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신은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나 살아날 가망은 없었다. 조신의 눈앞에는 평목의 시신과 바랑이 나뜨고 원과 모례의 얼굴이 나왔다. 증거는 확실하다. 그러고 조신은 세 번 문초에 다 똑바로 자백하였다.
‘왜, 모른다고 뻗대지 못했어? 그렇지 않으면 평목에게 죄를 뒤집어 씌우지를 아니했어? 에익, 고지식한 것!’ 스스로 저를 책망하고 원망하였다.

한 번뇌에서 문을 열어주면 뭇 번뇌가 뒤따라 들어온다.

‘달례가 보고 싶다.’ 조신은 달례와 같이 살 때에 재미있고 즐겁던 여러 장면을 생각한다. 그 어여쁜 얼굴, 부드러운 살, 따뜻한 애정 이런 것이 모두 견딜 수 없는 그리움을 가지고 또렷또렷이 나타난다. 그때에는 뜨뜻한 방에 금침이 있고 곁에는 달례의 부드럽고 향기로운 몸이 있었었다.

“으응.”하고 조신은 저도 모르는 결에 안간힘 쓰는 소리를 내었다.

‘어느 놈이 내게서 달례를 빼앗았니?’하고 조신은 소리소리 치고 싶었다.

조신에게서 달례를 빼앗은 것은 모례인 것만 같았다.

‘이놈아!’하고 조신은 모례를 자빠뜨리고 가슴을 타고 앉아서 멱살을 꽉 내려누르고 싶었다.

이렇게 생각하면 달례는 지금 모례의 품속에 안겨 있는 것 같았다. 모례의 칼에 머리쪽을 잘렸으니 필시 달례는 어느 절에 숨어서 제 복을 빌어주려니 하고 생각하던 것이 어리석은 것 같았다.

‘그렇다. 달례는 지금 모례의 집에 있다. 분명 모례의 집 안방에 있다. 달례는 곱게 단장을 하고 모례에게 아양을 떨고 있다.’ 조신의 눈에는 겹겹으로 수병풍을 두른 모례집 안방이 나오고 그속에 모례와 달례가 주고받는 사랑의 광경이 환히 보였다.

조신의 코에서는 불길같이 뜨거운 숨이 소리를 내이고 내뿜었다. 조신의 혼은 시퍼런 칼을 들고 모례의 집으로 달렸다. 쾅쾅 모례집 대문을 부서져라 하고 두드렸다. 개가 콩콩 짖었다. 대문은 아니 열리매, 훌쩍 담을 뛰어넘었다. 모례집 안방 문을 와지끈하고 발길로 차서 깨뜨렸다. 모례는 칼을 빼어들고 마주나오고 달례는 몸을 움추리고 울었다. - 조신은 꿈인지 생신지 몰랐다.

‘아아, 무서운 질투의 불길. 천하의 무서운 것 중에 가장 무서운 것!’

조신은 무서운 꿈을 깬 듯이 치를 떨었다. 못한다, 이것이 옥중이 아니냐. 두 발은 고랑에 끼어 있고 두 손은 수갑에 잠겨 있다. 꿈은 나갈지언정 몸은 못 나간다.

조신은 옥을 깨뜨리고라도 한번 더 세상에 나가보고 싶었다. 다른 것을 보는 것이 아니라, 달례가 모례의 집에 있나 없나 그것이 알고 싶었다. 그러나 여러 날을 두고 백방으로 생각하여도 그것은 되지 않을 일이었다. 한방에 혼자 있더라도 해볼 만하고 또 죽을 죄인들끼리만 한방에 모여 있더라도 무슨 도리가 있을 것이다. 그러나 죄 무거운 사람, 가벼운 사람 뒤섞여서 둘씩 셋씩 한 고랑을 채워놓고 그런 사람을 열 간통 장방에 수십 명이나 몰아넣었으니 꼼짝할 수가 없었다.

조신은 모든 것을 단념하고 처음 옥에 들어왔을 때 모양으로 주력과 참선으로 우선 마음을 편안하게 하고 내생 인연이나 지어보려 하였으나 탐애의 질투의 폭풍이 불어일으키는 마음의 검은 물결을 어찌할 수가 없었다.

대보름도 지나고 지독한 입춘 추위도 다 지난 어떤 날 조신은 장방에서 끌려나갔다. 왁살스러운 옥사장이 한 손으로 조신의 상투를 잡고 한 손으로 덜미를 짚어서 발이 땅에 닿기가 어렵게 몰아쳤다. 조신은 오늘 또 무슨 문초를 하는가 보다. 이번에는 한번 버티어보자 하고 기운을 내었다.

