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혁은 어느날 아침, 아래와 같은 아우의 급한 편지를 받고 한곡리로 돌아왔다.
'사업이 첫째고, 연애는 둘째 세째라고 하시던 형님이 여태 돌아오지를 않으시니 대체 웬일인지요? 그 동안 집에는 별고가 없지만 강기천이가 형님 안 계신 동안에 회원들을 농락해 가지고, 우리 회관을 빼앗을려고 하니, 이 편지 받으시는 대로 즉시 오세요. 건배씨는 벌써 여러 날째 종적을 감추고 말았으니 이 일을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황급히 연필로 갈겨쓴 동화의 편지를 읽은 형은 얼굴빛이 변하도록 흥분이 되어서,
“까딱하면 십 년 공부가 도루아미타불이 될 테니까 곧 가봐야겠어요.”
하고 영신의 붕대 교환이 끝나는 것을 기다렸다.
영신이도,
“한 일주일만 더 있으면 퇴원을 할걸요. 괜히 나 때문에…”
하면서도 이번에는 손을 놓을 수밖에 없었다.
“여러분이 저렇게 번 차례로 와서 간호를 해 주시니까, 난 안심을 하고 가겠어요. 자아, 이번엔 우리 또 한곡리서 만납시다!”
하고 굳게 악수를 한 후 병실 문을 홱 열고는 뒤도 안 돌아다보고 나와 버렸다. 영신은 침대 위에 엎드려 미안과 감사와 섭섭함에 몸둘 곳을 모르고 한 시간 동안이나 울었다. 두 눈이 붓도록 울었다. 곁의 사람들이,
“이제 두 분이 혼인만 하면 한평생 이별 없이 살걸 이러지 마슈. 우리 다른 얘기나 합시다.”
하고 간곡히 위로를 해 주건만 영신은,
“어쩐지 또다신 못 만날 것만 같아요. 이번이 마지막인가 봐요!”
하고 베개 모서리를 쥐어 뜯어가며 느껴느껴 울었다.
동혁이도 무한히 섭섭하였다. 차마 발길이 돌아서지 않는 것을 영신의 눈물을 보지 않으려고 거머리를 잡아 떼듯 하고 나오기는 했어도, '이렇게 급히 떠날 줄 알았다면 우리 개인의 장래에 관한 것도 좀더 이야기를 해 둘걸'하는 후회가 길게 남았다. 그 동안 결혼 이야기만 나오면 서로 손가락 셋을 펴들어 보이며 입을 막았다. 그것은 '3개년 계획이 아직도 끝나지 않았다'는 표시였다.
그러나 동혁은, '저이가 앞으로 어떡할 작정인가. 무슨 꿍꿍이 셈을 치고 있나?…'하고 매우 궁금히 여기는 영신의 표정을 몇 번이나 분명히 읽었다. 그렇건만,
'그런 얘기는 건강이 회복된 뒤에 해도 늦지 않다'
하고 일부러 손가락 셋을 펴들어 보였던 것이다.
…이런 생각 저런 궁리에 동혁은 눈살을 펴지 못하고 집으로 돌아왔다. 한 쪽 노자는 준비해 가지고 갔었기 때문에 빨리 돌아올 수는 있었어도 아버지 어머니는 대뜸 이해 없이 꾸지람을 하는데 동화의 이야기를 듣고는 더한층 우울해졌다. 저녁때에 들어온 사람이 밥상은 웃목에다 물려 놓고,
“그래, 기천이가 어떡했단 말이냐?”
하고 물었다. 또 어디서 술을 먹었는지, 눈의 흰자위가 벌겋게 충혈이 된 아우를 불러 앉히고 물었던 것이다.
“누가 알우. 기천이가 건배 씨를 자꾸만 찾아다니구 장에까지 데리고 가서, 아주 곤죽이 되도록 술을 먹이는 걸 두 차례나 봤는데, 지난번 일요회에는 떡 이런 소릴 꺼내겠지요.”
