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신은 다 죽은 상이 되어서 집에 돌아왔다. 그는 굴 앞에서 당장 죄상이 발각되어서 결박을 짓는 줄만 알고 마음이 조리고 있었으나 모례의 의견으로 그 자리만은 면하였다. 그러나 모례의 말투가 어느 것이 조신인지를 아는 것도 같았다.
조신이 돌아오는 것을 본 달례는 걱정스러운 듯이 조신의 눈치를 엿보았다. 그 해쓱한 낯빛, 퀭한 눈, 허둥허둥 하는 몸가짐, 모두 심상하지 아니하였다.
“왜, 어디가 아프시오?” 달례는 조신이 방에 들어오는데 문을 비켜주며 물었다.
달보고는 바느질감을 놓고 아비를 바라보았다. 미력은 시무룩하고 마당에 서 있어서 방에 들어오려고도 아니하였다.
“미력아, 들어오려무나. 발이 젖었으니 버선 갈아신어라.”하고 달례는 아들을 불러들였다.
“모례야 모례.” 조신은 힘없이 펄썩 주저앉으며 뉘게 하는 소린지 모르게 한마디 툭 쏘았다.
“응, 무어요?” 달례는 몸이 굳어지는 모양을 보였다.
“모례라니까. 그 사람이, 달보고헌테 옥고리 준 사람이 모례란 말야. 세상 일이 이렇게도 공교하게 되는 법도 있나. 꼼짝달싹 못하고 인제는 죽었어, 죽었어. 아아.”하고 옆에 아이들이 있는 것도 상관 아니하고 이런 소리를 하고는 고개를 폭 수그린다.
“모례가 무에요, 어머니?” 달보고가 묻는다.
미력이가, “어머니, 굴속에서 송장이 나왔는데 그것이 평목이래. 우리집에 접때에 와 자던 그 대사야.”
하고 어른스럽게 근심 있는 낯색을 짓는다.
“응, 굴속에 송장, 평목 대사?”
“어머니 몰르슈? 모례 아손이라는 이의 화살에 맞은 사슴이가 하필 그 굴로 도망을 가서 사람들이 사슴을 잡으러 들어가보니까 평목 대사의 송장이 나왔거든. 그래서 누가 이 사람을 죽였나, 죽인 사람을 찾는다고 모조리 여러 집을 뒤진데요, 필씨 대사의 행구가 나올 것이라고.”
미력이는 이 말을 하면서도 때때로 조신을 힐끗힐끗 바라본다.
“아니 여보슈, 그게 정말이요? 그게 정말 평목 대사의 시신이오?” 달례가 조신에게 묻는다. 이런 말들이 모두 조신의 죄를 낱우는 것 같았다.
“그렇다니까. 그러니 어짜란 말야?”하고 조신은 짜증을 낸다.
“아니, 그이가, 그 시님이 어디서 누구헌테 죽었단 말요?”하고 묻는 달례의 가슴이 들먹거린다.
“내가 어떻게 알아? 어떤 도적놈헌테 맞아죽었는지 내가 어떻게 아느냐 말야? 달보고야, 내, 냉수.” 조신은 입이 마르고 썼다.
“아니 그이가 새벽에 떠났다고 아니하셨소? 설마, 설마 당신이…”하고 달례는 말을 아물리지 못한다.
조신은 냉수를 벌꺽벌꺽 마시고 나서, “입 닫혀, 웬 방정맞은 소리야?” 물그릇을 동댕이치듯이 내어 던진다.
“평목이 죽은 것이 문제야? 모례가 나타난 것이 일이지. 평목이야 어떤 놈이 죽였는지 모르지만 죽인 놈이 있겠지. 어디 도적질을 갔다가 얻어맞아 죽었는지, 남의 유부녀 방에 들었다가 박살을 당했는지 내가 알 게 무엇이람. 그놈이 하필 왜 여기 와서 뒤어져. 그 경을 칠 여우는 왜 그놈에 상판대기 뱃대기를 파먹지는 않았어.” 가만히 내버려두면 조신은 언제까지라도 지절댈 것 같다.
“아이 어떡허면 좋아, 이 일을 어떡허면 좋소.”하고 달례가 조신의 말을 중동을 잘라버렸다.
“어머니, 모례가 무에요?” 달보고가 애를 썼다.
미력이가 달보고의 귀에 입을 대고, “모례가 사랑에 든 서울 손님야. 수염 긴 양반은 원님이고 수염 조금 나고 얼굴이 옥같이 하얀 양반이 모례야.”하고 설명해준다.
