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신은 무서운 일을 발견하였다. 그것은 사슴이 평목의 굴을 향하고 달리는 것이었다. 조신은 그가 또 한 번 방향을 바꾸기를 바랐으나 모리꾼들 등쌀에 사슴은 평목의 굴로 곧장 몰려갔다.
“그리 가면 안돼!”하고 조신은 저도모르는 결에 소리를 질렀다. 사람들은 조신을 돌아보았으나 그것이 무슨 뜻인지 몰랐다. 조신은 제 소리에 제가 놀랐다.
사슴은 점점 평목의 굴로 가까이 간다. 마치 평목의 굴에서 무슨 줄이 나와서 사슴을 끌어들이는 것같이 조신에게는 보였다. 조신의 등골에는 식은땀이 흘렀다.
“아, 아, 아차!”하고 조신은 몸을 뒤로 잦히면서 소리를 질렀다. 사슴이 바로 굴 입에까지 다다른 것이었다. 조신의 이 이상한 자세와 소리에 서울 손님이 물끄러미 보았다. 조신은 정신이 아뜩하고 몸이 뒤로 넘어가려는 것을 가까스로 참았다.
사슴은 평목의 굴 앞에 이르러서 머리를 굴속으로 넣고 그리고 들어가려는 모양을 보이더니 무엇에 놀랐는지 도로 뒷걸음쳐 나왔다. 조신은, “살아 났다.”하고 몸이 앞으로 굽도록 긴 한숨을 내어 쉬었다.
그러나 사슴이 다른 데로 향하려 할 때에는 벌써 모리꾼들이 굴 앞을 에워쌌다. 사슴은 고개를 들어 절망적인 그 순하고 점잖은 눈으로 한번 사람을 휘 둘러보고는 몸을 돌려 굴속으로 들어가고 말았다.
“사슴을 두 마리나 잡았다.”하고 사람들은 떠들었다.
“단 두 방에 두 마리를.”하고 사람들은 서울 손님의 재주를 칭찬하고 천신같이 그를 우러러보았다.
그 중에도 원이 더욱 손님의 솜씨를 칭찬하였다.
원은 창 든 군사에게 명하여 굴속에 든 사슴을 잡아내라 하였다.
창 든 군사 한 쌍이 창으로 앞을 겨누고 허리를 반쯤 굽히고 굴로 들어갔다.
조신은 얼굴이 해쓱하여서 닥쳐오는 업보에 떨고 있었다. 도망할 수도 없는 형편이었다. <관세음, 관세음> 하고 입 속으로 중얼거렸다. 아들 미력이가 아버지의 수상한 모양을 보고 가만히 그 곁에 가서 조신의 낯빛을 엿보았다.
“엣, 송장이다! 죽은 사람이다!”하고 외치는 소리가 굴속에서 나왔다.
돌아선 사람들은 한결같이 놀라서 서로 돌아보았다.
창 든 사람들은 굴속에서 뛰어나왔다. 그들의 얼굴에는 핏기가 없었다.
“사람이요, 사람이 죽어 넘어졌소. 송장 냄새가 코를 받치오!”
그들은 허겁지겁으로 이렇게 말하였다.
“살인이로군.” 누구의 입에선가 이런 말이 나왔다. 사슴의 일은 잊어버린 듯하였다.
원은 관인들에 명하여 그 시신을 끌어내라 하였다.
관인은 둘러선 백성 중에서 네 사람을 지명하여 데리고 횃불을 켜 들고 굴로 들어갔다. 그 중에는 조신도 끼어 있었다.
조신은 반이나 정신이 나갔다. 그러나 이런 때에 그런 눈치를 보이는 것이 제게 불리하다고 생각할 정신까지 없지는 아니하였다. 그는 와들와들 떨리는 다리를 억지로 진정하면서 관인의 뒤를 따라 굴로 들어갔다. 굴속에는 과연 송장 냄새가 있었다. 사슴도 이 냄새에 놀래어서 도로 나오려던 것이라고 조신은 생각하였다.
