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니 줄잡아도 오륙 백 원이나 들여야 할 학원을 지을 엄두가 나지를 않았다. 영신이가 하도 집을 짓지 못해서 성화를 하니까 다른 회원들은,

“급히 먹는 밥이 체한다우. 우리 선생님두 성미가 퍽 급하셔.”

하고 위로하듯 하기도 한두 번이 아니었다.

그럴수록 아이들은 한꺼번에 대여섯 명, 어떤 때는 여나무 명씩 부쩍부쩍 는다. 고등학교가 시오리 밖이나 되는 곳에 있고 간이(簡易)학교라고 새로 생긴 것도 장터까지 가서야 있으니, 배움에 목마른 아이들은 등잔불로 날아드는 나비처럼 청석골로만 모여들 수밖에 없는 형세다. 요새 들어온 아이들까지 합하면 거의 일백 삼십여 명이나 된다.

그러나 장소가 좁다는 이유로 한 아이도 더 수용할 수 없다고 오는 아이를 쫓을 수는 없다.

영신은,

'아무나 오게, 아무나 오게.' 하는 찬송가 구절을 입속으로 부르며 '오냐, 예배당이 터지도록 모여 오너라. 여름만 되면 나무그늘도 좋고, 달밤이면 등불도 일없다.' 하고 들어오는 대로 받아서 그곳 보통학교를 졸업한 젊은 사람의 응원을 얻어, 남자와 여자와 초급과 상급으로 반을 나누어 가르치기 시작하였다.

영신을 숭배하고 일을 도와주는 순진한 청년이 서너 명이나 되지만 그 중에도 주인집의 외아들인 원재는, 영신의 말이라면 절대로 복종을 하는 심복이었다. 같은 집에 살기도 하지만 상급학교에는 가지 못하는 처지라 틈틈이 영신에게서 중등 학과를 배우는 진실한 청년이다.


가뜩이나 후락한 예배당 안은 콩나물을 기르는 것처럼 아이들도 빽빽하다. 선생이 비비고 드나들 틈이 없을 만큼 꼭꼭 찼다. 아랫반에서,

“'가'자에 기역 하면 '각'하고”

“'나'자에 니은 하면 '난'하고”


하면서 다리도 못 뻗고 들어앉은 아이들은, 고개를 반짝 들고 칠판을 쳐다보면서 제비 주둥이같은 입을 일제히 벌렸다 오무렸다 한다. 그러면 윗반에서는 '농민독본'을 펴놓고,

잠자는 자 잠을 깨고

눈먼 자 눈을 떠라

부지런히 일을 하여

살 길을 닦아 보세

하며 목청이 찢어져라고 선생의 입내를 낸다. 그 소리를 가까이 들으면 귀가 따갑도록 시끄럽지만 멀리 축동 밖에서 들을 때,

'아아, 너희들이 인제야 눈을 떠 가는구나!' 하며 영신은 어깨춤이 저절로 났다.

그러다가 어느 날 저녁 때였다. 영신의 신변을 노상 주목하고 다니던 순사가 나와서 다짜고짜,

“주임이 당신을 보자는데, 내일 아침까지 주재소로 출두를 하시오.”

하고 한 마디를 이르고는 말대답을 들을 사이도 없이 자전거를 되집어 타고 가버렸다.

'무슨 일로 호출을 할까? 강습소 기부금은 오백 원까지 모집을 해도 좋다고 허가를 해주지 않았는가'

영신은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았다. 웬만한 일 같으면 출장 나온 순사에게 통지만 해도 그만일 텐데, 일부러 몇십 리 밖에서 호출까지 하는 것은 무슨 까닭이 붙은 일인지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영신이가 처음 내려오던 해부터 이 일 저 일에 줄곧 간섭을 받아왔었지만, 강습소 일이나 부인 친목계며 그밖에 하는 일을 잘 양해를 시켜오던 터이라, 더욱 의심이 나지 않을 수 없었다.

별별 생각이 다 나서 영신은 그날밤 잠을 잘 자지 못하고, 이튿날 새벽밥을 지어 달래서 먹고는 길을 떠났다. 이십 리는 평탄한 신작로지만 나머지는 가파른 고개를 넘느라고 발이 부르트고 속옷이 땀에 젖었다.

