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 한숨 자지를 못해서 머리가 무겁고 눈이 빡빡한데 교실 한복판에 가서 한참 동안이나 실신한 사람처럼 우두커니 섰자니 어찔어찔하고 현기증이 나서 이마를 짚고 있다가 다리를 허청 떼어놓으며 칠판 앞으로 갔다.

그는 분필을 집어 가지고 교단 앞에서 삼분의 일 가량 되는 데까지 와서는, 동편쪽 끝에서부터 서편쪽 창 밑까지 한일자로 금을 쭉 그었다. 그리고 아이들이 오는 것을 기다렸다가 예배당 문을 반쪽만 열었다. 아이들은 여느 때와 조금도 다름이 없이 재잘거리며 앞을 다투어 우르르 몰려 들어 온다.

영신은 잠자코 맨 먼저 온 아이부터 하나씩 둘씩 차례 차례로 분필로 그어 놓은 금 안으로 앉혔다. 어느덧 금 안에는 제한 받은 팔십 명이 찼다.

“나중에 온 아이들은 이 금 밖으로 나가 앉아요. 떠들지들 말구.”

선생의 명령에 늦게 온 아이들은 영문도 모르고, '오늘은 왜 이럴까'하는 표정으로 선생의 눈치를 힐끔힐끔 보며, 금밖에 가서 쭈그리고 앉는다.

아이들에게 제비를 뽑힐 수도 없고 하급생이라고 마구 몰아내는 것은 공평하지가 못할 듯해서, 영신은 생각다 못해 나중에 오는 아이들을 돌려보내려는 것이다. 나중에 왔다고 해도 시간으로 보면 불과 십분 내외의 차이 밖에 나지 않지만 그렇게 하는 도리 이외에 아무 상책이 없었던 것이다.

영신은 아이들을 다 들여앉힌 뒤에, 원재와 다른 청년들에게 그제야 그 사정을 귀뜸해 주었다. 그런 소문이 미리 나면 일이 더 복잡해질 것을 염려하였기 때문이었다. 그 말을 듣는 청년들의 얼굴빛은 금새 흑빛으로 변하였다.

“암말두 말구 나 하라는대루만 장내를 잘 정돈해 줘요. 자세한 얘긴 이따가 할께.”


청년들은 영신을 제대로 신임하는 터이라 입술을 지긋이 깨물고 침통한 표정을 지을 뿐이다. 영신은 찬찬히 교단 위에 올라섰다. 그 얼굴빛은 현기증이 나서 금방 쓰러지려는 사람처럼 해쓱해졌다. 아이들은 '선생님이 무슨 말을 하시려고 저러나'하고 저희들깐에도 보통 때와는 그 기색이 다른 것을 살피고는, 기침 하나 안하고 영신을 쳐다본다.

영신은 입술만 떨며 얼른 말을 꺼내지 못하고 섰다. 사제간의 정을 한칼로 베어내는 것 같은 마루바닥에 그어 놓은 금을 내려다보고 그 금밖에 오십여 명 아동이 옹기종기 모여 앉아서 무슨 무서운 선고나 내리기를 기다리는 듯한, 그 천진한 얼굴들을 바라볼 때, 영신은 눈두덩이 뜨끈해지며, 목이 막혀서 말을 꺼낼 수가 없다. 한참만에야 그는 용기를 내었다. 그러다가 풀이 죽은 목소리로,

“여러 학생들 조용히 들어요. 오늘은 선생님이 차마 하기 어려운 섭섭한 말을 할 텐데…”

하고 나서 다시 주저주저하다가,

“저… 금 밖에 앉은 아이들은 오늘부터 공부를… 시킬 수가 없게 됐어요!”

하였다. 청천의 벽력은 무심한 어린이들의 머리 위에 떨어졌다. 깜박깜박하고 선생을 쳐다보던 수 없는 눈들은 모두가 동그래졌다.

“왜요? 선생님, 왜 글을 안 가르쳐 주신대유?”


그 중에 머리가 좀 굵은 아이가 발딱 일어나며 질문을 한다.

영신은 순순히 타이르듯이 집이 좁아서 팔십 명밖에는 더 가르칠 수가 없게 되었다는 것과, 올 가을에 새집을 지으면 꼭 잊어버리지 않고, 한 사람도 빼어 놓지 않고 불러 주마고 빌다시피 하였다.

“그럼 입때꺼정은 이 좁은 데서 어떻게 가르쳐 주셨시유?”

이번엔 제법 목소리가 패인 남학생의 질문이 들어왔다. 영신은 화살이나 맞은 듯이 가슴 한 복판이 뜨끔하였다. 말대답을 못하고 머리가 핑 내둘려서 이마를 짚고 섰는데 금 밖에 앉았던 아이들은 하나 둘, 앉은 채 엉금엉금 기어서, 혹은 살금살금 뭉치면서 금 안으로 밀려 들어오다가,

“선생님! 선생님!”

하고 연거푸 부르더니 와르르 교단 위까지 뛰어오른다.

영신은 오십여 명이나 되는 아이들에게 에워싸였다.

“선생님!”

“선생님!”

“전 벌써 왔에요.”

“뒷간에 갔다가 쪼끔 늦게 왔는데요.”

“선생님, 난 막동이버덤두 먼첨 온 걸, 저 차순이두 봤어요.”

“선생님, 내일버텀 일찍 오께요. 선생님버덤 일찍 오께요.”

“선생님, 저 좀 보세요. 절 좀 보세요! 인전 아침두 안 먹구오께 가라구 그러지 마세요. 네! 네!”

아이들은 엎드러지며 고꾸라지며 앞을 다투어 교단 위로 올라와서, 등을 밀려 넘어지는 아이에 발등을 밟히고 우는 아이에 가뜩이나 머리가 휭한 영신은 정신이 아찔아찔해서 강도상 모서리를 잡고 간신히 서 있다. 제 몸뚱이로 버티고 선 것이 아니라 아이들에게 포위를 당해서 쓰러지려는 몸이 억지로 떠받들려 있는 것이다.

“선생님!”

“선생님!”

아이들의 안타까운 부르짖음은 귀가 따갑도록 그치지 않는다. 그래도 영신은 눈을 내리감고 아랫입술을 지긋이 깨물 뿐…

“내려들 가!”

“어서 내려들 가거라!”

“말 안 들으면 모두 내쫓을 테다.”

하면서 영신을 도와주는 청년들이 아이들을 끌어내리고 교편을 들고 얼러메건만, 그래도 아이들은 울며불며 영신의 몸에 가 찰거미처럼 달라붙어서 죽기 기쓰고 떨어지지를 않는다.

영신의 저고리는 수세미가 되고, 치맛주름까지 주루루 뜯어졌다. 어떤 계집애는 다리에다 깍지를 끼고 엎드려서 꼼짝을 못하게 한다.

영신은 뜯어진 치맛폭을 휩싸쥐고 그제야,

“놔라, 놔! 얘들아, 저리들 좀 가 있어. 온 숨이 막혀서 죽겠구나!”

하고 몸을 뒤틀며 손과 팔에 매어달린 아이들을 가만히 뿌리쳤다. 아이들은 한번 떨어졌다가도 혹시나 제가 빠질까 하고 다시 극성스레 달라붙는다. 이 광경을 본 교회의 직원들이 들어와서 강제로 금밖에 앉았던 아이들을 예배당 밖으로 내몰았다. 사내아이 계집아이 할 것 없이 어머니의 젖을 억지로 떨어진 것처럼 눈이 빨개지도록 홀짝홀짝 울면서 또는 흑흑 흐느끼면서 쫓겨 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