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산이는 허리띠를 끄르더니, 쇳대를 세 번 네 번 이빨로 매듭을 지어 꼭꼭 옭매면서,

“우리 선생님 말이 없인 목이 베져두 안 내놀 테다!”

하고는 회원들이 나갈 때까지 지키고 섰다가, 회관문을 단단히 잠근 다음 그 허리띠를 바짝 졸라매었다.

아우에게서 자세한 경과를 들은 동혁은, 영신에게 오래 있었던 것을 몇번이나 후회하였다. 놀러 갔었던 것은 아니었으나, 연애와 사업은 어떠한 경우에든지 양립하기 어렵다는 것을 절실히 깨달았다.

그보다도 금방 분통이 터질 듯이 분한 것을 참을 수 없었다. 기천이가 조만간 그러한 흉책을 써서 회관을 점령하려는 눈치를 짐작 못했던 것도 아니니, 도리어 괴이쩍을 것이 없다. 그러나 이제까지 같은 지식분자로 손을 잡고 동네일을 시작하였고, 함께 온갖 고생을 참아오던 건배가 마음이 변해서, 강기천의 주구(走狗)노릇까지 하게 된 데는 피를 토하고 싶도록 분하였다.

과거의 자별하던 우정으로써 이번 행동을 호의로 해석하려는 마음의 여유를 가지려고 하면서도, 오직 원수의 구복(口腹) 때문에 참다 못해서 지조를 팔고, 다만 하나 뿐이었던 동지를, 그나마 출타한 동안에 배반한 생각을 하니 눈물이 뜨끈하게 솟았다. 비록 중심은 튼튼치 못하나마 지사적(志士的) 기개가 있고 낙천가이던 건배로 하여금 환장이 되게까지 만든 이놈의 환경이…

동혁은 금세 벙어리가 된 것처럼 입을 꽉 다물어 버렸다. 그러면서도 '설마 건배가 그다지 쉽게, 마음이 변했을라구'하고 두 번 세 번 아우의 말을 믿지 않으려고 무진 애를 썼다.

동혁은 불도 안 켜고 누워서 될 수 있는 대로 냉정히 앞으로 어떻게 하면 좋을까를 생각해 보았다.

무슨 짓을 하든지 유일한 단체인 농우회를 삼사년이나 근사(勤仕)를 모아 지은 회관째 기천의 손에 빼앗길 수는 없다. 건배를 불러다가 책망을 하고, 기천이를 직접 만나 단단히 따지고 싶은 생각이 불현듯이 나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회원의 반수 이상이 울며 겨자 먹기로 생활 문제 때문에 그편에 가 들러붙게 된 이상 일시의 혈기로써 분풀이를 하는 것으로는 문제가 더 옭혀 들어갈지언정 원만히 해결은 되지 못할 것 같았다. 성미가 관솔같이 괄괄한 동화가,

“아, 고놈의 자식을 그대로 두고 본단 말유? 내 눈에만 띄워보. 뒈지지 않을 만큼 패주고 말 테니. 징역 사는 게 농사짓는 것보다 수월하다는데, 겁날 게 뭐유?”

하고 팔을 뽐내는 것을,

“아서라, 그건 모기를 보고 환도를 뽑는 격이지. 그보다 더 큰 적수를 만나면 어떡하련? 완력으루 될 일이 있구 안 되는 일도 있는 걸 알아야 한다. 넌 아직 나 하라는 대로 가만히 있어.”

하고 타일렀다. 그것도 폭력으로는 되지 않을 성질의 일인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는 별별 생각을 다해 보다가,

“한 가지 도리밖에 없다!”

하고 부르짖으며 발길로 벽을 걷어차고 일어났다.

“그들의 빚을 갚아주는 것이다. 강가의 집 소작을 안해 먹고도 살 수 있게 만들어 주는 것이다.”

말은 간단하다. 단 두 마디밖에 안된다. 그러나 그 간단한 말은 동혁의 어깨가 휘도록 무거웠다. 현재의 저의 미약한 힘으로는 도저히 실행할 가능성이 없는 일일 것 같았다.

