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목의 이 말에 조신은 한번 더 가슴에서 분이 치밀고 눈초리에 불꽃이 튀는 것을 느꼈다. 그러는 순간에 번뜩 조신의 눈앞에는 도끼가 보였다. 나무를 찍고 장작을 패는 도끼다. 기운으로 말하면, 평목이 조신을 당할 리가 없다. 당할 수 없는 것은 오직 평목의 입심과 능글능글함이었다.
도끼는 방 한편 구석에 누워 있었다. 새로 갈아놓은 날이 등잔불을 받아서 번쩍번쩍 빛났다.
‘당장에 평목의 골통을 패어버릴까?’하고 조신은 주먹을 불끈 쥐었으나 참았다. 그리고 웃는 낯으로, “그걸, 아직 어린 걸.”하고 눙쳐버렸다.
“어리기는 열 다섯 살이 어려요?” 평목의 눈이 빛났다.
조신은 한번 더 동이덩이 같은 것이 치미는 것을 삼켜버렸다.
“자, 인제 늦었으니 잡시다. 내일 마누라하고도 의논해서 좋도록 하십시다.” 조신은 이렇게 말하고 자리에 누웠다. 평목도 누웠다.
조신은 잠이 들지 아니하였다. 헛코를 골면서 평목이 하는 양을 엿보았다. 평목은 잠이 드는 모양이었다.
평목이 코를 고는 것을 보고야 조신은 마음을 놓았다.
평목이 깊이 잠이 들기를 기다려서 조신은 소리 아니 나게 일어났다.
‘암만해도 평목의 입을 막아놓아야 할 것이다.’ 조신은 이렇게 생각하고 구석에 놓인 도끼를 생각하였으나 방과 몸에 피가 묻어서 형적이 남을 것을 생각하고는 목을 매어 죽이기를 생각하였다.
조신은 손에 맞는 끈을 생각하다가 허리띠를 끌렀다.
평목이 꿈을 꾸는지 무슨 소리를 지절거리며 돌아누웠다.
조신은 죽은 듯이 가만히 있었다. 그러나 평목이 움직이는 것을 보고는 죽이는 것이 무서워졌다.
‘사람을 죽이다니.’하고 조신은 진저리를 쳤다.
그렇지마는 평목을 살려두고는 조신 제 몸이 온전할 수가 없었다. 평목에게 딸을 주기는 싫었다. 딸 거울보고는 아비는 아니 닮고 어미를 닮아서 어여뻤다. 그러한 딸을 능구렁이 같은 평목에게 준다는 것은 차마 못할 일이었다.
그뿐 아니다. 설사 딸을 평목에게 주더라도 그것만으로 평목이 가만 있을 것 같지 아니하였다. 필시 재물도 달라고 할 것이다. 딸을 주고 재물을 주면 조신의 복락은 다 깨어져버리고 말 것이다.
‘아무리 하여서라도 평목은 없이해버려야 한다.’
조신은 오래 두고 망설이던 끝에 마침내 평목의 가슴을 타고 허리띠 끈으로 평목의 목을 졸랐다. 평목은 두어 번 소리를 치고 팔다리를 버둥거렸으나 마침내 조신을 당하지 못하고 말았다.
조신은 전신에서 땀이 흘렀다. 이빨이 떡떡 마주치고 팔다리는 허둥허둥하였다.
조신은 먼저 문을 열고 밖에 나가보았다. 지새는 달이 있었다. 고요하다.
조신은 다시 방으로 들어와서 평목을 안아들었다. 평목의 팔다리가 축축 늘어지는 것이 무서웠다.
조신은 나무 그늘을 골라가면서 평목의 시체를 안고 뒷산으로 올랐다. 풀잎 소리며 또 무엇인지 모르는 소리가 들릴 적마다 조신은 전신이 굳어지는 듯하여서 소름이 쭉쭉 끼쳤다.
조신은 평소에 보아두었던 굴속에 시체를 집어넣고는 뒤도 아니 돌아보고 집으로 내려왔다. 내일이나 모레나 틈을 보아서 묻어버리리라고 생각하였다.
이튿날 아침에 아내 달례가, “손님은 어디 가셨어요?”하고 물을 때에, 조신은, “새벽에 떠나갔소.”하고 어색한 대답을 하였다.
사람을 죽인다는 큰 죄를 저지른 사람의 마음이 편안할 리가 없었고, 마음이 편안치 아니하면 그것이 얼굴과 언어 동작에 아니 나타날 수가 없었다.
