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신은 어찌할 줄을 몰랐다. 눈을 떠도 무섭고 눈을 감아도 무서웠다.
‘아아 내가 왜 이럴까. 밤길을 혼자 가도 무서움을 아니 타던 내가 왜 이럴까.’ 조신은 정신을 수습하려고 애를 써보았으나 안되었다. 모든 것이 다 저를 위협하고 해치려는 원수인 것 같았다.
조신은 낙산사 관음상을 마음에 그려보려 하였다. 그 자비하신 모습을 잠깐만 뵈와도 살아날 것만 같았다. 이러한 경우에 사랑하는 처자로는 아무러한 힘도 없었다. <나무>하고 <대자대비 관세음보살 마하살>을 부르려 하나 입이 열리지 아니하였다.
전신이 얼어들어오는 듯하였다.
조신은 아무리 하여서라도 관세음보살을 뵈오려 하나 나오는 것은 무서운 형상뿐이었다. 눈망울 툭 불거진 사천왕상이 아니면 머리에 뿔돋힌 염라국 사자의 모양뿐이었다.
가사와 장삼이 어지럽게 너풀거리던 어두움 속에, 눈망울 불거지고 뿔 돋힌 귀신들, 머리 풀어헤치고 입에서 피 흘리는 귀신들이 어지러이 나타나서 조신을 노려보았다.
다음 순간에 조신의 눈앞에는 이글이글 검푸른 불이 타는 불 지옥과, 지글지글 사람의 기름이 끓는 큰 가마며, 입을 벌리고 혀를 잡아당기어서 자르는 광경이며, 기름틈에 넣고서 기름을 짜듯이 불의한 남녀를 눌러 짜는 광경이며, 이 모양으로 모든 흉물스러운 광경이 보이고, 나중에는 평목이가 퍼런 혀를 빼어물고 손에, 제가 목에 매어죽던 끄나불을 들고 나타나서 조신을 향하여 손을 혀기는 것이 보일 때에 조신은 베개에 두 눈을 비비며 저도 모르게 소리를 질렀다.
조신이 다시 정신을 차렸을 때에는 옆에 아내 달례가 있었다.
“웬일이오?” 달례는 남편이 눈을 뜨는 것을 보고 일어나 앉으며 묻는다. 달례가 두 팔을 들어서 흩어진 머리를 거둘 때에 그 흰 두 팔꿈치와 젖가슴이 어두움 속에서 보이는 것이 조신의 눈에는 금방 꿈속에서 보던 귀신과 같아서 악 소리를 치면서 벌떡 일어났다.
“아니 왜 그러우?” 달례도 깜짝 놀라는 듯이 앉은걸음으로 뒤로 물러나며 머리 가누던 두 손을 앞으로 내어밀었다.
“아니야.”하고 조신은 맥없이 도로 드러누웠다. 저도 제 행복이 부끄러웠고 아내에게도 숨기고 있는 살인의 비밀이 혹시 이런 것으로 탄로가 되지나 않는가 하여 겁만 났다.
“아니라니?”하고 달례는 남편의 수상한 행동에 마음이 놓이지 아니하였다.
“요새에 웬일이오? 밤마다 헷소리를 하고 - 자면서 팔을 내어두르고. 몇 번이나 소스라쳐 놀랐는지 몰라. 참 이상도 하오. 아마 무슨 일이 있나보아. 나도 꿈자리가 사납고 어디 바로 말을 해보슈. 그 평목인가 하는 중이 어디 갔소? 왜 식전 새벽에 아침도 안 먹고 간단 말요. 암만해도 수상하더라니. 그이 왔다 간 다음부터 당신의 모양이 수상해요. 어디 바루 말을 해보아요. 그 중은 어디로 갔소?”
달례가 이렇게 하는 말은 마디마디 회초리가 되어서 조신의 등덜미를 후려갈기는 것 같았다.