그러나 조신은 관정(官庭)으로 가는 것이 아님을 알고 발을 멈추며, “관정으로 안 들어가고 어디로 가는 거요?”하고 물었다.

옥사장은 조신의 꽁무니를 무릎으로 퍽 차며, “어디는 어디야 수급대 터로 품삯 타러 가지. 잔말 말고 어서 가.”하고 더 사정없이 덜미를 누르고 머리채를 노꾸챈다.

“품삯이 무에요?” 조신은 그래도 묻는다.

“아따 한세상 수구한 품삯 몰라, 잘했다는 상금 말야.”하고 옥사장은 또 한 번 아까보다 더 세게 항문께를 무릎으로 치받으니 눈에 불이 번쩍 나고 조신의 몸뚱이가 한번 공중에 떴다가 떨어진다.

“아이쿠, 좀 인정을 두어주우.”하고 조신은 끌려간다.

다른 옥사장 하나가, “이 놈아, 그렇게도 가는 데가 알고 싶어? 이 놈아, 양반 댁 유부녀 후려내고 사람 죽였으면 마지막 가는 데가 어딘지 알 것 아냐. 그래도 모르겠거든 바로 일러줄까! 닭 채다가 붙들린 족제비 모양으로, 부엌 모퉁이 응달에 시래기 타래 모양으로 매어다는 데 말야, 여기를 이렇게.”하고 손길을 쫙 펴서 조신의 모가지를 엄지가락과 손길 새에 꽉 끼고 힘껏 툭 턱을 치받치니 조신은 고개가 잦혀지며 아래윗니가 떡하고 마주친다. 그것이 우스워서 조신을 잡아가는 옥졸들이 하하 하고 앙천대소한다.

조신은 이제야 분명히 제가 가는 곳을 알았다. 그러고는 아이들에게 끌리기 싫다는 송아지 모양으로 두 발을 버티고 허릿심을 쑥 빼어버리니 조신의 몸뚱이가 옥사장의 손에 잡힌 머리채에 디롱디롱 달렸다가 옥사장의 팔에 힘이 빠지니 땅바닥에 엉치가 퍽 떨어진다.

“안 갈 테야? 이럴 테야? 난장을 맞고야 일어날 테야!”하고 옥사장들은 허리에 찼던 철편을 끌러 조신의 등덜미를 후려갈기며 끊어져라 하고 끄대기를 나꾸챈다.

“아이구구.”하고 조신은 일어선다.

벌써 형장이 가까운 모양이어서 조신의 두리번거리는 눈에는 사람들이 보였다. 옥사장이 덜미를 덮어눌러서 몸이 기역자로 굽었기 때문에 사람들의 얼굴은 잘 안 보이고 아랫도리만 보였다. 그래도 혹시나 달례가 보이지나 아니하나 하고 연해 눈을 좌우로 굴렸다. 조신의 눈에는 거기 있는 사람들이 모두 달례인 것 같기도 하였으나 정말 달례는 보지 못하였다.

조신은 마침내 보고 싶은 달례도 보지 못하고, 하고 싶은 말도 못하고, 눈을 싸매고, 뒷짐을 지고, 목에 올가미를 쓰고 매어달려서 다리를 버둥버둥하였다.

“살려주오, 살려주오.”하고 소리를 질렀으나 제 귀에도 그 소리가 들리지 아니하였다.

숨이 꼭 막혀서 답답하였다. 차차 정신이 흐려졌다.

‘무서워서 어떻게 죽나. 죽은 뒤에 무엇이 있나?’하고 조신은 관세음보살을 염하면서 팔다리를 버둥거렸다.

‘아이고, 나는 죽네, 관세음보살.’ 그리고는 조신은 정신이 아뜩하였다.

얼마를 지났는지, “조신아, 이놈아, 조신아.”하고 꽁무니를 누가 차는 것을 조신은 감각하였다.

조신은 눈을 번쩍 떴다.

선잠을 깬 눈앞에는 낙산사 관음상이 빙그레 웃으시고, 고개를 돌리니 용선 노장이 턱춤을 추면서 웃고 있었다.

(조신은 이때부터 일심으로 수도하여서 낙산 사성이라는 네 명승 중에 한 분인 조신 대사가 되었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