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신은 아무쪼록 태연한 태도를 지으려 하였으나 인가가 가까와올수록 가슴이 울렁거렸다. 아직 방아골 살인 소식이 여기까지 올 리는 만무하다고 믿기는 믿건마는, 죄 지은 마음에는 밝은 빛이 무섭고 사람의 눈이 무서웠다.
‘태연해야 돼.’하고 조신은 저를 책망하면서 말죽거리에 들어섰다. 부엌들에서는 김이 오르고, 죽을 배불리 먹고 짐을 싣고 나선 마소와 길에 서성거리는 사람들의 입과 코에서도 김이 나왔다. 거리에 나선 사람들의 눈은 조신의 일행에 모이는 것 같아서 낯이 간지러웠다. 조신은 아내 달례와 딸 달보고의 얼굴이 아름다운 것이 원망스러웠다. 비록 수건을 눈썹까지 내려썼건마는, 수건 밑으로 드러난 코와 입과 뺨만 해도 그들이 세상에도 드문 미인인 것을 알 수가 있었다.
‘금시에 곰보라도 되어버렸으면…’하고 조신은 아내와 딸을 돌아보고 길바닥에 침을 탁 뱉았다.
조신은 될 수 있는 대로 거리 저편 끝 으슥한 집을 골라서 들려 하였으나, 사람들이 쳐다보고 따라오는 것이 짜증이 나서 <아무 집이나>하고 주막에 들었다.
주막장이는 조신네 일행이 차림차림 남루하지 아니한 것을 보고 <안 손님>이라 하여 안으로 끌어들였다.
“무얼 잡수시려오? 묵어가시려오? 애기들이 어여쁘기도 하오.”하고 주막집 마누라는 수다를 떨었다.“에그, 추우시겠네. 어서 이리 들어들 오시오.”하고 방에 늘어놓은 요때기 옷가지를 주섬주섬 치우면서 조신네 식구를 힐끗힐끗 보았다. 조신은 그 여편네가 싫었으나 어찌할 수 없었다.
방은 따뜻하였다. 밥도 곧 들어왔다. 상을 물리는 듯 마는 듯 아이들은 고꾸라져 잠이 들었다. 달례는 아이들이 자는 양을 물끄러미 들여다보고 앉아 있었으나 역시 꼬박꼬박 졸고 있었다.
조신은 자서는 안될 텐데 하면서도 자꾸만 눈가죽이 무거웠다. 죽은 미력이를 생각하기로니 자서 될 수 있나 하고 저를 꼬집건마는 아니 잘 수가 없었다. 결국 조신도 달례도 다 잠이 들고 말았다. 마치 이세상에서 마지막으로 한번 편히 쉬자 하는 것 같았다.
행객과 마소가 다 떠나고 난 주막거리는 조용하여서 낮잠 자기에 마침이었다. 조신네 식구들은 뜨뜻한 방에서 마음놓고 자고 있었다.
이때에 조신의 귀에, “여보시오, 손님, 여보시오, 애기 어머니, 일어나시오. 누구 손님이 찾아오셨수.”하는 소리가 들렸다.
조신은 그것이 주막장이 마누라의 음성이다 하면서 얼낌덜낌에, “없다고 그러시오. 여기는 아무도 오지 않았다고.”하고 돌아누웠다. 돌아눕고 생각하니 아니할 소리를 하였다 하고 벌떡 일어나 앉았다. 주막장이 마누라는 문을 열어 잡고 밖에 서서 모가지만 방안에 디밀고 있었다.
“누가 왔어요?”하고 조신은 아까 한 말을 잊어버린 듯이 주막장이 마누라를 물끄러미 바라본다.
“누구신지 내가 어떻게 알아요. 말 타고 오신 손님야요. 말 탄 시종 하나 데리고. 아주 점잖은 양반이야요.” 마누라가 이렇게 말할 때에 달례도 일어나서 벽을 향하여 머리를 만진다.
조신은 울렁거리는 가슴과 떨리는 몸을 억지로 진정하려고 한 선하품을 하고 기지게를 켜고 나서 가장 태연하게, “말 탄 사람이라, 나 찾아올 사람이 있나. 그래 무에라고 나를 찾아요?”하고 천연덕스럽게 물었다. 자기 운명의 마지막이 다다랐음을 느끼면서, 그는 잠시라도 속이지 아니할 수 없었다.
