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튿날 아침에 두 사람은 굴속에서 나왔다. 조신은 김랑의 얼굴을 밝은 데서 대하기가 부끄러웠으나, 김랑은 더욱 부끄러운 듯이 두 손으로 얼굴을 가리웠다.
두 사람은 시냇가에 내려와서 양추하고 세수를 하였다.
조신은 세수를 끝내고는 서쪽을 향하여서 합장하고 염불을 하려 하였으나, 어쩐 일인지 두 손이 잘 올라가지를 아니하였다. 제 몸이 갑자기 더러워져서 다시 부처님 앞에 설 수 없는 것 같음을 느꼈다. 그래도 십 수 년 하여오던 습관에 부처님을 염하고 아침 예불을 아니하면 갑자기 무슨 큰 버력이 내릴 것 같아서 무서웠다. 그래서 조신은 억지로 두 손을 들어서 합장하고 들릴락말락한 소리로, “나무 아미타불.” 열 번과, “나무 관세음보살 마하살.” 열 번을 불렀다.
조신이 염불을 하고 나서 돌아보니 김랑이 조신의 모양을 웃고 보고 섰다가, “그러고도 염불이 나오시오?”하고 물었다.
조신은 무안한 듯이 고개를 숙였다.
“제가 공연히 나타나서 시님의 도를 깨뜨렸지요?”하고 김랑은 시무룩하면서 물었다.
“아가씨 곁에 있는 것이 부처님 곁에 있는 것보다 낫습니다.”하고 조신은 겸연쩍은 대답을 한다.
“아가씨는 다 무엇이고, 고맙습니다는 다 무엇이오? 인제는 나는 시님의 아낸데.”하고 김랑은 상긋 웃는다.
“그럼, 시님은 다 무엇이오? 나는 아가씨 남편인데.”
“또 아가씨라셔, 하하.”
“그럼, 갑자기 무에라고 부릅니까?”
“응, 또 부릅니까라셔, 하하. 시님이 퍽은 용렬하시오.”
“아가씨도 소승을 시님이라고 부르시면서.”
“응, 인제는 또 소승까지 바치시네. 파계한 중이 소승은 무슨 소승이오? 출분한 계집애가 아가씨는 무슨 아가씨고, 하하하하.”하고 김랑은 조신과 자기를 둘 다 조롱하는 듯이 깔깔대고 웃는다.
조신은 어저께 굴을 찾고 곰을 쫓고 할 때에는, 또 밤새도록 김랑에게 팔베개를 주고 무섭지 말게, 추워하지 말게 억센 팔에 폭 껴안아줄 때에는 자기가 김랑의 주인인 것 같더니, 김랑이 자기를 보고 파계승이라고 깔깔대고 웃는 것을 보는 지금에는 김랑은 마치 제 죄를 다루는 법관과도 같고, 저를 유혹하고 조롱하는 마귀와도 같아서 섬뜨레함을 느꼈다. 그래서 조신은 김랑으로부터 한걸음 뒤로 물러섰다.
“시님, 노여셨어요? 자, 아침이나 먹어요.”하고 김랑은 조신이가 들고 섰는 보퉁이를 빼앗으며, “자, 여기여기 앉아서 우리 아침이나 먹어요.”하고 제가 먼저 물가 바위 위에 앉으며 보퉁이를 끄른다. 그속에서는 백지에 싼 떡이 나왔다.
조신도 김랑의 곁에 앉았다.
“이게 웬 떡이오?”
“도망꾼이가 그만한 생각도 아니하겠어요.”하고 떡 한 조각을 손수 떼어서 조신에게 주면서, “자, 잡수셔요. 아내의 손에 처음으로 받아 잡수어보시오.”하는 양이 조신에게는 어떻게 기쁘고 고마운지 황홀할 지경이었다.
조신은 그것을 받아먹으면서, “그러면 이 보퉁이에 있는 게 다 떡이오?”하고 물었다.
“우리 일생 먹을 떡이오.”하고 김랑이 웃는다.
“일생 먹을 떡?”하고 조신은 그것이 은금 보화가 아니요, 떡이라는 것이 섭섭하였다.
“왜, 떡이면 안돼요?”
“안될 건 없지마는, 난 무슨 보물이라고.”
“중이 욕심도 많으시오. 나 같은 여편네만으로도 부족해서 또 보물?”하고 김랑은 조신을 흘겨본다.
조신은 부끄러웠다. 모든 욕심 - 이른바, 오욕을 다 버리고 무상도(無上道)만을 구하여야 할 중으로서 여자를 탐내고 또 보물을 탐내고 - 이렇게 생각하면 앞날과 내생이 무서웠다.
“보물 좀 보여드릴까요? 자.”하고 김랑은 미안한 듯이 보퉁이 속에 싸고 또 싼 속 보퉁이를 끄르고 백지로 싼 것을 또 끄르고 또 끄르고 마침내 그 속에서 금가락지, 금비녀, 은가락지, 은비녀, 옥가락지, 옥비녀, 산호, 금패, 호박 같은 것들이 번쩍번쩍 빛을 발하고 쏟아져 나왔다.
“아이구!”
가난한 집에 태어나서 여태껏 중노릇만 한 조신의 눈에는 이런 것들이 모두 처음이었다. 누런 것이 금인 줄은 부처님 도금을 보아서 알거니와, 그 밖에 다른 것들은 무엇이 무엇인지 이름도 알 길이 없었다.
“이만하면 어디를 가든지 우리 일생 평안히 먹고 살지 않아요?”하고 달례는 굵다란 금비녀를 들어서 흔들어 보이면서, “이것들을 팔아서 땅을 장만하고, 집을 하나 얌전하게 짓고, 그리고 우리 둘이 아들딸을 낳고 산단 말야요. 우리 둘이 머리가 파뿌리가 되도록.”하고 조신에게 안긴다.
“늙지도 말았으면.” 조신은 늙음이 앞에 서기나 한 것같이 낯을 찡그렸다.
“어떻게 안 늙소.” 달례도 양미간을 찌푸렸다.
“늙으면 죽지 않어?”
“죽기도 하지마는 보기 숭해지지 않소? 얼굴에는 주름이 잡히고 살갗도 꺼칠꺼칠해지고.”
“또 기운도 없어지고.”
“눈이 흐려지고, 아이 숭해라.” 달례는 깔깔대고 웃는다.
조신은 달례의 저 고운 얼굴과 보드라운 살이 늙으려니 하면 슬펐다. 하물며 그것이 죽어서 썩어지려니 하면 견딜 수가 없었다.
“그런 생각은 맙시다, 흥이 깨어지오. 젊어서 어여쁘고 기운 있는 동안에 재미있게 살읍시다. 자 우리 가요. 어디 좋은 데로 가요.” 달례는 이렇게 말하고 조신을 재촉하였다.
두 사람은 일어났다.
꿈 - 8. 젊어서 어여쁘고 기운 있는 동안에
- 세부
- 주동식에 의해 작성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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