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주일 동안이나 동혁이와 건배 내외의 극진한 대접을 받고, 숙식을 부드러이 지내서 영신은 건강이 매우 회복되었다. 처음부터 어느 한 귀퉁이에 병이 깊이 들었던 것이 아니요, 영양 부족과 과로한 탓으로 전신이 매우 쇠약해졌던 터이라, 불과 며칠 동안에 눈에 보이는 듯이 피부가 윤택해지고 혈색이 좋아졌다.
영신이 자신도 동지들의 자별한 성의에 눈물이 날만큼이나 고마와서, 아침저녁으로 한곡리 청년들의 건강과 그네들의 사업을 위해서 정성껏 기도를 올렸다. 처음에는 고작해야 사나흘만 견습도 할 겸 쉬어 가자던 것이 '하루만 더, 이틀만 더'하고 간곡히 붙잡는 통에 자별한 호의를 매몰스러이 뿌리치고 일어서기가 어려웠다. 그 중에도 건배의 아낙은,
“아우님, 우리가 한번 작별하면 언제 다시 만날지 모르는데.”
하고 눈물을 흘려가며 붙잡아서, 차마 떼치고 일어설 수가 없었다.
그러나 영신은 하루라도 더 남의 신세를 지며 저 혼자만 편하게 지내는 것이, 무슨 죄나 짓는 것처럼 청석골 사람들에게 미안하였다.
영신이가 청석골로 내려가, 자리를 잡은 뒤에 야학의 교장겸 소사의 일까지 겹쳐하고 어린애들에게는 보모요, 부녀자들에게는 지도자가 될 뿐 아니라, 교회의 관계로 전도부인 노릇도 하고, 간단한 병이면 의사노릇까지 하여 왔다.
그렇게 몸 하나를 열에 쪼개내도 감당을 못할 만큼이나 바쁘게 지내던 사람이, 여러 날 나와 있으니 모든 사세가 하루라도 더 머무르기가 어려웠다. 그 중에도 눈에 암암한 것은 저녁마다 손목과 치마꼬리에 매어달리던 어린이들이요, 귀에 쟁쟁한 것은,
“선생님! 선생님!”
하고 부르던 아이들의 목소리다.
엄동설한에도 홑고쟁이를 입고 다니던 계집아이들 - 그러면서도 으슥한 구석으로 선생을 무작정 끌고 가서, 황률이나 대추같은 것을 슬그머니 손에 쥐어 주고는 부끄러워서 꼬리가 빠질 듯이 달아나던 그 정든 아이들 - .
한번은 이런 일까지 있었다.
어느 눈 내리던 날 밤, 야학을 파하고 사숙으로 돌아가는 길인데, 아버지도 어머니도 잃어버리고 일가집에 붙어서 사는 금분이란 계집애가 숨이 턱에 닿아서 쫓아오더니, 선생님의 자켓 주머니에다가 꽁꽁 언 손에 쥐고 있던 것을 넌지시 넣어 주고 달아났다.
“아서라, 이런 것 가져오지 말구우 네나 먹어라. 응.”
하면서도 영신은 어린애의 정을 물리칠 수가 없어서 '왜콩이나 밤톨이거니'하고 만져 보지도 않고 가서 자켓을 벗어 거는데 방바닥으로 우르르 쏟아지는 것을 보니, 껍질을 말끔 깐 도토리였다.
영신은 떫어서 먹지도 못하는 그 도토리를 접시에 소복히 담아 책상머리에 놓고 들여다보고 손바닥에 굴려 보고 하다가 콧마루가 시큰해지더니 눈물이 뜨끈하게 솟던 생각이 났다. 그런 생각을 하면 금시 그 아이들이 보고 싶어, 당장 날아라도 가서 안아 주고 싶은 것을 억지로 참고 있었다.
거짓말은커녕, 실없는 소리도 잘하지 않는 동혁이까지,
“발동선이 고장이 나서 못 댕긴다는데, 저 바다를 건너뛸 재주가 있거던 가보시지요.”
하고 붙잡는 바람에 그 말을 곧이듣고 한 이틀을 더 묵었던 것이다.
그러나 영신은 누구에게도 발표하지 못할 고민을 가슴속에 감추고 왔었다. 사실은 그 고민을 해결짓기 위해서 동혁이와 의논을 할 양으로 일부러 온 것이었다.
정양을 하려는 것도, 동혁이가 실지로 일하는 것을 보고 싶었던 것도 사실이었지만 이십이 훨씬 넘은 처녀로서, 저 혼자로는 해결을 지을 수 없는 일생에 중대한 문제와 부딪쳤기 때문이다. 여간한 남자보다도 용단성이 있는 영신이언만 동혁이와 단둘이 만나서 가슴속의 비밀을 조용히 고백할 기회도 없었거니와, 동혁의 얼굴만 마주 대해도 그 말을 끄집어내려든 용기가 자라 모가지처럼 옴츠러들곤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