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는 동안 한 가지 몹시 거북한 것은 식사를 할 때는 물론, 농우회 석상에서나, 마당과 한길에서까지 회원들과 동네 여자들이 이 구석 저 구석에서 수군거리며 뒤를 쫓아다니면서까지 동혁이와 영신의 행동과 눈치를 슬금슬금 살피는 것이었다.
그럴수록 두 사람은 털끝만큼도 이상한 눈치를 보이지 않았다. 그저 처음 대하는 손님과 다름없이 데면데면하게 굴었다.
그 뒤로 기만이는 영신을 청하려고 몇 번이나 동혁의 집으로 행랑아범을 보내고 머슴을 시켜 청좌하는 편지까지 보내곤 하였다. 동혁은,
“그분이 왜 우리 집에 있는 줄 아나?”
해서 돌려보내기도 하고, 전달해달라는 편지는 받아두고도, 영신에게 전할 필요를 느끼지 않았다. 영신이가 그런 편지를 직접 받았더라도, 몸이 불편하다고 핑계를 하든지 해서, 이른바 초대회에 까닭 없는 주빈 노릇하기를 거절하였으리라.
동리에 가난한 사람들을 위하는 일이나, 무슨 집회 같은 데는 자발적으로 출석을 하였지만 기만이의 심심풀이를 해 주거나, 그런 사람이 자랑하는 생활을 보기 위해서, 더구나 홀로 지낸다는 남자를 찾아가고 싶지가 않았던 것이다. 사업을 위해서는 소 갈데 말 갈 데 없이 다니나, 이러한 경우에는 처녀로서의 처신을 가지고, 조심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한편으로 기만이는 매우 분개하였다.
“제가 얼마나 도도한 계집이길래, 내가 여러 번 청하는데 안 온단 말이냐!”
하고 하인을 세워 놓고 몰아대다가,
“동혁이버텀 못생긴 자제지. 저한테 온 여자를 내가 어쩔 줄 아나? 어디 얼마나 버티나 보자.”
하고 벼르기까지 하였다.
그러다가 하루는 낮이 훨씬 겨워서 기만이는 자회색 봄 양복을 말쑥하게 거들고 도금으로 장식을 한 단장을 휘두르며, 바닷가 영신이가 유숙하는 집으로 찾아갔다. 영신은 잡지를 보고 누웠다가 몸을 일으키며,
“어디 가시는 길이세요?”
하고 달갑지 않게 맞았다.
“하두 여러 번 청해두 안 오시길래, 몸이 편치 않으신가 하구 지나는 길에 들렀습니다.”
하며 꾸며대는 말에, 영신은 '지나는 길이라니 바다 속에 볼 일이 있었나'하고 속으로 웃었다.
이러한 궁벽한 촌에서 빳빳한 칼라에 자주빛 넥타이를 매끈하게 매고 나온 것이, 옥색 저고리에 부사견 바지를 입었던 것만큼이나 눈허리가 시었다. 방으로 들어오라고만 하면, 마냥 늑장을 부리고 앉을 것 같아서 멀리 신작로편 쪽을 바라다보고 앉았다가, 양복장이 서넛이 자전거를 타고 지나가는 것을 보고,
“저게 뭘하러 쏘다니는 사람들인가요?”
하고 한 마디를 물었다. 기만이는 문지방에 가 걸터앉으며 안경 속에서 실눈을 짓고, 맨 앞에 곡마단의 원숭이처럼 허리를 발딱 제치고 자전거를 저어가는 사람을 가리키더니,
“저게 우리 아니끼(형)예요. 저 아니끼 때문에 원, 창피해서.”
하고 기만이는 고개를 돌리며, 소태나 먹은 듯이 입맛을 다신다. 영신은 건배에게 들은 말이 있어서,
“형제분이 뜻이 맞지 않으시는 게로군요?”
하고 아우의 편을 드는 체하니까, 기만이는 삐죤을 꺼내 피워물며,
“아니끼는 당최 이마빼기에 송곳을 꽂아두 진물 한 방울 안 나올 에고이스트(利己主義者)야요. 돈푼 긁어모으는 것밖에는 아무 취미도 모르는 인간인데, 게다가 면협 의원인가 하는 게 큰 벼슬이나 되는 줄 알구 뽐내는 화상이야 요란하지요. 이래저래 나하군 매사에 충돌이니까요. 오늘 아침에두 대판으로 싸웠는걸요.”
한다.
“왜요?”
“어 엊저녁엔 공직자 부스러기들을 대접한다구 주막의 갈보까지 불러다가, 밤새두룩 술상을 벌여 놓구 뚱땅거려서, 잠두 못 자게 굴길래 그래서 한바탕 야단을 쳤지요.”
하고 백판 아무 상관도 없는, 더구나 초면의 여자를 대해서 제 형을 개 꾸짖듯 한다. 영신은 담배 연기를 피하느라고 외면을 하면서 '참 정말 별 쑥스런 자제를 다 보겠군' 하면서도, 하는 소리를 들어보느라고,
“그래두 그만큼 유력하신 분이니까, 동네 일을 열성 있게 보시겠지요.”
하고 넘겨짚었다. 기만은 핥아 놓은 것처럼 지꾸를 바른 머리를 홰홰 내저으며,
“말씀 마세요. 박동혁이 김건배 할 것 없이 이 동네의 젊은 사람들은 아주 원수 치부를 하는 걸요.”
“왜요? 퍽 건실한 분들인데요.”
“그 속이야 뻔하지만… 그까짓 게 무슨 얘깃거리나 되나요?”
하고 기만은 일본말로,
“도니가꾸 안나 진부쓰가 무라니 오루까라 난니모 데끼꼬 아리마셍요.”
'아뭏든 저따위 인물이 동네에 있으니까 무슨 일이구 될 턱이 없지요'하고 결론을 짓더니, 조츰조츰 영신의 앞으로 다가앉으며 말머리를 돌리려고 든다.
영신은 어이가 없어 '대체 당신은 얼마나 낫소?' 하고 입 밖까지 나오는 말을 마른 침으로 꼴깍 삼키고 솜털하나 없이 면도질을 한 기만의 얼굴을 말끄러미 쳐다보았다.
그때 마침 건배의 아낙이 꽃게를 서너 마리나 들고 새로 조직된 부인근로회의 회원들을 대여섯 사람이나 데리고 왔다. 영신은 구원병이나 만난 듯이 그네들을 반기는데 기만은,
“그럼 내일 저녁에래두 놀러와 줍시요. 꼭 기다리겠습니다.”
하고 어물어물하다가 멋적게 꽁무니를 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