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도 깊어서 모두 잠이 들었다. 깨어 있는 것은 조신뿐인 것 같았다. 기실 조신은 모든 사람이 다 잠들기를 기다린 것이었다. 조신은 할 일이 있었으니, 그것은 사랑 벽장에 있는 평목의 행구를 치이는 것이었다.

평목의 시체를 묻지 아니한 것보다 못지않게, 그의 행구를 처치해버리지 아니한 것을 조신은 후회하였다. 조신은 이 행구를 치울 것을 잊어버린 것은 아니었다. 다만 무서워서 손을 대기가 싫어서였다. 그러나 이 행구는 평목을 죽인 살인에 대하여는 꼼짝할 수 없는 증거였다. 왜 그런고 하면 그 바랑 속에는 평목의 이름을 쓴 도첩이 있을 것이요, 또 아마 그의 바리때 밑에도 이름이 새겨 있을 것이다. 이것이 드러난 담에야 다시 무슨 변명이 있으랴. 이것을 생각하면 조신은 전신이 얼어 들어가는 것 같았다.

조신은 식구들이 다 잠들기를 기다렸으나, 달례가 좀체로 잠이 아니 드는 모양이었다. 조신은 달례에게 대하여서도 장차 제가 시작하려는 일을 알리고 싶지 아니하였다. 죄를 진 자가 제 죄를 감추려는 모든 일은 제 그림자보고도 말하고 싶지 아니한 것뿐이었다.

마침내 달례가 정말인지 부러인지 모르나 가볍게 코를 고는 소리가 들렸다. 조신은 가만히 일어나서 밖에 나갔다. 흐렸던 하늘은 활짝 개이고 시월 하순달이 불붙는 쇠뿔 모양으로 떠올라와서 푸르스름한 빛을 내고 있는 것이 귀신 사는 세상에나 볼 것같이 무시무시하였다.

조신은 호미와 낫을 들고 사랑 벽장 붙은 쪽으로 발끝걸음으로 가만가만 걸어갔다. 다들 사냥에 지치고 술이 취하였으니, 아무도 볼 사람이 없으리라고 안심은 하나 달빛이 싫었다.

조신은 아무쪼록 처마 그늘에 몸을 감추면서 호미 끝으로 벽장 바깥벽을 따짝따짝 긁어보았다. 의외에 소리가 컸다. 조신은 쥐가 긁는 소리와 같이 방안에서 자는 사람의 귀에 들리도록 가락을 맞추어서 긁었다.
마른 벽은 굳기가 돌과 같아서 여간 쥐가 긁는 소리로는 구멍이 뚫어질 것 같지 아니하였다.

‘이렇게 언제 그놈의 바랑을 끌어내일 만한 구멍을 뚫는담.’하고 조신은 뒤를 휘둘러보며 한숨을 쉬었다.

‘그래도 뚫어야 한다. 뚫고 그놈의 바랑을 꺼내야 한다. 그밖에는 살아날 길이 없다.’

조신은 또 호미 끝으로 혹은 낫 끝으로 콕콕 찔러도 보고 박박 긁어도 보았다. 그리고는 얼마나 흙이 떨어졌나 하고 손으로 쓸어도 보았다. 그러나 아직 욋가지가 조금 드러났을 뿐이요. 그것도 손바닥만한 넓이밖에 못되었다.

이 모양으로 조신이 정신없이 긁고 있을 때에 방에서, 한 소리가, “이게 무슨 소린가?”하자, 또 한 소리가, “쥔가보오. 벽장에 쥐가 들었나보오.”하고 주고받는다. 귀인이라 잠귀가 밝다 하고 조신은 벽에서 떨어져서 두어 걸음 달아나서 숨어서 귀를 기울였다.

“거 꿈 수상하오.”하고 또 소리가 들린다. 그것은 원의 음성이었다.

“무슨 꿈이오?”하는 것은 모례의 소리였다.