“내가 그 녀석 간 곳을 어떻게 알아? 저 갈 데로 갔겠지.” 조신은 아무 관심없는 양을 꾸미노라고 퉁명스럽게 대답하였다. 그러나 그 가슴은 몹시 울렁거렸다.
“아니, 그이를 왜 그 녀석이라고 부르시오? 우리가 도망할 때에 관에 일르지도 아니한 이를?” 달례의 말은 한걸음 조신의 가슴속으로 파고들었다.
“우리가 재미있게 사는 것을 보고는 샘도 날 것 아니야?” 조신은 아니할 말을 하였다고 고대 뉘우쳤다.
“아니, 그이가 무어랍디까?” 달례는 무릎걸음으로 조신의 곁으로 다가앉는다.
“아냐 별일은 없었지마는.” 조신은 우물쭈물 이 이야기를 끊고 싶었다.
“아니, 그이가 무에랍디까? 모례 말을 합디까?”
“왜 모례가 있으면 좋겠어? 모례 생각이 나느냐 말야?” 조신은 가장 질투가 나는 듯이 달례 편으로 돌아눕는다.
“왜 그런 말씀을 하슈? 누가 모례를 생각한다우?”
“그럼, 모례 말은 왜 해? 그 원수 놈의 말을 왜 입에 담느냐 말야. 모례라는 못자만 들어도 내가 분통이 터지는 줄을 알면서 왜 그런 소리를 하느냐 말야.”
조신에게 제일 싫고 무서운 것이 모례의 이름이었다. 만일 누가 하루에 한 번씩만 모례의 이름을 조신의 귀에 불어넣어준다면 한 달 안에 조신은 말라죽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 자리에서 모례의 말을 가지고 아내에게 핀잔을 준 것은 모례 때문이라기보다는 죽은 평목의 비밀을 지키자는 계교로서였다. 그러나 한번 여자의 마음에 일어난 의심은 거짓말로라도 풀기 전에는 결코 잠잠케 할 수는 없었다.
달례는 전에 없이 우락부락한 남편의 태도가 불쾌한 듯이 뾰로퉁한 소리로, “모례가 무슨 죄요? 그이가 왜 당신의 원수요? 당신이나 내가 그의 원수면 원수지. 까닭없는 사람을 미워하면 죄가 안되오?”하고 쏘았다.
조신은 벌떡 자리에서 일어나 앉으며, “무엇이 어째? 모례가 원수가 아니야? 모례놈이 내 눈앞에 번뜻 보이기만 해라. 내가 살려둘 줄 알고. 담박에 물고를 내고야 말걸.”하고 어두움 속에 보이는 아내의 얼굴을 노려본다. 이렇게 억지로라도 성을 내니 무서움이 좀 가라앉는다. 평목의 원혼이 멀리로 달아난 것도 같았다.
그러나 달례는 환장한가 싶은 남편의 태도가 원망스러운 듯, 전보다 더 뾰롱뾰롱하게, “모례를 죽여요? 당신 손에 죽을 모례가 죽을 줄 알았소? 그이는 화랑이요. 칼 잘 쓰고 활 잘 쏘고 하는 그이가 당신 손에 잘 죽겠소. 사람의 일을 아나. 혹시 그이가 여기 올지도 모르지, 만일 모례가 여기 오는 일이 있다면 당신이나 내가 땅바닥에 엎드려서 비는 거야, 죽을 죄로 잘못했으니 살려줍시사고, 저 미력이랑 달보고랑 어린것을 불쌍히 여겨서 살려줍시사고, 제발 괴발 비는 거야. 불공한 말 한마디만 해보오, 당장에 목이 날아날 테니, 그나 그뿐인가, 암만해도 당신이 평목 시님을 죽…”할 때에 조신은 달려들어서 달례의 입을 손바닥으로 막아버렸다.
“함부로 입을 놀려?”하고 조신은 달례의 몸을 잡아흔들었다.
