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는 조신이 삼을 캐러 갔다가 집에 돌아오니, 미력이, 달보고, 칼보고 세 아이가 나와 놀다가 아비가 돌아오는 것을 보고, “아버지, 손님 왔어.”하고 조신에게로 내달았다.

“손님? 어떤 손님?” 조신은 가슴이 덜컥 내려앉는 것 같았다. 이 집에 찾아올 손님이 있을 리가 없었다.

“중이야.”

“중?” 조신은 벌써 중이 아니었다.

“응, 입이 커다래.”

“엄마가 알든?”

“처음에는 누구셔요? 하고 모르더니 손님이 이름을 대니까 엄마가 알든데.”

“이름이 뭐래?”

“무에라더라? 무슨 목이.”

조신은 다 알았다. 평목이로구나 하고, “평목이라던?”하고 미력이를 보고 물었다.

“오라, 평목이 평목이래, 하하.”

아이들은 평목이란 이름과 입이 커다란 것을 생각하고 웃는다.

그러기로 평목이가 어찌하여서 왔을까. 대관절 어떻게 알고 찾아왔을까. 조신은 큰 비밀이 깨어질 때에 제게 있는 모든 복이 터무니없이 깨어지는 것 같아서 섬뜨레하였다.

조신은 그동안 십여 년을 마음 턱 놓고 살았던 것이다. 남의 시집갈 처녀를 훔쳐왔다는 것이 마음에 걸리기는 하나 그렇더라도 이제야 뉘가 알랴 한 것이었다. 달례의 부모도 인제는 달례를 찾기를 단념하였을 것이요, 또 모례도 인제는 다른 새아씨한테 장가를 들었으리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마음을 놓고 있었다.

그러하던 것이 불의에 평목이 온 것을 아니 기억은 십오 년 전으로 돌아가 마치 바늘방석에 앉은 것 같았다.

평목이란 조신이 알기에는 결코 좋은 중은 아니었다. 낙산사에 있을 때에 용선 시님의 눈을 기이고는 술도 먹고 고기도 먹고 또 재 올리러 온 젊은 여자들을 노리기도 하던 자였다. 또 도적질도 곧잘하던 자였다. 그 커다란 입으로 지절대는 소리는 모두 거짓말이었고 남을 해치는 말이었다. 그런데 이 작자가 조신과 달례를 곱다랗게 놓아보낸 것이 수상하다고 생각하였으나, 그것은 용선 시님의 심부름이기 때문이라고 조신은 생각하였다.

집에 온 것은 과연 평목이었다. 그도 인제는 중늙은이 중이었다.“평시님, 이게 웬일이오?”

조신은 옛날 습관으로 중의 인사를 하였다.

“지나던 길에 우연히 들렀소.”하고 평목도 십 오년 전 서로 작별할 때보다는 무척 점잖았다.

그날 밤 조신은 평목과 한방에서 잤다. 두 사람은 낙산사의 옛날에 돌아가서 이야기가 끝날 바를 몰랐다. 용선 시님은 아직도 정정하시고 평목은 이번 서라벌까지 다녀오는 길에 산천 구경 겸 온 것이라고 하였다.

그러나 물론 조신은 평목의 말은 무엇이나 반신반의하였다. 더구나 평목 자신에 대한 말은 믿으려고도 아니하였다.

이것은 조신만이 그런 것이 아니라 평목을 잘 아는 사람은 다 그러하였다. 평목은 악인은 아니나 거짓말장이였다.

“그런데 아모려나 기쁘오. 참 재미나게 사시는구료.” 평목은 이렇게 말하였다. 조신에게는 평목의 말이 빈정거리는 것으로 들릴 뿐더러, 그 말에는 독이 품긴 것 같았다.

“재미가 무슨 재미오, 부끄러운 일이지.”하고 조신은 노시님이 평목을 시켜서 보내어준 가사와 장삼을 생각하였다. 오랫동안 잊어버렸던 것이기 때문에 지금은 그것이 어디 들었는지도 알 수 없었다.

“재미가 무슨 재미? 그럼 나허구 바꾸려오?” 평목은 벌떡 일어나 앉으며 이런 소리를 하였다.

“바꾸다니?” 조신은 불끈함을 느꼈다.