“비몽사몽인데 저 벽장문이 방싯 열리며, 웬 중의 머리가 쑥 나온단 말요. 그러자 쥐 소리에 잠이 깼는걸.” 이것은 원의 소리다.

다음에는 모례의 소리로, “낮에 본 것이 꿈이 된 게지오.”

그리고는 잠잠하다. 조신은 두 사람이 코고는 소리가 나기를 기다렸으나 아무 소리도 없었다.

조신은 원의 꿈이 마음에 찔렸다. 평목이가 원의 꿈에 나타나서 전후 시말을 다 말을 하면 어찌하나 하고 고개를 숙였다.

평목이 혼이 원의 꿈에 들어오는 것을 막을 길이 없어도 벽장에 든 평목의 행구는 집어치워야만 한다. 조신은 또 낫 끝으로 외가지를 따짝따짝해보았다. 그러고는 귀를 기울였다. 조신은 조금 더 힘을 주어서 호미로 흙을 긁었다. 그러다가 지긋이 흙을 잡아당기었다. 쩍 하면서 흙 한 덩어리가 떨어진다. 흙 덩어리는 손을 피하여서 털석 하는 소리를 내고 땅에 떨어져서 부서졌다. 고요한 밤이라 조신의 귀에는 그것이 벼락치는 소리와 같았다. 조신은 큰일을 저지른 아이 모양으로 두 손을 허공에 들고 어깨를 웅숭그렸다.

“이봐라.”하고 호령하는 소리가 들렸다. 원의 소리다.

“이봐라 네, 이 벽장 열어보아라. 쥐가 들었단 말이냐. 사람이 들었단 말이냐.” 이것은 원이 웃방에서 자는 통인을 부르는 소리였다.

‘아이구 이제는 죽었고나!’하고 조신은 호미를 버리고 방으로 뛰어들어갔다. 혹시 발각이 되더라도 도적이 와서 벽을 뚫다가 달아난 것으로 보였으면 하는 한줄기 희망도 있었지마는, 그것은 그렇다고 하고라도 평목의 바랑이 드러났으니 꼼짝할 수가 없다.

조신은 달례를 흔들었다. 달례가 벌떡 일어났다.

“나는 달아나오.” 조신은 떨리는 소리로 말하였다.

“네, 어디로?” 달례는 조신의 소매에 매어달렸다.

조신은 떨리는 손으로 달례의 머리를 만지면서, “내가 평목이를 죽였어. 평목이를 죽인 게 내야. 그런데 그것이 탄로가 났어. 원이 알았어. 이제 꼼짝달싹할 수 없이 되었으니, 나는 달아나는 대로 달아나겠소. 당신은 모례 아손께 빌어보오. 살인이야 내가 했지 당신이야 상관 있소? 집과 재물은 다 빼앗기겠기만 당신이나 아이들이야 설마 죽일라구, 자, 놓으시오. 어서 나는 달아나야 해.”하고 한손으로 달례가 잡은 소매를 나꾸채고 한 손으로 달례의 머리를 떠밀어서 몸을 빼치려고 한다. 그래도 달례는 놓친 아니하고 더욱 조신의 소매를 감아쥐며, “당신이 달아나면 다 같이 달아납시다. 살인한 놈의 처자가 어떻게 이 동네에 붙여 있겠소. 우리 다섯 식구 가는 대로 가다가 살게 되면 살고, 죽게 되면 같이 죽읍시다.”하고 조금도 허둥허둥하는 빛도 없이 아이들을 일으킨다.

조신의 집 식구들은 얼마나 빨리 걸었는지 작은 두텁 고개를 넘어 큰 두텁 고개 수풀 길에 다다랐을 때에는 아이 어른 할 것 없이 모두 땀에 떠 있었다.

“아버지, 좀 쉬어 갑시다.”하는 미력의 목소리는 가늘었다.

조신은 우뚝 서서 뒤를 돌아보았다. 미력이는 눈 위에 기운 없이 주저앉았다.

“아버지, 나는 더 못 가겠어요.”하고 미력이는 고만 쓰러지고 말았다.