조신은 밤에도 깜짝깜짝 놀라고 식욕도 줄었다. 늘 근심을 하고 있었다. 동구에 사람의 그림자만 너푼하여도 조신은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다.
이 모양으로 삼사 일이 지난 뒤에야 조신은 비로소 평목의 시체를 묻어버리리라 하고 땅을 팔 제구를 가지고 밤에 뒷산에 올라갔다. 그러나 무서워서 그 시체를 둔 굴 가까이 갈 수가 없었다. 어두움 속에 평목이가 혀를 빼어물고 으흐흐흐하면서 조신에게 덤비어드는 것만 같았다. 그래서 전신에 땀을 쪽 흘리고 집으로 돌아왔다.
그래도 이 시체를 감추어버리지 아니하면 필경 발각이 날 것이요, 발각이 나면 조신은 살인죄를 지고 말 것이다. 그래서 조신은 기운을 내어서 또 밤에 산으로 갔다. 그러나 이날은 전날보다도 더욱 무서웠다. 다리가 떨려서 옮겨놓기가 어려웠다. 어두움 속에서는 또 평목이가 혀를 빼어물고 두 팔을 기운없이 흔들면서 조신을 향하여 오는 것 같았다. 조신은 겁길에 어떻게 온지 모르게 집으로 달려왔다. 전신에는 땀이 쭉 흘렀다.
“어디를 밤이면 갔다오시오?” 아내는 이렇게 물었다.
조신은 무엇이라고 대답할 바를 몰라서, “삼 캐러.”하였다.
“밤에 무슨 삼을 캐오?” 아내는 수상하게 물었다.
“산신기도 드리는 거야.” 조신은 이러한 대답을 하였다.
산신 기도란 말을 하고 보니 또 새로운 걱정이 생겼다. 그것은 시체를 묻지도 아니하고 내버려두었기 때문에 필시 산신님이 노염을 사서 큰 동티가 나리라 하는 것이었다.
“산신 동티란 참 무서운 것인데.”하고 조신은 몸에 소름이 끼쳤다. 산신님이 노하시면, 적으면 삵, 족제비, 너구리 같은 것이 난동하여서 닭이며, 곡식을 해롭게 하고, 크면 늑대, 곰, 호랑이, 구렁이 같은 짐승을 내놓아서 사람을 해한다는 것이다.
산신제를 지내자니 사람을 죽인 몸이라 부정을 탈 것이오….
‘어떡허면 좋은가…’하고 조신은 잠을 이루지 못하였다.
이러한 생각을 하면 벌써 산신 버력이 내리는 것만 같았다.
금시에 상멍에(큰 구렁이)가 지붕을 뚫고 내려와서 제 몸을 감을는지도 모른다. 호랑이가 내려와서 사랑하는 아내와 아이들을 물어 죽일는지도 모른다.
조신은 머리가 쭈볏쭈볏함을 느낀다.
그러나 조신은 모처럼 쌓아놓은 행복을 놓아버릴 수는 없었다. 아무리 하여서도 언제까지나 언제까지나 꼭 붙들고 매어달리지 아니하면 아니된다.
조신은 용선 스님이 주신 가사를 생각하였다. 몸에 가사만 걸치면 천지간에 감히 범접할 귀신이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부처님이 명하신 계행을 깨뜨린 더러운 몸에 이 가사를 걸치면 가사가 불길이 되고 바람이 되어서 그 사람을 아비지옥으로 불어 보낸다는 것이다.
‘그 가사 장삼을 집에 두어서 이런 변사가 생기는 것이 아닐까?’ 조신은 이렇게 생각하여보았다.
그렇게 생각하니 검은 장삼과 붉은 가사가 저절로 너풀너풀 허공을 날아올라가는 것 같아서 조신은 몸서리를 쳤다.
너풀너풀 가사 장삼은 조신의 눈앞에 있어서 오르락내리락 한다.
조신은 눈을 떠보았다.
캄캄하다.
어두움 속에는 수없는 가사와 장삼이 너풀거렸다.
그 중에는 평목의 모양도 보이고 용선 스님의 모양도 보였다. 그러나 용선 화상의 모양은 곧 스러졌다.
조신은 정신이 어지러워서 진정할 수가 없었다.
아내와 아이들이 있는 방으로 가고 싶었으나 가위눌린 사람같이 몸을 움직일 수가 없는 것 같았다.
아내의 얼굴도 무서웁게 나타난 여귀와 같았다.
아이들의 얼굴도 매서운 귀신과 같았다.
꿈 - 12. 범죄
- 세부
- 주동식에 의해 작성됨
페이지 13 / 전체 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