달례는 방바닥에 이마를 대고 쓰러지면서, “과연 그랬구료.”하고 울면서 푸념을 한다.
“그날 밤에 이상한 소리가 나길래 혹시나 하면서 설마 그런 일이야 하였더니 정말 당신이 그 중을 죽…”할 때에 조신은 또 달례의 몸을 잡아 흔든다.
“여보, 여보.”하고 조신은 무서워하는 사람 모양으로 숨이 차다. 조신은 달례의 귀에 입을 대고, “그런 소리 말어, 아이들이 들어, 누가 들어.”하고 덜덜 떨었다.
조신은 제가 사람을 죽였다는 것이 저밖에 다만 한 사람이라도 아는 사람이 있다는 것이 한없이 무서웠다.
조신은 달례의 귀에 뜨거운 김을 불어넣으면서 말을 한다. 그것은 달례의 분을 풀어서 입을 막자는 것이었다.
“그 놈이 - 평목이 놈이 우리 둘이 여기 산다는 것을 일러바친다고 위협을 한단 말야. 모례가 칼을 갈아가지고 아직도 우리들을 찾아댕긴다고. 방방곡곡으로 샅샅이 뒤진다고 그러니까.”하고 조신을 한층더 소리를 낮추어서, “그러니까 그놈이 달보고를 저를 달라는 거야, 그러니 참을 수가 있나.”하고 한숨을 내어쉰다.
달보고를 달란다는 말에는 달례도 함칫하고 놀라는 빛을 보였다.
“이일을 어찌하면 좋소?”하는 달례의 말은 절망적이었다.
조신의 집에는 이미 평화는 없었다. 어른들의 얼굴에 매양 근심하는 빛이 있으니 아이들의 얼굴에는 화기가 없었다. 닭, 개, 짐승까지도 풀이 죽고 집까지도 무슨 그늘에 싸인 듯하였다.
조신은 어찌할까 그 마음을 진정치 못한 채로 찜찜하게 하루 이틀을 보내고 있었다.
추수도 다 끝나고 높은 산에는 단풍이 들었다. 콩에 배불린 꿩들이 살찐 몸으로 무겁게 날고 있었다. 매 사냥꾼 활 사냥꾼들이 다니기 시작하고, 산촌 집들 옆에는 겨울에 때일 나뭇더미가 탐스럽게 쌓여 있었다. 이제 얼마 아니하여 눈이 와서 덮이면 사람들은 뜨뜻이 불을 지피고 술과 떡에 배를 불리면서 편안하게 재미있는 과동을 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조신의 마음에는 편안한 것이 없었다. 곳간에 쌓인 나락 섬에서는 평목의 팔이 쑥 나오는 것 같고, 나뭇더미에서도 평목의 큰 입이 혀를 빼어 물고 내미는 것 같았다. 게다가 모례가 언제 어느 때에 시퍼런 칼을 빼어들고 말을 달려 들어올는지도 몰라서 밤 바람에 굴그는 낙엽 소리에도 귀가 쭝긋하였다.
‘이 자리를 떠서 어디 다른 데로 가서 숨어야 할 터인데.’ 조신은 날마다 이런 생각을 하기는 하면서도 어디로 어떻게 갈 것인지 궁리가 나지 아니하였다. 죄를 지은 사람에게는 천지도 좁았다.
추워지기 전에 하루라도 일찌기 떠나야 된다 된다 하면서 머뭇머뭇하는 동안에 첫눈이 내렸다. 조신은 식전에 일어나 만산 편야로 하얗게 눈이 덮인 것을 보고는 가슴이 두근거렸다. 무신 일이 있어서 도망을 가더라도 눈 위에 발자국이 남을 것이 무서웠다.
꿈 - 13. 조신의 마음에는 평안이 없다
- 세부
- 주동식에 의해 작성됨
페이지 14 / 전체 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