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만에 믿는 게 없이야 사람이 살 수 있나요?”
하고 동혁은 두 눈을 꿈쩍꿈쩍하고 잠시 침묵하더니,
“똑똑히 들어주세요. '익숙한 선장은 폭풍우를 만나면, 억지로 풍력에 저항하려는 어리석은 짓은 하지 않으나, 그렇다고 미리 절망을 해서 배가 풍파에 뒤집히도록 내버려두지도 않는다. 항상 굳은 자신과 성산(成算)을 가지고, 최후의 순간까지 온갖 지혜와 능력을 다해서 살아 나아갈 길을 열려고 노력한다'라고 한 맥도날드란 사람의 말이 조선의 청년인 나로서의 인생철학이구요.
이것도 학창시대에 어느 책에서 본 것이지만 '아무리 약한 사람이라도 그 전력을 단 한가지 목적에 기울여 쏟을 것 같으면, 반드시 성취할 수가 있다'라고 한 '카알라일'이란 사람의 한 마디가 일테면 내 신앙에요.”
하고 실내를 거닐다가 한곡리 편으로 뚫린 유리창 밖으로 눈을 달리더니, 독백하듯이,
“곡식이 무럭무럭 자라는 시퍼런 벌판을 바라보는 게 내 눈을 시원하게 해 주는 그림이구요, 저녁마다 야학당에서 아이들이 글을 배우는 소리가 내 귀를 즐겁게 해 주는 음악이에요. 난 그밖에는 철학이고 종교고 예술이고 다 몰라요. 더 깊이 알려고 들지도 않아요.”
하고는 다시 입을 다물어 버렸다.
가장 불행한 일로 두 사람은 고요히 반성할 기회를 얻었다. 이 일 저 일에 책임을 무겁게 지고, 그야말로 연자매를 돌리는 당나귀처럼 좌우를 돌아다 볼 사이가 없이 눈앞에 닥치는 일만 하여왔다.
사실 그들은 자기가 계획한 일을 맹렬히 실행은 하여 왔으나, 오늘날까지 실천해 온 것을 제 삼자의 입장으로 냉정히 비판해 볼 겨를을 갖지 못하였던 것이다. 또는 그날그날 노동을 해야만 먹고사는 품팔이군처럼 먼 장래를 바라다보고 그 나아갈 길을 더듬어 볼 마음의 여유가 없이 지내온 것도 사실이 아닐 수 없었다.
동혁은 환자가 피로를 느끼지 않을 정도로 틈틈이 이야기를 하였다. 그러면 영신은,
“난 좀더 공부를 해야겠어요. 원체 무엇 한 가지 전문으로 배운 것도 없지만요, 그나마 인전 밑천이 달랑달랑 하는 것 같아요.”
하고 어떻게든지 공부를 더 할 의향을 보인다.
“그렇지요. 좀 더가 아니라, 이제부터 공부를 하기 시작해야겠어요. 농촌 운동이란 결코 우리가 처음에 생각하던 것처럼 단순한 게 아닌 줄을 깨달았어요. 그렇지만 피차에 거의 삼사 년 동안이나 농촌 속으로 파고 들어가서 실지로 일을 했으니까, 그 체험한 걸 토대 삼아서 제일보부터 다시 내디뎌야 되겠는데, 그게 지금 형편으로는 용단하기가 어려워요.
아무튼 영신 씨는 이번에 퇴원하시면, 적어도 몇 해 동안은 육체적으로 힘든 일을 할 수 없으니까요. 병이 재발이 되는 날이면 정말 큰 일이 날 테니 여간 주의를 하지 않으면 안돼요. 청석골은 어느 정도까지 일에 터가 잡혔고, 영신 씨가 당분간 떠나 있더라도, 원재같은 착실한 청년들을 길러 놔서 학원 일은 해 나갈만하니까 휴양하는 셈치고 떠나 보시는 게 좋겠지요.”
동혁은 이번 기회에 영신이가 해외로라도 나가 보기를 권고한다. 저와 더 멀리 떨어져 있을 것은 무한히 섭섭하지만 만일 영신이를 다시 청석골로 보냈다가는 그의 성격이 몸만 자유로 쓰게 되면 잠시도 쉬지 않고 또 그러한 과도한 노동까지라도 하지 않고는 배기지 못할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지금두 연합회에서 명색 사업 보조비라구 보내 주는 게 있지요?"
"한 삼십 원씩 오더니 그나마 벌써 두 달째나 꿩 구워 먹은 자리야요. 거기서두 경비가 부족해서 쩔쩔들 매니까요."
“집으로 가서, 어머니 슬하에서 얼마 동안 쉬어 보시는 게 어떨까요?”
“싫어요. 나는 그저 어디서든지 몸 성히 있다는 소식이나 전하는 게 효돈데, 이 꼴을 하고 집으로 기어들어 보세요. 가뜩이나 나 때문에 지레 늙으신 우리 어머니가 얼마나 간장을 태우실까.”
“그도 그렇겠지만…”
동혁이도 좋은 방책이 나서지를 않았다.
“제에기, 우리 집 형편이 웬만만 하면…”
해 보기도 하나 그것도 공상이기는 매일반이다.
“동혁 씨는 앞으로 어떡하실 테야요?”
영신은 침대에서 반쯤 몸을 일으키며 묻는다.
“내야 한곡리 송장이 될 사람이니까요. 내가 없으면 처리할 수 없는 복잡한 문제가 많아서, 그 동안 나와서 있는데도 몹시 궁금한데…사실 아직은 믿을 만한 사람이 없에요.”
하고 여러 날 빗질도 못해서 부스스하게 일어난 머리를 북북 긁으며 한참이나 무엇을 생각한다.
“입때까지 우리가 한 일은 강습소를 짓고 글을 가르친다든지 무슨 회를 조직해서 단체의 훈련을 시킨다든지 하는, 일테면 문화적인 사업에만 열중했지만 앞으로는 실제 생활 방면에 치중해서 생산을 하기 위한 일을 해 볼 작정이예요. 언제는 그런 생각을 못한 건 아니지만 외면치레가 아니고 내부적인 문제를 생각하고 또 실행해야 될 줄로 생각해요.”
“참 그래요. 무엇보다도 먼저 생활이 있고서, 그 다음에 문화 사업이고 계몽운동이고 있을 것 같아요.”
영신이도 매우 동감인 뜻을 보인다.
“그러니까 이런 점에도 우리의 고민이 크지요. 우린 가장 불리한 정세의 지배를 받고 있는 게 사실이니만큼 우리 힘으로 할 수 있는 한도까지는 경제적인 사업까지 끈기 있게 할 결심을 새로 하십시다.”
하고 두 사람은 밤 깊도록 그 구체적인 방법을 토론할 때도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