“웬일이냐. 어디가 아프냐?”하고 달례가 미력의 머리를 만져보았다.

“아이구, 이를 어쩌나. 이애 몸이 불이로구려.”

조신은 업은 아이를 내려놓았다. 미력의 몸은 과연 불같이 달았다.

“미력아, 미력아.”하고 조신과 달례가 아무리 불러도 미력은 숨소리만 짧게 씨근거리고 말을 못하였다. 조신은 굴 앞에 놓인 평목의 시체를 생각하였다. 미력이가 앓는 것은 평목의 장난인 것 같아서 일변 무섭고 일변 원망스럽다.

바람은 없었으나 새벽은 추웠다. 조신은 미력을 무릎 위에 안았다. 열 일곱 살이나 먹은 사내는 안기도 아름이 버으렀다. 어린것들은 옹기종기 모여 앉아서 떨고 있었다. 이러다가 여섯 식구가 몽탕 얼어죽을 길밖에 없었다. 인가를 찾아가자니 집으로 되돌아가지 아니하면, 큰 두텁 고개 이십 리를 넘어야 하였다. 게다가 뒤에는 조신을 잡으려고 따르는 나졸이 있는지도 모른다.

조신은 절망적인 마음으로 우러러보았다. 갈구리 같은 달은 높이 하늘에 걸리고 샛별도 주먹같이 떠올랐다. 이 망망한 법계에 몸을 담을 곳이 없는 몸인 것을 조신은 가슴 아프게 느꼈다.

이 모양으로 얼마나 지났는지 모르나 조신은 벌써 숨이 끊어진 미력을 그런 줄도 모르고 안고 있었다. 달례가 미력의 몸을 만져본 때에야 비로소 그가 식은 몸인 것을 알았다.

“미력아, 미력아.”하고 두어 번 불러보았으나 눈물도 나오지 아니하였다.

조신은 미력의 눈을 손으로 쓸어 감기며, “미력아, 네야 무슨 죄 있느냐. 부디 왕생 극락하여라.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하고 염불을 하면서 그 시체를 안고 일어나서 허둥지둥 묻을 곳을 찾았다.

땅을 팔 수도 없거니와, 팔 새도 없었다. 조신은 여기가 좋을까, 저기가 좋을까 하고 나무 그늘로 이리저리 헤매었다. 볕이나 잘 들 데, 물에 씻기지나 아니할 데, 이 다음에 와서 찾을 수 있는 데 - 이러한 곳을 찾노라고 이리저리 헤매었다. 조신은 무섭고 미운 생각으로 평목의 시체를 안고 가던 한 달 전 일을 생각하였다. 이제 그는 슬픔과 아까움과 무서움을 품고 아들의 시체를 안고 헤매는 것이다.

조신은 두드러진 바위 밑 늙은 소나무 그늘에 미력을 내려놓았다. 그러고는 혹시나 살아 있지나 아니한가 하고 미력의 가슴에 귀를 대어 보았으나 잠잠하였다.

‘정말 죽었고나.’하고 조신은 벌떡 일어났다. 조신은 미력의 손발을 모았다. 아직도 굳어지지 아니하여 나긋나긋하였다. 생명이 다시 돌아올 것만 같았다.

조신은 미력의 시체를 눈으로 파묻었다. 아무리 두 손으로 눈을 처덮어도 미력의 검은 머리가 덮이지 아니하였다. 미력이가 몸을 흔들어서 눈이 흘러내리는 것 같았다.

마침내 검은 머리도 감추었다. 인제는 달빛에 비추인 눈더미 뿐이었다.

조신은 오래간만에 합장을 하였다. 뜨거운 눈물이 쏟아짐을 걷잡을 수가 없었다. 어디서 캥캥하고 여우 우는 소리가 들렸다.

조신는 돌아서서 처자들이 있는 곳으로 내려왔다.

달례와 세 아이들은 한데 뭉쳐서 올올 떨고 있었다. 속은 비이고 몸은 얼어 들어왔다. 어제 사냥하노라고 산으로 달리고 밤을 걱정과 슬픔으로 새운 조신은 사내면서도 정신이 반은 나간 것 같았다.