…영신과 주재소 주임 사이에 주고받은 대화나 그 밖의 이야기는 기록하지 않는다. 그러나 호출한 요령만 따서 말하면,

“첫째는 예배당이 좁고 후락해서 위험하니 아동을 팔십 명 이외에는 한 사람도 더 받지 말라는 것과, 둘째는 기부금을 내라고 돌아다니며, 너무 강제 비슷이 청하면 법률에 저촉이 된다.”

는 것을 단단히 주의시키는 것이었다. 영신은 여러 가지로 변명도 하고 오는 아이들을 안 받을 수가 없다고 사정사정 하였으나,

'상부의 명령이니까 말을 듣지 안하면 강습소를 폐쇄시키겠다.'고 얼러매어서 영신은 하는 수 없이 입술을 깨물고 주재소 밖을 나왔다.

그는 아픈 다리를 간신히 끌고 돌아와서 저녁도 안 먹고 그날 밤을 꼬박이 새우다시피 하였다.

'참자! 이보다 더한 것도 참아 왔는데, 이만한 일이야 참지 못하랴' 하면서도 좀더 시원하게 들이대지를 못하고 온 것이 종시 분하였다. 그러나 혈기를 참지 못하고 떠들었다가는 제한 받은 수효의 아이들마저 가르치지 못하게 될 것을 생각하고 꿀꺽 참았던 것이다. 아무튼 어길 수 없는 명령이매, 내일부터 일백 삼십여 명 중에서 팔십 명만 남기고 오십 명을 쫓아내야 한다.

'난 못하겠다! 차라리 예배당 문에 못질을 하는 한이 있더래도 내 손으로 차마 그 노릇은 못하겠다!' 하고 영신은 부르짖으며 방바닥에 가 쓰러져 버렸다. 한참 동안이나 엎치락뒤치락 하며 홀로 고민을 하였다.

그는 불을 끄고 이불을 뒤집어쓰고 누웠다. 그러나 이제까지 갖은 고생과 온갖 곤욕을 당해오면서 공들여 쌓은 탑을 그 밑동부터 제 손으로 허물어뜨릴 수는 없다. 청석골 와서 몇 가지 시작한 사업 중에 가장 의미깊고 성적이 좋은 한글 강습을 중도에서 손을 뗄 수는 도저히 없다.

'어떡하면 나머지 오십 명을 돌려보낼꼬? 이제까지 두 말 없이 가르쳐 오다가 별안간 무슨 핑계로 가르칠 수가 없다고 한단 말인가?'

거짓말을 하기는 죽어라고 싫건만 무어라고 꾸며대지 않을 수 없는 형세다. 아무리 곰곰 생각해 보아도 묘책이 나서지 않아서 그는 하룻밤을 하얗게 밝혔다.

창밖에 새벽별이 차차 빛을 잃어갈 때, 영신은 세수를 하고 나와서 예배당으로 올라갔다. 땅 위의 모든 것이 아직도 단꿈에서 깨지 않아 천지는 함께 괴괴하다. 영신은 이슬이 축축히 내린 예배당 층계에 엎드려 경건한 마음으로 기도를 올렸다.


“주여, 당신의 뜻으로 이 곳에 모여든 귀엽고 사랑스러운 어린양들이 오늘은 그 삼분의 일이나 목자를 잃게 되었습니다. 다시 어둠 속에서 헤매일 수밖에 없이 되었습니다.

주여, 그 가엾은 무리가 낙심하지 말게 하여 주시고 하나도 버리지 마시고 다시금 새로운 광명을 받을 기회를 내려주시옵소서. 오오 주여, 저의 가슴은 지금 매어질듯 합니다!”

영신은 햇발이 등 뒤를 비추며 떠오를 때까지, 그대로 엎드린 채 소리 없이 흐느껴 울었다.

월사금 육십 전을 못 내고 몇 달씩 밀려오다가 보통 학교에서 쫓겨난 아이들이, 그날도 두 명이나 식전에 책보를 들고 그 학교의 모자표를 붙인 채 왔다.

“얘들아, 참 정말 안됐지만, 인전 앉을 데가 없어서 받을 수가 없으니, 가을부터 오너라. 얼마 있으면 새집을 커다랗게 지을텐데 그때 꼭 불러주마 응.”

하고 영신은 그 아이들의 이름을 적고는 등을 어루만져 주며 간신히 돌려보냈다. 그리고는 다른 아이들이 오기 전에 예배당으로 들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