지 않았다.

'마중을 나와 줄 경황도 없나 보다'하니, 영신은 한층더 불안해졌다. 그는 마악 전기 불이 나가서 황혼 때와 같이 으스레한 정거장 넓은 마당에서 머리를 들었다.

삼 년만에 우러러보는 고향의 하늘! 그러나 영신은 아침볕이 벌겋게 물들어 오는 동녘 하늘을 빡빡한 눈으로 쳐다보면서도 이렇다 할 감상이 일어날 마음의 여유가 없었다. 일 분 일 초가 바쁘게 집으로 가고는 싶건만 바다와는 반대방향으로 오 리나 되는 언덕 밑까지 타박타박 걸어 올라가는 수밖에 없었다.

아직 점방의 문도 열지 않은 길거리를 도망꾼처럼 바스켓 하나를 들고 줄달음질을 쳐서 수산조합까지 왔다. 그러나 외삼촌이 다니는 사무소의 문은 굳게 닫혀 있지 않은가!

영신은 문을 흔들어 보다가 뒤돌아 서서 언덕길로 올라가다가 뿡뿡 하고 달려드는 버스와 마주쳤다.

'참 그 동안 버스가 댕기게 되었다는 걸 까맣게 잊어버렸네' 혼잣말을 하고는, 되돌아오면 타고 갈 양으로 정류장 앞에가 비켜서는데 등뒤에서,

“영신씨!”

라고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귀에 익은 목소리에 영신은 깜짝 놀라서 고개를 홱 돌렸다.

버스가 미처 정거하기도 전에, 허둥지둥 뛰어내리는 사내 - 그는 틀림없는 김정근이었다.

“아 웬일이세요?”

영신은 창졸간 부르짖듯 하였다. 여기서 만나기는 천만 뜻밖이면서도 얼떨김에 정근이가 반갑기도 하였다.

“…”

검정 세루 신사양복을 입은 정근은 모자를 벗고 은근히 인사를 하면서도 우물쭈물하고 얼핏 말대답을 못한다.

“언제 이리로 오셨에요?”

영신은 정근이가 그동안 이곳의 금융조합으로 전근이나 해 온 줄 알고 재우쳐 물었다. 정근은 여자의 날카로운 시선을 피하면서 지난봄에 결혼 문제를 해결지어 달라고 청석골까지 갔을 때보다도 더 여윈 얼굴에 아침볕을 모로 받으며,

“저…지금 마중을 나가는 길인데요. 버스가 고장이 나서…”

하고는 계집애처럼 머리를 숙이고 말 끝을 맺지 못한다.

“마중을 나오시다뇨? 누굴요?”

영신은 더욱 이상스러워서 연거푸 묻는다.

“영신씨가 오실 줄 알구…”

“아아니, 내가 올 줄 어떻게 아셨어요?”

영신은 행길에서 정근에게 불심신문(不審訊問)이나 하듯 한다.

“얘긴 차차 하구 집으루 가시지요.”

정근은 영신의 집 방향으로 돌아서며 무슨 죄나 지은 사람처럼 비실비실 걷기를 시작한다.

영신은 그 뒤를 바싹 대서며,

“그럼 우리집엔 가 보셨겠군요?”

하고 조급히 물었다. 정근은 어려서부터 이웃집에서 자라나서 영신의 어머니를 아주망이라고 부르며 따르던 터이라 무슨 일로든지 여기까지 왔으면야 저의 집에를 들렀을 듯해서 물어 본 것이다.

정근은 여전히 선선하게 대답을 못하고 버스를 기다리는 듯이 연방 정거장 편만 돌아다 본다.

“아, 어머니가 위독하시단 전보를 받고 오는 길인데요, 왜 말씀을 못하세요?”

영신은 갑갑해 못 견디겠다는 듯이 발을 멈추며 정근을 돌아다보았다. 정근은 그제야,

“아뭏든 같이 갑시다. 대단친 않으시니 안심하시구요.”

한다. 다년간 책상 앞에 꼬부리고 앉아서 주판질을 하고 철필끝만 달리느라고 워낙 잔졸하게 생긴 사람이 허리까지 구부정해졌는데 팔꿈치와 양복바지 꽁무니는 책상과 의자에 반질하게 닳아서, 걸음을 걷는 대로 번쩍거린다. 영신은 한 걸음 다가서며,

“정말 대단친 않으세요?”

하고 정근의 말을 흉내내듯 하였다. 어머니가 그 동안 돌아가지 않으신 것만은 확실해서 우선 마음이 놓이면서도 '그럼 어째서 전보까지 쳐서 바쁜 사람을 불러 내셨을까'하는 의심이 더럭 났다.

“대체 전보는 누가 쳤어요?”

하고 의심에 빛나는 눈초리로 정근의 옆얼굴을 노려보는데, 등뒤에서 버스가 달려왔다. 정근은 대답할 것을 모면하고 손을 들어 버스를 세우더니,

“타구 가십시다.”

하고 저부터 뛰어오른다. 영신은 잠자코 그 뒤를 따라 올랐다.

영신은 멀찌감치 떨어져 외면을 하고 앉았다. 어머니의 소식을 대강이나마 안 담에야 여러 사람 틈에서 이말 저말 묻기도 싫어서 창 밖으로 눈을 달렸다.

'얼마나 이상이 맞는 사람과 결혼을 해서 갖은 복록을 다 누리며 사나 두고 보자'

고, 저주까지 하던 남자가, 어쩌면 저다지도 떡심이 풀린 것처럼 풀기가 없을까? 빗 말대답도 시원히 못할까? 대관절 여기는 무얼 하러 와서 나를 마중까지 나왔을까? 하니 눈앞에 앉은 정근이가 점점 더 의심스러워졌다.

어려서부터 학교에 다닐 때 보아 오던 거리에는 초가집이 거의 다 헐리고 얇다란 함석 지붕에 낯설은 문패가 붙었다. 무슨 양조장이니, 조선 요리 무슨 관(館)이니 하는 커다란 간판만 눈에 띠는데 어머니가 생선을 받아 가지고 다니던 수산조합 도매장(水産組合都賣場)을 지날 때에 생선 비린내만은 여전히 코에 끼쳤다.

'아아 우리 고향두 어지간히 변했구나!'

영신은 터져 나오는 한숨을 금할 수 없었다.

영신을 불러 내린 것은 정근의 조화였다. 영신이가,

“어머니!”

하고 집으로 뛰어들어가 보니, 어머니는 병들어 눕기는커녕 부엌에서 아침 반찬을 할 것인지 생선을 다루고 섰지 않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