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로는 대머리를 번득이며 쫓아 나가서 예배당 바깥문을 걸고 빗장까지 질렀다. 아이들이 소동을 해서 시끄러워 골치도 아프거니와, 경찰의 명령을 듣지 않았다가는 교회의 책임자인 자기의 발등에 불똥이 튈까 보아 적지 아니 겁이 났던 것이다.

아이들의 등뒤에서 이 정경을 바라보던 영신은 깨물었던 눈물이 주루루 흘러내렸다. 영신은 그 눈물을 아이들에게 보이지 않으려고 소매로 얼굴을 가리며 돌아섰다. 한참이나 진정을 하고나서는, 저희들깐에도 동무들을 내쫓고 공부를 하게 된 것이 미안 쩍은 듯이 머리를 떨어 뜨리고 앉은 나머지 여든 명을 정돈시켜 놓고 차마 내키지 않는 걸음 걸이로 칠판 앞으로 갔다.

그는 새로운 과정을 가르칠 경황이 없어서,

“오늘은 우리 복습이나 하지.”

하고 교과서로 쓰는 농민독본을 펴 들었다. 아이들은 글자 모으는 법을 배운 것을 독본에 있는 대로,

“누구든지 학교로 오너라.”

“배우고야 무슨 일이든지 한다.”

하고 풀이 죽은 목소리로 외기를 시작한다.

영신은 그 생기 없는 아이들의 목소리가 듣기 싫은데, 든 사람은 몰라도 난 사람은 안다고 이가 빠진 듯이 띄엄띄엄 벌려 앉은 교실 한 귀퉁이가 훤한 것을 보지 않으려고 유리창 밖으로 눈을 돌렸다.

창밖을 내다보던 영신은 다시금 콧마루가 시큰해졌다. 예배당을 두른 야트막한 담에는 쫓겨나간 아이들이 머리만 내밀고 쭈욱 매달려서 담 안을 넘겨다보고 있지 않은가. 고목이 된 뽕나무 가지에 닥지닥지 열린 것은 틀림없는 사람의 열매다. 그 중에도 키가 작은 계집애들은 나무에도 기어오르지 못하고 땅바닥에 가 주저앉아서 홀짝거리고 울기만 한다.

영신은 창문을 말끔히 열어 제쳤다. 그리고 청년들과 함께 칠판을 떼어 담밖에서도 볼 수 있는 창 앞턱에다가 버티어 놓고 아래와 같이 커다랗게 썼다.

“누구든지 학교로 오너라.”

“배우고야 무슨 일이든지 한다.”

나무에 오르고 담장에 매어달린 아이들은 일제히 입을 열어 목구멍이 찢어져라고 그 독본의 구절을 바라다보고 읽는다. 바락바락 지르는 그 소리는 글을 외는 것이 아니라 어찌 들으면 누구에게 발악을 하는 것같다.

그러한 상태로 얼마동안을 지냈다. 그래도 쫓겨나간 아이들은 날마다 제시간에 와서 담을 넘겨다보며 땅바닥에 엎드려 손가락이나 막대기로 글씨를 익히며 흩어질 줄 모른다. 주학과 야학으로 가르고는 싶으나 저녁에는 부인 야학이 있어서 번 차례로 가르칠 수도 없었다.

'집을 지어야겠다. 무슨 짓을 해서든지 하루바삐 학원을 짓고 나가야겠다!' 영신의 결심은 나날이 굳어갔다. 그러나 그 결심만으로는 일이 되지 못하였다. 그는 원재와 교회 일을 보는 청년들에게 임시로 강습하는 일을 맡기고는 청석학원 기성회 회원 방명부(靑石學院期成會會員芳名簿)를 꾸며 가지고 다시 돈을 청하러 나섰다. 짚신에 사내처럼 감발을 하고는 오늘은 이 동리, 내일은 저 동리로 산을 넘고, 논길을 헤매며 단 십 전 이십 전씩이라도 기부금을 모으러 다녔다.