“아니, 나는 이 집에서 재미나게 살고 시님은 나 모양으로 중이 되어서 떠돌아다녀보란 말요.” 평목은 농담도 아닌 것같이 이런 소리를 하였다.

“에잉?”하고 조신은 돌아누우며, “원, 아무리 친한 처지라 하여도, 농담이라 할지라도 할말이 다 따로 있는 것이지, 그게 다 무슨 소리란 말요?”하고 쩝 소리가 나도록 입맛을 다시었다. 평목이 달례에게 불측한 생각을 가졌거니 하니 당장에 평목을 어떻게 하기라도 하고 싶었다.

“흥, 어디 내게 그렇게 해보오. 이녁은 남의 아내를 훔쳐내인 사람 아니오? 내 입에서 말 한마디만 나와보오. 흥, 재미나게 살겠소. 모가지는 뉘 모가지가 날아나고? 강물은 제 곬으로 가고 죄는 지은 데로 가는 거야. 모례(毛禮)가 지금 어떻게 당신을 찾는 줄 알고.” 평목은 침을 탁 뱉았다.

모례란 말에 조신은 전신이 오그라드는 듯하였다. 모례는 달례의 남편이 될 사람이었다. 칼 잘 쓰고 말 잘 타기로 서울에까지 이름이 난 화랑이었다. 조신도 화랑이란 것을 잘 아는 바에 화랑이란 한번 먹은 뜻을 변함이 없고, 한번 맺은 의를 끊는 법이 없다. 모례가 십오 년이 지난 오늘에도 달례를 찾을 것은 당연한 일인 것 같았다. 그렇게 생각하면 조신은 무서웠다. 한번 모례와 마주치는 날이면 매를 만난 새와 같아서 조신은 아무리 날쳐도 그 손을 벗어나지 못할 줄을 안다.

이렇게 생각하고 조신은 벌떡 일어났다.

“평시님, 아니, 정말 모례가 아직도 나를 찾고 있소?”

“어찌 안 찾을 것이오? 제 아내를 빼앗기고 찾지 않을 놈이 어디 있단 말요. 하물며 화랑이어든. 화랑이, 그래 한번 먹은 뜻을 변할 것 같소?”

“아니, 평시님, 똑바로 말을 하시오. 정말 모례가 나를 찾소?”

“찾는단밖에. 이제 다버린 계집을 찾아서 무엇하겠소마는 두 연놈을 한칼로 쌍동 자르기 전에 동이덩이같이 맺힌 분이 풀릴 것 같소?”

“아니. 정말 평시님이 모례를 보았느냐 말이오? 정말 모례가 이 조신을 찾는 것을 보았느냐 말이오?”

“글쎄 그렇다니까. 모례가 그때부터 공부도 벼슬도 다 버리고 원수 갚으러 나섰소. 산골짜기마다 굽이 샅샅이 뒤져서 아니 찾고는 말지 아니할 것이오. 오늘이나 내일이나 여기도 올는지 모르지. 시님도 그만큼 재미를 보았으니 인제 그만 내어놓을 때도 되지 않았소? 인제는 벌을 받을 날이 왔단 말요.” 평목은 어디까지나 조신을 간지려 죽이려는 듯이 눈과 입가에 비웃음을 띠고 있었다.

“시님.”하고 조신은 떨리는 음성으로, “시님, 이일을 어찌하면 좋소? 그때에도 시님이 나를 살리셨으니 이번에도 시님이 나를 살려주시오. 네 아이들을 불쌍히 여기셔서 시님이 나를 살려주시오. 제발 활인공덕을 하여주시오. 여섯 식구를 죽게 하신대서야 살생이 되지 않소? 평시님, 제발 나를 살려주시오.”하고 두 팔을 짚고 꿇어앉아서 수없이 평목의 앞에 머리를 조아렸다.

“글쎄, 시님도 그렇게 좋은 말로 하시면 모르지마는 시님이 만일 아까 모양으로 내 비위를 거스린다면 나도 다 생각이 있단 말이오. 안 그렇소?” 평목은 가슴을 내밀고 고개를 잦힌다.

“그저 다 잘못했으니 살려만 주오.” 조신은 또한번 이마를 조아린다.

“그러면 내가 시님이 같이 살던 부인이야 어찌 달라겠소마는 따님을 날 주시오. 아까 보니까 이쁘장한 게 어지간히 쓰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