춤추는 횃불 빛에 보이는 것이 둘이 있었다. 하나는 평목의 눈뜬 시체요, 하나는 저편 구석에 빛나는 사슴의 눈이었다.
“들어, 들어.”하고 관인은 호령하였다. 사람들은 송장에 손을 대기가 싫어서 머뭇머뭇하고 있었다.
“두 어깨 밑에 손을 넣어, 두 무릎 밑에 손을 넣어!”
조신은 죽을 용맹을 내어서 평목의 어깨 밑에 손을 넣었다. 그 순간 그가 평목을 타고 앉아 목을 졸라매던 것, 평목이가 픽픽 소리를 내며 팔다리를 버둥거리던 것, 혀를 빼어 물고 늘어지던 것, 그것을 두리쳐메고 굴로 오던 것 - 이 모든 광경이 눈앞에 나타났다.
‘평목 스님, 제발 내 죄를 용서하시고 극락 왕생하시오.’하고 조신은 수없이 빌었다. 그렇지마는 평목이가 극락에 갈 리도 없고 저를 죽인 자를 원망하는 마음을 풀 리도 없다고 조신은 생각하였다. 세세 생생에 원수 갚기 내기를 할 큰 원업을 맺었다고 조신은 생각하였으나, 그래도 조신은 이런 생각을 누르고 평목에게 빌 길밖에 없었다. 살 맞은 사슴을 이 굴로 인도한 것도 평목의 원혼이었다.
‘평목 스님, 잘못했소. 옛정을 생각하여 용서하시오. 원한을 품은 대로는 왕생 극락을 못하실 터이니 용서하시오. 나를 이번에 살려만 주시면 평생에 스님을 위하여 염불하고 그 공덕을 스님께 회양할 터이니, 살려주오.’ 조신은 이렇게 뇌이고 또 뇌었다.
가까스로 평목의 시체가 땅에서 떨어졌다.
조신은 평목의 입김이 푸푸 제 입과 코에 닿는 것 같아서 고개를 돌리고 걸음을 걸었다.
평목의 시체는 굴 문 밖에 놓였다. 밝은 데 내다놓고 보니 과히 썩지도 아니하여서 용모를 분별할 수가 있었다.
“중이로군.” 누가 이렇게 말하였다.
“평목 대사다.” 서울 손님은 이렇게 소리쳤다.
“우리집에 왔던 그 손님이야.” 미력이는 조신을 보고 이렇게 중얼거렸다.
조신은 입술을 물고 미력이를 노려보았다. 미력이는 고개를 숙이고 아버지 곁에서 물러났다.
원은 한번 평목의 시체를 다 돌아다보고 나서 서울 손님을 향하여, “모레 아손은 이 중을 아신단 말씀이오?”하고 서울 손님을 바라본다.
조신은 <모례>란 말에 또한번 아니 놀랄 수 없었다. 그렇다면 달보고에게 옥고리를 준 것이나 조신의 집에 사처를 정한 것이나 다 알아지는 것 같았다.
모례는 원의 묻는 말에 잠깐 생각하더니, “그렇소, 이 사람은 평목이라는 세달사 중이요. 내가 십 육 칠 년 전 명주 낙산사에서 이 중을 알았고, 그 후에도 서울에 오면 내 집을 늘 찾았소.”하고 대답하였다.
원은 의외라는 듯이 모례를 이윽히 보더니, “그러면 모례 아손은 이 중이 어떻게 죽었는지 무슨 짐작되는 일이 있으시오?”하고 묻는다.
“노상 짐작이 없지도 아니하오마는 보지 못한 일이니 확실히야 알 수 있소? 대관절 태수는 이 사람이 어떻게 죽은 것으로 보시오? 그것부터 말씀해보시면 내 짐작과 맞는지 아니 맞는지 알 수가 있을 것이니, 사또의 말씀을 듣고 내 짐작을 말씀하오리다.”하며 조신을 돌아본다.