폭폭 찌는 삼복 중에 인가도 없는 심산궁곡으로 헐떡거리며 돌아다니자면 목이 타는 듯이 조갈이 나는 때도 많았다. 논 귀퉁이 웅덩이에 흥건히 고인 물을 손으로 떠서 마시기도 하고 어떤 때는 긴긴 해에 점심을 굶어 시장기를 이기지 못하고 더운 김이 후끈후끈 끼치는 풀밭에 행려병자(行旅病者)와 같이 쓰러져서 정신을 잃은 때도 있었다. 촌가로 찾아 들어가면 보리밥 한술이야 얻어먹을 수가 없는 것은 아니언만 굶으면 굶었지 비렁뱅이처럼,


“밥 한 술 줍쇼.”

하기까지는, 자존심이 허락을 하지 않았던 것이다. 그러다가는 저녁까지 굶고 눈이 하가마가 되어서 캄캄한 밤에 하늘의 별만 대중해서 방향을 잡고 오는 날도 건성 드뭇하였다.

집에까지 죽기 기쓰고 기어 들어와 턱 눕는 것을 보면 원재 어머니는,

“아이고 채 선생님, 이러다간 큰 병이 나시겠구료. 사람이 성하구야 학원 집이구 뭣이구 짓지, 온 가엾어라. 아주 초죽음이 되셨구료.”

하고는 영신의 다리 팔을 주물러 주고 더위를 먹었다고 영신환을 얻어다 먹이고 하였다.

그렇건만 기부금을 적은 명부를 펴보면 하루에 사십 전 오십 전 끽해야 이삼 원밖에는 적히지를 않았다. 원재 어머니는 이태 동안이나 영신이와 한집에서 살고 밥을 해주는 동안에 글을 깨치고 쉬운 한문자까지도 알아보게 된 것이다. 그는 영신의 감화를 받아 교회의 권사 노릇까지 하게 되었고, 영신이가 와서 발기한 부인 친목계의 서기겸 회계까지 보게 되었다. 그래서 영신과 정도 들었거니와 그를 천사와 같이 숭앙하고 친절을 다하는 터이다.

청석골 강습소가 폐쇄를 당할 뻔하였다는 것과 기부금을 모집하러 다닌다는 소식을 영신의 편지로 안 동혁은,

'건강을 해치도록 너무 무리하게는 일을 하지 마십시다. 우리는 오늘만 살고 말 몸이 아니기 때문이외다. 그저 칡덩굴처럼 줄기차게 뻗어 나가고 황소처럼 꾸준하게만 우리의 처녀지(處女地)를 갈며 나가면 끝나는 날이 있을 것입니다'


하고 몇 번이나 간곡히 건강을 주의하라는 편지가 왔다. 그러나 그러한 편지는 도리어 달리는 말에게 채찍질을 하는 듯 영신으로 하여금 한층 더 용기를 돋우게 하고 분발하게 하는 원동력이 되었다.

그는 생각다 못해서 기부금을 십 원이고 이십 원이고 적어 놓고 이 핑계 저 핑계로 내지 않는, 근처 동리의 밥술이나 먹는 사람들을 다시 한 번 찾아다녔다. 그 중에도 번번이 따고 면회를 하지 않는 한 낭청이란 부자집에는 '어디 누가 못 견디나 보자'하고 극성맞게 쫓아가서는 기어이 젊은 주인을 만나 보고 급한 사정을 하였다. 그러나,

“여보 이건 빚졸리기버덤 더 어렵구려. 글쎄 지금은 돈이 없다는데 바득바득 내라니, 그래 소 팔구 논 팔아서 기부금을 내란 말요? 온 우리집 자식들이 한 놈이나 강습손가 하는 델 댕기기나 하나!”

하고 배를 내민다. 영신은 참다 못해서 속으로 '에에끼 제 배때기 밖에 모르는 놈 같으니 그래도 술담배 사먹는 돈은 있겠지' 하고 사랑마당에다가 침을 탁 배앝고 돌아선 때도 있었다. 이래저래 영신은 근처 동리의 소위 재산가 계급에서는 인심을 몹시 잃었다.

“어디서 떠 들어온 계집이 그 뻔세야. 기부금에 병풍 상성을 해서 쏘댕기니 온, 나중엔 별 꼴을 다 보겠군.”

하고 귀먹은 욕을 먹었다 그와 동시에 주재소에서는 주의를 시켰는데도 또 기부금을 강청한다고 다시 말썽을 부리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