“손님 행색이 유표하지 않소? 선녀 같은 아씨, 작은 아씨만 해도 눈에 띄우지 않소? 게다가 서방님이 또 특별하게 잘나셨거든. 벌써 말죽거리에 소문이 짜아한데 뭐 숨기려 숨길 수 없고 감추려 감출 수 없는 달 아니면 꽃인걸 뭐, 안 그래요, 아씨? 그래 그 손님이 말죽거리 들어서는 길로 이러이러한 사람 못 보았느냐고 물었을 것 아냐요? 그러면 말죽거리 사람은 남녀 노소 할 것 없이 그런 손님이 우리집에 들었느니라고 말할 것 아냐요? 원체 유표하거든. 아이, 어쩌면 아씨는 저렇게도 어여쁘실까. 누가 애기를 셋씩이나 낳은 분이라 해? 할미는 말죽거리서 육십 평생을 살아도 저러신 분네는 처음이야. 이 작은아씨도 활짝 피면 어머니 같을 거야.”하고 할미의 수다는 끝날 바를 모른다.
“그 손님은 어디 계슈.” 이것은 달례가 묻는 말이었다.
“아, 참, 일어나셨다고 가서 알려야겠군. 손님네 곤히 주무신다고 했더니, 그러면 가만 두라고, 깨거든 알리라고 그러시던데.”하고 마누라는 신발을 찔찔 끌면서 가버린다.
“여보, 주인마님.”하고 조신은 문으로 고개를 내어밀고 불렀으나 귀가 먹었는지 그냥 부엌으로 가서 스러지고 말았다.
달보고가 일어나서 놀란 새 모양으로 아비와 어미의 낯색을 번갈아보고 있다.
조신은 가만히 앉아 있었다. 인제 도망하려야 도망할 재주도 없었다.
“우리를 잡으러 온 사람은 아닌가보오. 아마, 모례 아손인가보아.” 조신은 달례를 보고 이런 소리를 하였다. 달례는 말없이 매무시를 고치고 있었다.
‘인제는 앉아서 되는대로 되기를 기다릴 수밖에 없다.’하니 조신은 마음이 편하여졌다.
‘죽기밖에 더하랴.’하고 조신은 더욱 마음을 든든히 먹었다.
밖에서 마누라의 신 끄는 소리가 들리고 그뒤에 뚜벅뚜벅 점잖은 가죽신 소리가 들렸다.
문이 열렸다. 마누라의 싱글벙글하는 얼굴이 나타나며, “손님 오시오.”하고 물러선다.
그래도 잠시는 손님의 모양이 보이지 아니하였다. 조신과 달례와 달보고는 굳어진 등신 모양으로 숨소리도 없이 가만히 앉아 있었다.
달례는 문득 생각난 듯이 아랫목에 뉘였던 두 아이를 발치로 밀어 손님이 들어오면 앉을 자리를 만들고 있었다. 조신은 그것이 밉고 질투가 났으나, 지금은 그런 생각을 할 경황이 있을 수 없다고 입맛을 다셨다.
“에헴.”하고 기침을 하고 가래를 고스르는 소리가 들렸다.
그러자 자주빛 긴 옷에 붉은 갓을 쓴 모례가 허리에 가느스름한 환도를 넌지시 달고 두 손을 읍하여 소매 속에 넣고 문 앞에 와서 그림을 그린 듯이 선다.
“조신 대사, 나 모례요.”
조신은 예기한 바이지마는 흠칫하였다. <모례>라는 이름보다도 조신 대사라는 말이 더욱 무서웠다.
조신은 벌떡 일어났다. 무서워서 일어난 것인가, 인사로 일어난 것인가 조신 저도 몰랐다. 그의 눈의 휘둥굴하며 깜박거릴 힘도 없었다.
달례도 일어나서 벽을 향하고 돌아섰다. 달보고는 모례를 한번 힐끗 눈을 치떠서 보고는 고개를 소곳하고 엄마의 곁에 섰다.