그 근본책을 알고도 손을 대지 못하는 동혁의 고민은 컸다.

'결국은 한 그릇의 밥이 인간의 정신을 지배한다. 더군다나 농민은 먹는 것으로 하늘을 삼는다고 옛날부터 들어 내려오지 않았는가'

이것이 흔들어 볼 수 없는 철칙인 이상 이제까지는 그 철칙을 무시는 하지 않았을망정, 첫 손가락을 꼽을 만큼 중대히 생각을 하지 않았던 것만은 스스로 부인할 수 없었다. '그것은 나 자신이 농촌의 태생이면서도 아직까지 밥을 굶어 보지 못한 인텔리 출신인 까닭이다'하고 동혁은 저 자신을 비판도 하여 보았다.

'이제까지 단체를 조직하고, 글을 가르치고, 회관을 번듯하게 지으려고 한 것은, 요컨대 메마른 땅에다가 암모니아나 과린산석회(過燐酸石灰)같은 화학 비료를 주어 농작물이 그저 엄부렁하게 자라는 것을 보려는 성급한 수단이 아니었던가?'


동혁은 냉정히 제가 해온 일을 반성하는 나머지에,


'먼저 밑거름을 해야 한다. 흠씬 썩은 퇴비를 깊숙이 주어서 논바닥이 시꺼멓도록 걸게 한 뒤에 곡식을 심는 것이 일의 순서다. 그런데 나는 그 순서를 바꾸지 않았던가?'하고 혼잣말을 하며 또다시 눈을 딱 감고 앉았다가,

'집 한 채를 가지고 다툴 때가 아니다. 동지가 배반한 것을 분하게만 여기고 흥분할 것이 없다'

 

하고 무릎을 탁 치고 일어서서 좁은 집안을 왔다갔다하다가,


'이번 기회에 영신에게도 선언한 것처럼, 제일보부터 다시 내디디지 않으면 안된다. 표면적인 문화 운동에서 실질적인 경제 운동으로 - '

결론을 얻은 동혁은 방으로 들어가 그제야 불을 켜고 서랍 속에서 동리 사람과 회원들의 수입 지출이며, 빚을 진 금액까지 상세히 적어 넣은 이세일람표(里勢一覽表)를 꺼냈다. 그것은 회원들이 여러 달을 두고 조사해 온 것으로 매우 정확한 통계였다.

그때였다. 문 밖에서 두런두런 하는 소리가 들리더니,

“선생님 오셨지요!”

하고 반대파의 회원들이 정득이를 앞장세우고 마당으로 들어섰다.

방안에 가득 들어앉은 회원들의 입에서 비분에 넘치는 호소를 받을 때 동혁이도 다시금 흥분이 되지 않는 것은 아니언만,

“참세 참아. 참을 수 없는걸 참는 게, 정말 참을 줄 아는 게라네.”

하고,

“아무튼 너무 떠들면 일이 되려 크게만 벌어지는 법이니 얼마 동안 모든걸 내게 맡겨 주게. 따로 생각하는 일도 있으니…”

하고 거듭 제가 그동안에 동리를 떠나 없었던 것을 사과하였다. 그러나 정득의 입에서,

“건배 씨는 기천이 주선으로 군청에 서기가 돼서, 아주 이사를 간대요. 한 달에 월급이 삼십 원이라나요.”

하는 말을 들을 때 동혁은 다시 한 번 놀랐다. 그러면서도,

“설마 그렇기야 할라구. 자네들이 잘못 들었지.”

하고 그 말까지는 믿지를 않으니까,

“잘못 알다니요. 오는 길에 안에서 이삿짐까지 싸는걸 봤는데요.”

그 말을 듣고도 동혁은 머리를 흔들었다. 군 서기가 그렇게 짧은 시일에 용이하게 되는 것도 아니요, 또는 건배가 오래 전부터 뒷구멍으로 운동을 하였으리라고는 콩으로 메주를 쑨대도 곧이가 들려지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