달례는 음식을 차리러 부엌에 내려갔다. 꿩을 뜯고 사슴의 고기를 저미고, 달례는 바빴다. 달보고는 부지런히 물을 길어 들였다. 조신은 술과 주안상을 들고 사랑으로 들락날락하였다. 나중에는 어찌 되든지 당장 할 일은 해야 하겠고, 또 태연자약한 빛을 보이는 것이 죄를 벗어날 길이라고도 생각하였다.
“호, 꿩을 잘 구웠는걸. 사슴의 고기도 잘 만지고. 아손, 이런 산촌 음식으로는 어지간하지 않소? 이것도 좀 들어보시오.” 원은 벌써 얼근하게 주기를 띄고 이런 말을 하였다.
그러나 모례는 아무리 술을 마셔도 취하지 않는 모양이요, 말도 많이 하지 아니하였다. 조신은 이 좌석에서 하는 말을 한마디도 아니 놓치려고 그런 눈치 아니 채일이만큼 귀를 기울였다.
“었네, 주인도 한잔 먹소.” 원은 더욱 흥이 나는 모양이었다.
“이봐라, 네 이 큰 잔에 한잔 그득히 부어서 주인 주어라.”
통인이 큰 잔에 술을 부어서 조신을 주었다.
“황송하오.”하고 조신은 술을 받아 외면하고 마시고는 물러나올 때에 아전이 달려와서, “사또 안전에 형방 아전 아뢰오.”하고 문 밖에서 허리를 굽혔다.
통인이 문을 열었다.
원은 들었던 잔을 상에 내려놓고, 문으로 고개를 돌리며, “오냐, 알아보았느냐?”하고 수염을 쓸었다.
“예이, 이 동네 안에 있는 집은 모조리 적간하였사오나 송낙이나 바랑이나 굴갓 같은 중의 행구는 형적도 없사옵고, 동네 백성들 말이 지금부터 한 달 전에 어떤 중이 이리로 들어오는 것을 보았다 하옵는데, 굴갓을 썼더라는 사람도 있고 송낙을 썼더라는 사람도 있으나 바랑을 지고 지팡이를 짚었더란 말을 한결 같사옵고, 아무도 그중이 동네 밖으로 나가는 것은 못 보았다 하오.”
아전이 아뢰는 말을 가만히 듣고 있던 원은, 안으로 통하는 문안에 아직 나가지 않고 서 있는 조신을 힐끗 보며, “주인, 자네는 그런 중을 못 보았는가? 한 달쯤 전에.”하고 고개를 아전 쪽으로 돌려, “한 달쯤 전이랬겄다?”
“예이, 한 달쯤 전이라 하오. 어떤 백성의 말이 길갓밭 늦은 콩을 걷다가 그런 중이 이 골짜기로 향하고 올라오는 것을 보았다 하오, 다 저녁때에.”하고 아전이 조신을 한번 힐끗 본다.
원은 몸을 좌우로 흔들고 고개를 끄덕끄덕하더니, “이 골짜기로?”하고 다시 묻는다.
“예이, 바로 이 골짜기로.”하고 또 한 번 조신을 본다.
“이 골짜기로 다 저녁때에.”하고 원은 혼잣말로 중얼거리더니 조신에게, “주인, 자네는 혹시 그런 중을 못 보았나? 바랑을 지고 지팡이를 짚고 다 저녁때에 이 골짝으로 올라오는 중을 못 보았나?”하고 물끄러미 바라본다.
조신은 오른 무릎을 꿇어 절하며, “소, 소인은 한 달 전은커녕, 금년 철 잡아서는 중이 이 골짜기에 들어오는 것을 보지 못하였소.”하고 힘있게 말하였다.
“금년 철 잡아서는 중을 하나도 못 보았다?” 원은 조신을 노려보았다.
“예이, 금년 철 잡아서라는 것은 과한 말이오나 한 달 전에는 중을 보지 못하였소.”
원은 다시 묻지 아니하고, 아전을 향하여, 모든 의심이 다 풀린 듯한 어조로, “오. 알았다. 물러가거라. 오늘은 더 일이 없으니 물러가서 다들 수이렸다. 술을 먹되 과도히 먹지 말고 아무때에 불러도 거행하도록 대령하렸다. 군노 사령 잘 단속하여 촌민에게 행패 없도록 네 엄칙하렸다.” 원은 먹은 술이 다 깬 듯이 서슬이 푸르다.
“소인 물러나오.”하고 아전은 한번 굽신하고 가버렸다.
“문 닫아라. 아손, 이제 아무 공사도 없으니 마음놓고 먹읍시다. 이봐라 술 더 올려라.”하고 원은 도로 흥을 내었다.
조신은 데운 술을 가지러 병을 들고 안문으로 나갔다. 조신은 등에 이마에 땀이 쭉 흘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