“마누라는 저리 가오.”하고 모례는 주막장이 할미를 보내었다. 모례는 할미가 부엌으로 스러지는 것을 보고 나서, “놀라지 마오. 나는 대사를 해하러 온 사람은 아니요, 조용히 할 말이 있어서 찾으니 내가 방에 좀 들어가야 하겠소.”하고 신발을 벗고 올라선다.
조신은 저도 모르는 겨를에, “아손마마 황송하오.”하고 방바닥에 꿇어 엎드렸다.
모례는 문을 닫고 달례가 치어놓은 자리에 벽을 등지고 섰다.
조신은 꿇어엎댄 채로 두 손으로 방바닥을 짚고 고개만 쳐들고 눈을 치떠서 모례를 우러러보며, “황송하오, 누추한 자리오나 좌정하시오.”하였다. 조신에게는 모례가 자기 일가족을 죽이고 싶으면 죽이고 살리고 싶으면 살릴 수 있는 신명같이 보였다. 모례의 그 맑은 얼굴, 가느스름하고도 빛나는 눈, 어디선지 모르게 발하는 위엄에도 조신은 반항할 수 없이 눌려버렸다. 달례가 저런 좋은 남편을 버리고 어찌하여 나 같은 찌그러지고 못난 남자를 따라왔을까 하면 꿈같고 정말 같지 아니하였다.
모례는 조신이 권하는 대로 앉았다. 깃옷으로 두 무릎을 가리우고 단정히 앉은 양은 더욱 그림 같고 신선 같았다. 그 까만 웃수염 밑에 주홍 칠을 한 듯한 입술하며 옥으로 깎고 흰 깁으로 싼 듯한 손하며, 어디를 뜯어보아도 나와 같이 업보로 태어난 사바 세계 중생 같지는 아니하였다. 조신은 새삼스럽게 제 몸이 추악하게 생기고 마음이 오예로 찬 것을 깨달았다. 더구나 눈앞에 놓인 제 두 손을 보라. 그것은 사람을 죽인 손이 아닌가. 평목 대사의 목을 조르고 코와 입을 누르던 손이 아닌가. 제 집 벽장에 구멍을 뚫고 평목의 행구를 훔쳐내려던 손이 아닌가. 그나 그뿐인가, 몇 번이나 이 손으로 모례를 만나면 죽이려고 별렀는가.
‘그리고 내 입, 내 혀!’하고 조신은 이를 갈았다. 이 입, 이 혀로 얼마나 거짓말을 하였는가. 아내까지도 속이지 아니하였는가. ‘장인이 병환이 위중해서 밤 도아 오는 길이라.’고 오늘 아침 말죽거리 어구에서 행객에게 한 거짓말까지도 모두 물 붓는 채찍이 되어서 조신의 몸을 후려갈겼다.
“아손마마, 살려주오. 모두 죽을 죄로 잘못하였소. 저 어린것들을 불쌍히 여겨서 제발 살려주오.”하고 조신은 우는 소리로 중얼거리면서 무수히 이마를 조아렸다.
“조신 대사.”하고 모례가 무거운 어조로 부른다.
“예이, 황송하오. 이몸과 같이 극흉 극악한 죄인을 대사라시니 더욱 황송하오.”하고 조신은 전신이 땅에 잦아듦을 느꼈다.
“조신 대사, 극흉극악한 죄인이라 하니 무슨 죄 무슨 죄를 지었노?” 모례의 소리에는 죄를 나투는 법관과 같이 엄한 중에도 제자의 참회를 받는 스승과 같은 자비로운 울림이 있었다.
조신은 더욱 마음이 비창해지고 부끄러움이 복받쳐올랐다.
“비구로서 탐음심을 발하였으니 죄옵고, 그밖에도 죄가 수수만만이오나 달례 아가씨를 후려낸 것과 평목 대사를 죽인 것이 죄중에도 가장 큰 죄라고 깨닫소.” 이렇게 참회를 하고 나니, 도리어 마음이 가벼워지는 듯해서 눈물에 젖은 낯을 들어 모례를 쳐다보았다.
“그러한 죄를 짓고도 살고 싶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