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십 리 밖에서 단체를 지어 온 사람도 수십 명이나 된다. 말똥구리 굴러가는 것도 구경이라고, 구경이라면 머리악을 쓰고 덤벼드는 여편네들은 정각 전부터 예배당 마당이 빽빽하도록 모여들었다.
그 중에는 시집 올 때 입었던 단거리 비단 저고리 치마를 개켰던 자국도 펴지 않은 채 뻗질러 입고, 두 눈구멍만 남기고는 탈바가지처럼 분을 하얗게 뒤집어 쓴 새댁 네도 섞였다.
그들은 사철 동이를 이고 논 귀퉁이의 샘으로 물을 길러 다니고 이웃집에 마을을 다녀본 것밖에 소위 명절날이라고 구경을 나서 보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예배당 벽을 의지하고 송판쪽으로 가설한 무대 좌우에는 커다란 남포를 켜고 검정 장막을 내려쳤다. 흙방 속에서 면화씨 만한 등잔불에 눈이 어두운 사람들은 전등이란 구경도 못하였지만 이 남폿불만 하여도 대명천지로 나온 것만큼이나 눈이 부시도록 밝았다.
청년회, (그것도 근자에 영신이가 발설을 해서 조직을 한 것이다)의 회원들과 부인친목계의 회원들은 가슴에다가 종이꽃을 하나씩 꽂고 나섰다.
아이들은 앞줄에다 앉히고, 물밀듯이 달려들며 떠드는 구경꾼들의 자리를 정돈시키느라고, 거의 한 시간 동안이나 걸렸다.
동네에 있는 멍석과 가마·기를 깡그리 몰아다가 깔았건만 땅바닥으로 밀려나간 사람이 태반이다. 나중에 온 사람들은 그때 쫓겨나간 아이들처럼 담에서 넘겨다보고 뽕나무로 올라가는 성황을 이루었다.
영신이도 새 옷을 깨끗하게 갈아입고 처음으로 분때를 다 밀었다.
“얘 오늘 저녁엔 우리 선생님이 여간 이뻐 뵈지 않는구나.”
“언젠 우리 선생님이 숭하더냐? 분 한 번 안 바르시니깐 사내 얼굴 같지?”
무대 앞에 앉은 계집애들이 개막할 시간이 되어서 쩔쩔매고 오르내리는 영신을 쳐다보고 소곤거린다. 아닌게 아니라, 오늘 저녁에 영신은 달빛에 보아 그런지 담 밖을 넘겨다보는 한 송이 목련화(木蓮花)처럼 탐스러워 보였다.
“따르르…”
목각 종 치는 소리가 나더니 막이 드르르 열렸다. 선생이 막 뒤에서 반주하는 손풍금 소리를 따라 공작새처럼 색색이 복색을 한 계집애들이 나와서 창가를 한다. 눈이 폭폭 쌓이는 날도 홑고쟁이를 입고 다니던 금분이가 연분홍 치마저고리를 입고 나와서 유희를 해가며 가냘픈 목소리로 동요를 한다.
“흥, 아무튼 가르치구 볼 께여.”
“여부가 있나. 선녀들 놀음 같은걸.”
늙은이 축에서도 매우 감탄하는 모양이다.
막은 몇 번이나 열렸다 닫혔다. 손뼉도 칠 줄 모르고 떠들던 구경꾼들은 평생 처음 구경하는 아이들의 재롱에, '내 딸은 언제 나오나'하고 마른침을 삼키며 다음 순서를 기다린다.
휴식 시간이 지난 뒤에 학예회는 제2부로 들어갔다.
여자 상급반의 아이들이 나와서 가극 비슷한 여왕놀음을 하는데, 황금빛이 찬란한 면류관을 쓰고 옥좌 위에 가 점잖이 앉았던 옥례가, 서캐가 무는지 자꾸만 뒷머리를 긁다가 그 관이 앞으로 벗어졌다. 황급히 집으려는데 마침 바람이 홱 불어 종이 면류관은 떼굴떼굴 굴러서 무대 아래로 떨어지려고 한다.
옥례는 얼굴이 홍당무가 되어,
“애구머니 절 어쩌나!”
하며 그 관을 집으려고 허겁지겁 달려들다가 그만 미끄러졌다. 넘어졌다 일어나 보니, 면류관은 자반처럼 납작하게 찌부러졌다. 그것을 보자 마당에서는 떼웃음이 까르르 하고 터졌다.
어떤 마누라는 부처님 앞에 절을 하듯이 연방 합장을 하면서 허리를 잡는데 옥례는 엉엉 소리를 내어 울면서 무대 뒤로 뛰어 들어갔다.
끝으로 학생들의 '흥부놀부' 놀음도 여러 사람의 웃음보를 터뜨렸다. 흥부가 어색하게 달고 나온 수염이 붙이면 떨어지고 붙이면 떨어지고 하다가, 나중에는 머리카락으로 만든 수염이 콧구멍을 간지려서,
'앳취!' 하고 재채기를 하는 바람에 수염은 몽땅 떨어져 달아났다.
여러 사람의 웃음은 한참만에야 진정이 되었다. 이번에는 올해 일곱 살밖에 안된 갓난이란 계집애가, 반은 선생에게 떠다밀려서 무대 한복판으로 나왔다. 커다란 리본을 단 머리를 숙여 나비처럼 곱다랗게 절을 하고는 딱 기착을 하고 서서 두 눈을 깜박깜박 하더니 은방울을 굴리는 듯한 목소리로,
“오늘 저녁에 아무 것도 준비한 것이 없는데, 이처럼 여러분께서 많이 와 주셔서 감사합니다.”
하고 부자연하게나마 글을 외듯이 한 마디를 하고는 말문이 막혀서 할낏할낏하고 뒤를 돌아다 본다. 선생이 막 뒤에 숨어서,
“우리들이 살기는 구차하지만…”
하고 뚱겨주는 소리가 여러 사람의 귀에까지 들린다.
“우리들이 살기는 구차하지만, 열심으로 배우면 이렇게 창가도 하고 유희도 할 줄 안답니다. 여러분, 여러분께서는 우리 강습소를 도와주시고, 하루바삐 새 집을 커다랗게 짓고, 내년에는 그 집에서 추석놀이를 썩 잘하게 해 주십쇼.”
하고는 다시 절을 납작하고 아장아장 걸어 들어간다.
앵무새처럼 선생의 입내를 내는 것이 어찌나 귀여운지,
“아, 고것 앙증도스러워. 조게 사봉이 딸년이지?”
하고 어떤 마누라는 한번 안아나 주려고 무대 뒤로 쫓아 들어간다.
끝으로 손풍금 소리가 다시 일어났다. 아이들은 무대 위와 아래로 가지런히 벌려서서 일제히 목청을 높인다.
삼천리 반도 금수강산
하나님 주신 내 동산
하고 제 이 백 십 구 장 찬송가를 부른다.
일하러 가세! 일하러 가!
하고 후렴을 부를 때, 아이들은 신이 나서 팔을 내저으며 발을 구르며 목청껏 소리를 지른다. 어느 틈에 원재를 위시하여 청년들과 친목계의 회원들까지 따라 불러서, 예배당 마당이 떠나갈 듯 하다. 이 노래는 한곡리서 애향가를 부르듯이 무슨 때에는 교가처럼 부르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