“자, 다들 일어나서 가자. 산 사람은 살아야지. 걸음을 걸으면 몸도 더워진다.”하고 조신은 칼보고를 업고 나섰다. 달례도 젖먹이를 업고 따랐다. 달보고도 기운없이 따랐다.

“고개만 넘어가면 인가가 있어.”하고 조신은 가끔가끔 뒤를 돌아보면서 걸었다.

‘가족에게 알리지 말고 저 한 몸만 빠져나왔더면 이런 일은 없는 걸.’하고 조신은 후회하였다. 아무리 살인한 놈의 식구라도 당장 내어쫓지는 아니할 것이다.

‘나 한 몸만 같으면야 무슨 걱정이 있으랴, 어디를 가면 못 얻어 먹고 어디를 가면 못 숨으랴. 이 식구들을 끌고야 어떻게 밥인들 얻어먹으며 몸을 숨기긴들 하랴.’하고 조신은 얼음길에 힘들게 다리를 옮겨놓으면서 혼자 생각하였다.

조신의 일행이 천신만고로 두텁고개 마루터기에 올라설 때에는 벌써 해가 떴다.

태백산맥의 여러 봉우리들이 볕을 받아서 금빛으로 빛났다. 마루터기 찬바람은 어이는 듯하였다. 골짜기에는 아직 밤이 남아 있고 그 위에는 안개가 있었다. 조신은 저 어두움 속에는 따뜻한 인가들이 있고 김이 나는 국과 밥이 있을 것을 생각하였다. 배고프고 떨고 있는 처자를 다만 한참동안이라도 그런 따뜻한 맛을 보여주고 싶었다.

“아버지, 추워.”

“어머니, 배고파.” 아이들은 이런 소리를 하기 시작하였다.

“잠깐만 참아. 이 고개를 다 내려가면 말죽거리야. 거기 가면 따뜻한 방에 들어앉아서 뜨뜻한 국에 밥을 말아먹을걸.” 조신은 이런 말로 보채는 어린것들을 위로하였다.

조신의 일행은 마침내 말죽거리를 바라보게 되었다. 이곳은 그리 큰 주막거리는 아니나 삼태골, 울도, 멍에목이로 가는 길들이 갈리는 목이었다. 그래서 보행객이나 짐실이 마소들이 여기 들어서 묵어서 가는 참이었다. 조신의 계획은 밤 동안에 우선 여기까지 와 가지고 어디로나 달아날 방향을 정하자는 것이었다. 길이 사방으로 갈리기 때문에 종적을 숨기기 쉽다고 생각한 것이었다.

“저기 집 보인다.”

“연기가 나네.”하고 아이들은 얼어붙은 입으로 좋아라고 재깔였다.

“떠들지 말아.” 달례가 걱정하였다.

연기 나는 집들을 본 아이들은 매우 흥분한 모양이었다. 그들은 산길을 걷는 동안은 거의 입을 벌리지 아니하였다.

냇물은 굵은 돌로 놓는 검정다리에 부딪쳐 소리를 내며 흘렀다. 물결이 없는 곳에는 얼음이 얼어 있었다. 꿩도 날고 까마귀와 까치도 날았다.

주막거리에서는 벌써 짐진 사람과 마소바리들이 떠나고 있었다. 웬 보행객 한 사람이 마주오는 것을 조신은 보았다. 조신은 어쩌나 하고 가슴이 뭉클하였으나, 어찌할 도리가 없었다.

“어디서 떠났길래 이렇게 일찍 오시오?”하고 그 행객이 조신의 일행을 보고 물었다. 그는 조신네 일행을 훑어보았다.

“얘 외할아버지가 병환이 위독하다고 전인이 와서 밤 도아 오는 길이오.”하고 조신은 그럴 듯이 꾸며대었다.

그 행객은 달례와 달보고를 힐끗힐끗 보면서 지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