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게 언짢어하실 게 뭐 있어요? 얼른 결혼만 하시면 문제는 다 해결이 될걸요.”
하고 동혁은 일부러 비위를 긁어 주면서도, 그 다음 말이 궁금해서 영신의 곁으로 다가앉는다. 영신은 남자를 원망스러이 흘깃 쳐다보고는 다시금 주저주저하다가 버쩍 용기를 내어,
“저… 보통학교에 댕길 때 돌아가신 아버지가 혼인을 정해 주신 남자가 있었어요.”
이 말을 듣자 동혁의 눈은 금방 화등잔만해졌다.
이제까지 사사로운 이야기는 일부러 해 오지를 않던 터이나 영신에게 약혼한 남자가 있다는 것은 참으로 뜻밖이었다.
“아, 약혼한 사람이 있어요?”
제 아무리 침착한 동혁이라도 저도 모르는 겨를에 이 말 한 마디가 입 밖을 튀어나오는 것을 틀어막을 겨를이 없었다. 그와 반대로 영신의 태도는 매우 침착해진다.
“어려서부터 한 동네에 자라나서 저도 그이를 잘 알아요. 김 정근(金正根)이라고 시방 황해도 어느 금융조합에 취직을 했는데 사람은 퍽 얌전해요.”
하는데 그 사이에 제가 너무 당황해 하는 눈치를 보인 것을 뉘우친 동혁은, 영신의 말을 자아내는 수단으로 얼핏 말끝을 채뜨려,
“그만하면 조건이 다 구비됐군요.”
하고는 시침을 딱 갈기고 외면을 한다. 영신은 대들어서 동혁의 넓적다리를 꼬집기라도 하려는 자세를 보이다가,
“글쎄 그렇게 사람을 놀리지만 마시고 들어보세요. 대강만 얘기를 할께요.”
하고는 다시 바다 저편의 고기잡이 등불을 바라보다가,
“그런데 그이는 내가 자기하고 꼭 결혼을 할 줄만 믿구 있거든요. 지난 겨울엔 일부러 휴가를 맡아가지고 찾아왔는데, 이 말 저 말 해 가며 속을 떠 보니까 농촌 운동같은 데는 털끝만큼도 이해가 없구요, 그런 덴 취미까지도 없어요.”
“그래도 어떠한 생활의 목표는 있겠지요.”
“그저 월급이나 절약을 해서, 한 달에 얼마씩, 또박 또박 저금을 했다가, 그걸로 결혼 비용을 쓰자는 것…”
그 말에 동혁은,
“아무렴 그래야지요. 현대는 금전 만능시대(金錢萬能時代)니까요. 거 일찌감치 지각이 난 청년이로군.”
하고 시골 늙은이처럼 매우 탄복을 한다.
남은 진심으로 하는 말에, 한편에서는 자꾸만 이죽거리며 쓸까스르기만 하니까 영신은 빨끈하고 정말 성미가 났다.
“아아니 그렇게 조롱만 하시는 법이 어디 있어요? 난 인전 암말도 안 할 테야요.”
하고 톡 쏘아붙인다. 그러나 그 말쯤에 노염을 탈 동혁이가 아니다.
“아아니, 이건 결혼 얼른 못하는 화풀이를 내게다 하시는 셈이에요?”
하고 더한층 핀둥핀둥해진다.
동혁은 조바심이 날 만큼이나, 영신과 약혼한 남자와의 사이가 어떠한가 하는 것이 궁금하였다. 아무리 저에게다 가림새없이 모든 것을 터놓고 말하는 터이지만, 남녀간의 관계에 들어서는 자연 은휘하는 일이 있을 것이 의심스럽고, 어느 정도까지는 그 남자에게 질투를 느낀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죄인이나 붙잡아다 앉혀놓고 심문을 하는 것처럼 빡빡하게 물어 보면 실토를 하지 않을 듯도 해서, 일부러 농담을 하듯하며 능청스러이 상대자의 속을 떠보는 것이다.
그러다가 영신이가 정말 입을 다물어 버려서 형세가 불리하니까,
“그건 다 웃음의 말이구요… 남의 일 같지가 않으니 말이지, 그럼 그 사람은 장차 무슨 일을 하고 싶다는 거예요?”
하고 점잖게 묻는다. 그래도 영신은 성적한 색시처럼 눈을 꼭 내리감고는 입을 열려고 들지를 않는다.
“허어, 이거 정말 화가 나셨군요. 그러지 말고 어서 말씀하세요. 달이 저렇게 기울어 가는데…”
하고 동혁은 얼더듬으려고 든다.
“금융조합에서 한평생 늙을 작정이야 아니겠죠.”
영신은 그제야 조금 풀린다.
“암, 그야 그럴 테지요.”
“돈이 좀 모이면 장변이래두 놔서 늘여가지구 잡화상을 하나 내고서 생활 안정을 얻자는 게 그이의 고작 가는 이상(理想)이야요. 돈벌이를 하는 것밖에 우리로선 할 노릇이 없다는 게 이를테면 그이의 사상이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