“뭐라구?”
“암만해도 우리 회원 열 두 사람만으론 너무 적은데, 회관도 이렇게 새로 짓고 했으니, 회원들을 더 모집하세. 그 김에 회를 대표하는 회장도 한 사람 유력자로 내야 관청같은 데 신용을 얻기가 좋지 않겠나? 그러니 내 의견에 찬성하는 사람이면 손을 들라고 그러겠지요.”
“그래서 몇이나 손을 들었단 말이냐?”
“나하고 정득이하고 그런 일은 급할 게 없으니, 형님의 말을 들어보고 다시 의논도 해 봐야 경우가 옳지 않느냐고 끝까지 우기면서 손을 안 들었지요…”
“누구누구 들었단 말이야? 온 갑갑하구나.”
“석돌이가 맨 먼저 드니깐 칠용이 삼봉이 할 거 없이 여섯이나 들더군요.”
“건배는 도대체 어느 편이야?”
동혁은 시꺼먼 눈썹을 일으켜 세우고, 아우가 무슨 일이나 저지른 것처럼 노려본다.
총회와 같은 형식을 밟지 않고도 '회원 중 반수 이상의 추천이 있으면 입회를 할 수 있다'는 규약이 있기 때문에, 열 두 사람중 반수가 이미 손을 들었으니까 건배 한 사람이 어느 편으로 기울어지기만 하면 좌우간에 작정이 될 형세다. '삼십 세 이하의 남자'라는 규정도 과반수의 의견이면 뜯어고칠 수가 있는 것이다.
“그래 건배는 어느 편으로 손을 들었단 말야?”
동혁은 버쩍 다가앉으며 꾸짖듯이 묻는다.
“물어 볼게 뭐 있우? 강기천이를 입회시키는 데 찬성이지.”
동혁은 입술을 깨물었다. 동화는,
“이젠 고 강기천이란 불가사리가 우리 회의 회장이유, 회장이야!”
하고 소리를 지르며 먼지가 나도록 주먹으로 기직 바닥을 친다. 그동안 기천에게 매수를 당한 건배는 이른바 합법적으로 기천이를 회장으로까지 떠받들어 주고, 어디로 피신을 한 것이 틀림없다. 동화는 끝까지 반대를 하고 회관 마루청을 구르며,
“너희놈들은 돈을 처먹고 또 논마지기가 떨어질까 봐 겁이 나서 그따위 수작을 하는지 모르지만 우리가 죽을 고생을 해서 지어 논 집을 만만히 내놓을 듯싶으냐? 죽어 봐라 죽어 봐. 어느 놈이 우리 회관엘 들어서게 하나. 강 기천이 아니라 강 기천이 할애비래두 다리 옹두라질 부러뜨려 놀 테다!”
하고 이빨을 뿌드득뿌드득 갈며 고함을 쳤었다.
그중에도 동혁에게 절대 복종을 하는 정득이는 분을 못참고,
“우리는 회장이 일없다! 우리 선생님 하나면 고만이다!”
하고 입에 게밥을 짓는데, 회관의 쇳대를 맡은 갑산이는,
“이 의리부동한 놈들 같으니라구, 우리가 누구 때문에 이만큼이나 깼느냐? 누구 덕분에 이만큼이나 단체가 되었느냐? 아 그래 우리 선생님이 없는 동안에 피땀을 흘려서 지은 집을 고리가시하는 놈한테 팔아먹어?”
하고 맨 먼저 손을 든 석돌이의 멱살을 잡고 주먹으로 볼을 후려갈겼다. 건배는 어느 틈에 꽁무니를 뺐는데, 석돌이와 찬성파는 침 먹은 지네 모양으로 꿈쩍도 못하고 머리를 사타구니에다 틀어박고 앉았다. 칠용이는 손을 들어 놓고도 양심에 찔리는지 훌쩍훌쩍 울고 앉았다. 찬성파는 하나도 빼어놓지 않고 강도사집의 소작인들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