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는 그에게는 소학교 교원 노릇을 할 자격까지 빼앗긴 것을 잘 알고 있는 터이라,

“그럴 리는 만무하지.”

하면서도 실지를 검사하듯이 이삿짐을 싼다는 건배의 집에는 가 보기도 싫었다.

이튿날 이른 아침 동혁은 평일과 조금도 다름없이 일어나, 회관으로 올라가서 기상나팔을 불었다. 새벽녘부터 철 아닌 궂은 비가 오는 까닭인지, 회원은 물론 다른 조기 회원도 올라오는 사람은 그전의 오분의 일도 못된다. 그 분요통에 건배까지 종적을 감추어서 조기회조차 지도자를 잃고, 흐지부지 해산을 한 것과 마찬가지다.

동혁은 웃통을 벗어부치고 비를 맞으며 체조를 하였다. 다른 사람들은 그제야 이불 속에서,

“에에키, 동혁이가 왔군.”

하고 기지개를 켜고 있었다.

동혁은 구름이 잔뜩 낀 하늘과 같이 우울해진 머리를 떨어뜨리고 내려왔다.

'어쨌든 나 헐 도리는 차려야 한다'

하고 내려오는 길에 건배의 집에를 들렀다.

“건배 - ”

하고 불러도 대답이 없는데, 마당으로 들어서 보니, 시렁 위에 있는 헌 고리짝을 내려서 빨랫줄로 묶어 놓은 것과, 바가지와 귀 떨어진 옹솥을 떼어서 돈대 위에다 올려놓은 것을 보고 그제야,

'정말 이사를 가려는 게로구나'

하고 다시 한번,

“건배 있나?”

하고 안방으로 대고 목소리를 높였다.

“아이고, 난 누구시라구요. 그저께 나가서 그저 안 들어왔어요.”

하고 젖을 문 어린애를 안고 나오는 것은 건배의 아내다. 세수도 안 해서 머리는 쑥 방석 같고 그 동안에 더 찌들어 보이는 얼굴에는 수심이 가득찼다.

'그 동안에 속이 상해서 저 꼴이 됐나 보다'하고 동혁은,

“어딜 갔어요?”

하고 물어 보았다. 건배의 아내는 떼어다만 놓고 닦지도 않아서 검정이 시꺼멓게 앉은 옹솥을 내려다보더니,

“이 정든 고장을 어떻게 떠난대요?”

하고 금세 목이 멘다.

“아 떠나다니요?”

동혁은 짐짓 놀라며 묻지 않을 수 없었다. 그는,

“뭘, 벌써 다 들으셨을 걸…”

하고 눈물이 글썽글썽해서 마당만 내려다보더니,

“참 영신 씨가 병이 대단하다죠?”

하고 딴전을 부리듯 한다.

“이젠 많이 나았어요.”

동혁은 의형제까지 한 두 사람의 정의를 생각하며 대답하였다. 그러면서 더 자세한 말은 묻기도 싫고, 그렇다고 그대로 갈 수도 없어서, 잠시 추녀 밑에서 빗발을 내려다보며 서성거리는데,

“주호야 - ”

하고 어린것의 이름을 부르며 비틀거리고 들어서는 사람! 그는 앞을 가누지 못하도록 술이 취한 이 집의 주인이었다.

썩은 생선의 눈처럼 뻘겋게 충혈이 된 건배의 눈이, 동혁의 샐쭉해진 눈과 딱 마주치자, 그는 전기를 맞은 것처럼 우뚝 섰다. 한참이나 억지로 몸을 꼬느고 섰다가,

'죽여줍시사 하는 듯이' 머리를 폭 수그리더니,

“여보게 동혁이!”

하고 와락 달려들어 손을 잡는다. 동혁의 표정도 점점 심각해진다.

“여보게 동혁이! 나 술 먹었네, 술 먹었어. 자네 덕분에 끊었던 술을, 삼 년째나 끊었던 술을 먹었네. 그저께 저녁버텀 죽기 작정하고 막 들이켰네. 참 정말 죽겠네 죽겠어. 이 사람 동혁이, 팔아먹은 양심이 아직도 조금은 남았네그려!”

하고 앙가슴을 헤치고 주먹으로 꽝꽝 치더니, 동혁의 어깨에 가 몸을 턱 실리며,

“여보게, 내 이 낯짝에 침을 뱉어 주게! 어서 똥물이래두 끼얹어 주게! 난 동지를 배반한 놈일세. 우리 손으로 지은 피땀을 흘려서 진 회관을, 아아 그 집을 그 단체를 이놈의 손으로 깨뜨린 셈일세!”

하고 진흙바닥에 가 펄썩 주저앉더니 흑흑 느끼면서,

“내가 형편이 자네만만 해도, 두 가지 맘은 안 먹었겠네. 내딴엔 참기도 무척 참았지만 원수의 목구멍이 포도청이니 어떡허나. 앞 못 보는 늙은 어머니허구 하나 둘도 아닌 어린 새끼들 허구, 이 입술에도 풀칠을 해야 살지 않겠나?”


하고 사뭇 어린애처럼 엉엉 울면서,

“우리 내외는 남몰래 굶기를 밥먹듯 했네. 못 먹고도 배부른 체하기란 참 정말 힘드는 노릇이네. 하지만 어른은 참기나 하지. 조 어린것들이야 무슨 죄가 있나? 우리 같은 놈한테 태어난 죄밖에, 이승에 무슨 큰 죄를 졌단 말인가? 그것들이 뻔히 굶네그려. 그 작은 창자를 채지 못해서 노랑방퉁이가 돼 가지구 울다울다 지쳐 늘어진 걸 보면, 눈에서 이 아비놈의 눈에서 피눈물이 나네그려.”

하고 떨리는 입술로 짭짤한 눈물을 빨면서 문지방에다가 머리를 들비비더니, 눈물 콧물로 뒤발을 한 얼굴을 번쩍 쳐들며,

“여보게 동혁이, 자넨 인생 최대의 비극이 무엇인 줄 아나? 끼니를 굶고 늘어진 어린 새끼들의 얼굴을 들여다보는 걸세! 그것들을 죽여 버리지도 못하는 어미 아비의 속을 자네가 알겠나?”

하고 부르짖으며 손가락을 피가 나도록 물어뜯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