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축문을 들은 조신은 가슴이 내려앉는 듯하였다.
“그러면 달례는 벌써 남의 집 사람이 되었는가?”
조신은 앞이 캄캄하여 몸이 앞으로 쓰러지려 하였다. 이때에 평목이 팔꿈치로 조신의 옆구리를 찔렀기에 겨우 정신을 수습할 수가 있었다.
축원문은 또 읽어졌다. 축원문이 끝날 때마다 재자는 절을 하였다. 달례도 절을 하였다.
축원문은 세 번 반복하여 읽어졌다. 재자의 절도 세 번 있었다.
세번째 달례가 옥으로 깎은 듯한 두 손을 머리 위에 높이 들 때에는 조신은 달려들어 불탑을 들러엎고 달례를 웅퀴어 안고 달아나고 싶은 충동을 느꼈다. 그리고 관세음보살상을 바라보았다. 관세음보살은 조신을 보시고 빙그레 웃으시는 듯, 그러나 그것은 비웃는 웃음인 것 같았다.
조신은 또 한번 불탑에 달려들어 관세음보살상을 끌어내어서 깨뜨려버리고 싶은 분노를 느꼈다. 그러나 다시 관세음보살상을 우러러볼 때에는 관세음보살은 여전히 빙그레 웃고 계셨다.
그 뒤에 중단, 하단, 칠성단, 독성단, 산신당 일은 어떻게 지나갔는지 조신은 기억이 없었다.
재가 파한 뒤에 조신은 조실에 용선 대사를 뵈었다.
용선 대사는 꼭 다물은 입과 깊은 눈썹 밑에서 빛나는 눈가에 웃음을 띠운 듯하였다.
“시님, 소승은 어떻게 합니까?”하는 조신의 말에는 눈물이 섞여 있었다.
“무엇을?”하는 대사의 얼굴에는 무서운 빛이 돌았다.
“사또 따님은 혼사가 맺혔습니까?”
“그래, 아까 축원문에 듣지 아니하였느냐? 화랑 모례 서방과 혼사가 되어서 삼일 후에 혼인잔치를 한다고 그러지 않더냐?”
“그러면 소승은 어찌 합니까?”
“무얼 어찌해?”
“사또 따님과 백년 연분을 못 맺으면 소승은 이 세상에 살 수는 없습니다.”
“이 세상에 살 수 없으면 어디 좋은 세상으로 갈 데가 있느냐?”
“소승, 이 소원을 이루지 못하면 죽어서 축생도에 떨어져서 배암이 되어서라도 사또 따님의 뒤를 따르겠습니다.”
“그것도 노상 마음대로는 안될 것을. 그만한 인연이라도 없으면 그렇게도 안될 것을.”
“그러면 소승 사또 따님을 한칼로 죽여버리고 소승도 그 피묻은 칼로 죽겠습니다.”
“그것도 네 마음대로는 안될 것을.”
“그것도 안되오면 소승 혼자라도 이 칼로 죽어버리겠습니다.”하고 조신은 품에서 시퍼런 칼 하나를 내어서 보인다.
“그것도 네 마음대로 안될 것이다.”
“어찌하여 안됩니까? 금방 이 칼로 이렇게 목을 따면 죽을 것이 아닙니까?”
“목이 따지지도 아니할 것이어니와, 설사 목을 따더라도 지금은 죽어지지 아니할 것이다. 네 찌그러진 모가지에 더 보기 숭한 칼 자욱 하나만 더 내고 너는 점점 사또 따님과 인연이 멀어질 것이다.”
“그러면 소승은 어찌하면 좋습니까? 시님, 자비심을 베푸시와 소승의 소원을 이룰 길을 가르쳐 주옵소서.”하고 조신은 오체투지로 대사의 앞에 너붓이 엎드려 이마를 조아린다.
대사는 왼편 손 엄지가락으로 염주를 넘기고 말이 없다.
조신은 고개를 들어서 용선을 우러러보고는 또한번 땅바닥에 엎드려, “시님, 법력을 베푸시와서 소승의 소원이 이루어지도록 하여주시옵소서.”하고 수없이 머리를 조아린다.
“네 분명 달례 아기(阿只)와 연분을 맺고 싶으냐?”하고 대사는 염주를 세이기를 그친다.
“네, 달례 아기와 연분을 맺고 싶습니다.”
“왕생극락을 못하더라도?”
“네, 무량겁의 지옥고를 받더라도.”
“축생보를 받더라도?”
“네, 아귀보를 받더라도.”
“네 몸뚱이가 지금만 하여도 추악하여서 여인이 보면 십리 만큼이나 달아나려든, 게다가 더 추한 몸을 받아 나오면 어찌 될꼬?”
용선은 빙긋이 웃는다.
“시님, 단지 일년만이라도 달례 아기와 인연을 맺았으면 어떠한 악보를 받잡더라도 한이 없겠습니다.”
“분명 그러냐?”
“네, 분명 그러하옵니다. 일년이 머다면 한 달만이라도, 한 달도 안된다오면 단 하루만이라도, 단 하루도 분에 넘친다 하오면 이 밤이 새일 때까지만이라도, 시님, 자비를 베푸시와 소승을 살려주시옵소서. 소승의 소원을 이루어주시옵소서.”하고 조신은 한번 더 일어나서 절하고 무수히 머리를 조아린다.
“그래라.” 용선은 선뜻 허락하는 말을 준다.
“네? 소승의 소원을 이루어주십니까?” 조신은 믿지 못하는 듯이 대사를 바라본다.
“오냐, 네 소원이 이루어질 것이다.”
“금생에?”
“바로 사흘 안으로.”
“네? 사흘 안으로? 소승이 달례 아기와 연분을 맺습니까?”
“오냐, 태수 김공이 사흘 후에 이 절을 떠나기 전에 네 소원이 이루어질 것이다.”
“네? 시님? 그게 참말입니까?”
“그렇다니까.”
“어리석은 소승을 놀리시는 것 아닙니까? 시님, 황송합니다. 소승이 백번 죽사와도 시님의 이 은혜는 잊을 수가 없을 것입니다. 시님, 황송합니다.”하고 조신이 일어나서 절한다.
용선은 또 한참 염주를 세이더니 손으로 무릎을 치며, “조신아!”하고 부른다.
“네.”
“네, 꼭 내 말대로 하렸다.”
“네, 물에 들어 가라시면 물에, 불에 들어 가라시면 불에라도.”
“꼭 내가 시키는 대로 하렸다.”
“네, 팔 하나를 버이라시면 팔이라도, 다리 하나를 자르라시면 다리라도.”
“응, 그러면 네 이제부터 법당에 들어가서 관음 기도를 시작하는데, 내가 부르는 때까지는 나오지도 말고 졸지도 말렸다.”
“네, 이틀 사흘까지라도.”
“응, 그리하여라.”
“그러면 소승의 소원은 이루어…”
“이 믿지 않는 놈이로고! 의심을 버려라!”하고 대사는 대갈일성에 주장(杖)을 들어 조신의 머리를 딱 때린다.
조신의 눈에서는 불이 번쩍한다.
꿈 - 4. “오냐, 네 소원이 이루어질 것이다.”
- 세부
- 주동식에 의해 작성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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