조신은 애원하는 눈으로 모례를 바라보았다. 죽고 살고가 인제는 모례의 말 한마디에 달린 것이었다. 모례라는 <모>자만 들어도 일어나던 질투연마는 지금은, ‘모례 아손, 살려줍시오.’하고 그 발 앞에 꿇어엎드려 빌 마음밖에 없었다. 조신은 또, ‘평목 스님, 내가 잘못했소.’하고 평목의 시신을 붙들고 빌고도 싶었다. 그러나 아직도 무사히 벗어날 수가 있지나 아니한가 하고 요행을 바라면서 일이 되어가는 양을 보고 있었다. 그의 아들 미력이는 먼 발치에 서서 아비 조신을 바라보고 있었다. 아들의 눈이 제 눈과 마주칠 때에 조신은 그것을 피하지 아니할 수 없었다.
원은 모례에게 자기의 소견을 설명하였다. “내가 보기에는 이 사람이 여기 와서 죽은 것이 아니라 다른 데서 죽어서 여기 온 것 같소. 이 사람이 여기서 자다가 죽었을 양이면 옆에 행구가 있을 텐데 그것이 없소. 바랑이나 갓이나 신발이나 지팡이나 이런 것이 없는 것을 보면 이 사람이 이 굴속에서 자다가 죽은 것이 아니라 다른 데서 죽어 가지고 이리로 온 것이 분명하오. 또 혀를 빼어 문 것을 보면 목을 매어 죽은 모양인데, 목에는 이렇게 바 오락으로 졸라매었던 형적이 있지마는 여기는 바 오락이도 없고 매어달릴 데도 없으니 무엇으로 보든지 여기서 아니 죽은 것만은 분명하오.”
원의 설명을 듣고 있던 모례는 때때로 옳은 말이라는 듯이 고개를 끄덕끄덕하면서 듣고 있다.
말을 끝내인 태수는 뚫는 듯한 낯빛으로 모례를 본다. 모례는 또 한 번 끄덕하고, “옳은 말씀이오. 내가 보기에도 그러하오. 그러면 사또는 이 사람을 해한 사람이 누구인지 짐작하시오?”하고 원에게 묻는다. 원은 대답하되, “그 말씀이오. 이 사람이 죽기는 이 동네에서라고 생각하오. 여기서 멀지도 아니한 집이 있고 또 굴이 여기 있는 줄을 잘 알고, 또 세달사나 낙산사에 관계가 있는 사람인가 하오. 지나가는 중을 재물을 탐하는 적심으로 죽였다고 볼 수 없으니 필시 무슨 사혐인가 하오. 이런 생각으로 알아보면 진범이 알아질 것도 같소마는 아손 말씀이 죽은 사람은 아신다 하니 이제는 아손이 보시는 바를 일러주시오.”라고 한다.
“과연 사또는 명관이시오. 절절이 다 이치에 꼭 맞는 말씀이오. 나도 사또 생각과 같은 생각이오. 평목으로 말하면 분명히 사혐으로 죽었다고 보오. 평목을 죽인 자가 누구냐 하는 데 대하여서도 나로서는 짐작하는 바가 있소마는, 일이 일이라 경경히 누구를 지목하여 말하기 어렵소. 이치에 꼭 그럴 것 같으면서 실상은 그렇지 아니한 일도 간간 있으니까요. 그러니까 사또는 우선 죽은 사람의 행구와 이 사람이 이 동네에 들어오는 것을 본 사람을 알아보시오. 그래서 상당한 증거만 나서면 그 남저지 평목이나 평목을 해한 사람에 대한 말씀은 그때에 내가 자세히 사또께 아로이리다.”하는 모례의 말을 가만히 듣고 있던 태수는 고개를 크게 끄덕이면서, “아손 말씀이 지당하오.”
꿈 - 16. 굴 속에서 발견된 것
- 세부
- 주동식에 의해 작성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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