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신은 달례를 데리고 남으로 남으로 걸었다.

뒤에서 무엇이 따르는 것만 같고 수풀 속에서도 무엇이 뛰어나오는 것만 같았다. 미인과 재물을 지니고 가는 것만 하여도 마음 조리는 일이어든 하물며 남의 약혼한 처녀를 빼어가지고 달아나는 조신의 마음의 조림은 비길 데가 없었다.

게다가 달례의 말을 듣건댄, 그의 새서방이 될 뻔한 모례는 글도 잘하거니와, 칼도 잘 쓰고 활도 잘 쏘고 말도 잘 달리고 또 풍악도 잘하는 화랑이었다. 모례가 칼을 차고 활을 들고 말을 타고 따라오면 어찌하나 하면 조신은 겁이 났다.

이때에, “조신아, 조신아. 섰거라!”하고 외치는 소리가 들렸다.

조신은 다리가 와들와들 떨렸다. 하마터면 그 자리에 주저앉을 뻔하였다.

“어떻게 해, 이를 어째!”하고 조신은 달례와 보물 보퉁이를 두리쳐 업고 뛰었다. 그러나 겁을 집어먹은 조신의 다리는 방앗공이 모양으로 디딘 자리만 되디디는 것 같았다. 마침 나무 한 포기 없는 데라 어디 숨을 곳도 없었다. 조신에게는 이 동안이 천년은 되는 것 같았다.

“하하하하.”하고 뒤에 웃는 소리가 들렸다. 이제나 저제나 하고 기다려도 모례의 화살은 날아오지 아니하였다.

“내야, 조신아, 내다. 평목이다.”

평목은 벌써 조신을 따라잡았다.

조신은 뒤를 돌아보았다. 그것은 분명히 입이 넓기로 유명한 평목이었다.

조신은 그만 달례를 업은 채로 길바닥에 주저앉았다. 맥이 풀린 것이었다.

조신의 몸은 땀에 떴다. 숨은 턱에 닿았다. 목과 입이 타는 듯이 말랐다. 눈을 바로 뜰 수가 없고 입이 열리지를 아니하였다.

평목은 조신의 머리를 싼 헝겊을 벗겼다. 맹숭맹숭한 중대가리다.

“이놈아, 글쎄 내 소리도 못 알아들어? 그렇게 내다해도 못 알아들어?” 평목은 큰 입으로 비쭉거리고 웃었다.

“아이구, 평목아, 사람 살려라.” 조신은 비로소 입을 열었다.

“이놈아, 글쎄 중놈이 백주에 남의 시집갈 아가씨를 빼가지고 달아나니깐 발이 조리지 않아?” 평목은 더욱 싱글싱글하였다.

“그래 너는 어떻게 알고 여기 따라왔니?”

“시님께서 가보라고 하시니까 따라왔지.”

“내가 이 길로 오는 줄 어떻게 알고?”

“노시님이 무엇은 모르시니? 남으로 남으로 따라가면 만나리라고 그러시더라.”

“그래 너는 왜 온 거야?”

“글쎄, 시님께서 보내셔서 왔다니까.”
“아니, 왜 보내시더냐 말이다.”

“너를 붙들어 오라고. 지금 사또께서 야단이셔. 벌써 읍으로 기별을 하셨으니까, 군사들이 사방으로 떨어날 것이다. 그러면 네가 어디로 달아날 테야? 바람개비니 하늘로 오를 테냐, 두더지니 땅으로 들 테냐? 꼼짝 못하고 붙들리는 날이면 네 모가지가 뎅겅 떨어지는 날야. 그러니까 어서 나하고 아가씨 모시고 돌아가자, 가서 빌어. 아직 아가씨 말짱하십니다, 하고 빌면 네 모가지만은 제자리에 붙어 있을 것이다. 자, 어서 가자.”하고 평목은 달례를 향하여, “아가씨, 어서 날 따라오시오. 글쎄 아가씨도 눈이 삐었지, 어디로 보기로 글쎄 저런 찌그러진 검둥이놈헌테 반하시오? 자, 어서 가십시다. 만일 진정 모례라는 이가 싫거든 내 좋은 신랑을 한 사람 중매를 하오리다. 하다 못하면 내라도 신랑이 되어 드리지요.”

평목은 이렇게 지절대며 어깨를 밀어서 앞을 세웠다.

“이놈이.”하고 조신은 번개같이 덤벼들어서 평목의 뺨을 때렸다.

“네, 이놈! 또한번 그런 소리를 해보아라. 내가 너를 죽여버리고 말 테다.” 조신은 씨근씨근하였다.

“이 못난 녀석이 어디 이런 기운이 있었어?” 평목은 달례를 놓고 커다란 입을 벌리고 껄껄 웃었다.

평목이가 웃고 보니, 조신은 부끄러움이 나서, 제 손으로 때린 평목의 뺨이 불그스레하여지는 것을 겸연쩍하게 바라보았다.

평목은 어깨에 걸쳤던 보퉁이를 내려서 조신의 앞에 내어밀며, “엇네, 노시님이 보내시는 걸세.”하였다.

“그게 무엔가?” 조신은 더욱 무안하였다.

“끌러보면 알지.”

조신은 끌렀다. 거기서 나온 것은 법당에 벗어 팽개를 치고 왔던 칡베 장삼과 붉은 가사였다.

“이건 왜 보내신다던가?” 조신은 가사와 장삼을 두 손으로 받들어들고 물었다.

“노시님께서 그러시데. 이걸 조신이 놈을 갖다주어라, 이걸 보고 조신이 놈이 돌아오면 좋고, 안 돌아오거든 몸에 지니고나 댕기라고 일러라, 지금은 몰라도 살아가노라면 쓸 날이 있으리라, 그러시데. 그럼 잘 가게, 나는 가네. 부디 재미나게들 살게. 내 사또 뵙고 자네들이 하슬라 쪽으로 가더라고 거짓말을 하여줌세. 사또도 사또지, 이제 저렇게 된 것을 다시 붙들어가면 무얼 하노.”하고 평목은 조신과 달례를 바라보고 한번 씩 웃고는 뒤도 아니 돌아보고 훨훨 오던 길로 가고 말았다.

“고마웨, 평목이 고마웨.”하고 조신이 외쳤으나 평목은 들은 체도 아니하였다.

조신은 용선 노사와 평목의 일이 고마왔다. 그러나 그런 생각도 할 새가 없었다. 조신은 달례를 데리고 어서 달아나야 한다. 모든 것을 다 잃어도 달례를 잃어서는 아니된다.

평목은 사또에게 조신이 달아난 길을 가리키지 아니한 모양이었다. 그들은 무사히 태백산(太白山) 밑까지 달아날 수가 있었다. 여러 번 의심도 받았고 또 왈패들을 만나서 달례를 빼앗길 뻔도 하였으나 조신은 그때마다 용하게도, 혹은 구변으로, 혹은 담력으로 이러한 곤경들을 벗어났다.

“이게 다 관세음보살님 은혜야.” 조신은 곤경을 벗어날 때마다 달례를 보고 이런 말을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