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 경내는 먼지 하나 없이 정결히 쓸리고 물까지 뿌려졌다. 동해 바다의 물결이 석벽에 부딪치는 소리가 철석철석 들려왔다. 그 소리와 어울려서, “나무 대자 대비 관세음보살 마하살.”하는 조신의 염불 소리가 끊임없이 법당에서 울려 나왔다.
문마다 정재소(淨齎所)라는 종이가 붙었다. 노란 종이 다홍 종이에 범서(梵書)로 쓰인 진언들이 깃발 모양으로 법당에서 사방으로 늘인 줄에 걸렸다.
법당 남쪽 모퉁이 별당이 원님네 일행의 사처로 정결하게 치워졌다. 태수 김 흔공은 이 절에 백 여 석 추수하는 땅을 부친 큰 시주였다. 그러므로 무슨 특별한 큰 재가 아니라도 이처럼 정성을 드리는 것이었다.
해가 낮이 기울어서 승시 때가 될 때쯤 하여서 전배가 달려와서 원님 일행이 온다는 선문을 놓았다.
노장은 칠팔 인 젊은 중을 데리고 동구로 나갔다. 모두 착가사 장삼하고 목에 염주를 걸고 팔목에는 단주를 들었다. 노장은 육환장을 짚었다. 꾀꼬리 소리가 들려오고 이따금 멀리서 우는 종달새 소리가 들렸다. 봄철 저녁 날이라 바람은 좀 있었으나 날은 화창하였다. 검을이 만큼 푸른 바다에는 눈 같은 물 꽃이 피었다. 중들의 장삼자락이 펄펄 날렸다.
이윽고 노루목이 고개로 검은 바탕에 홍 끝동 단 사령들이 너풀거리는 것이 보였다. 그리고는 가마 세 틀이 보기 좋게 들먹들먹 흔들리면서 이리로 향하고 넘어오는 것이 보였다. 짐을 진 행인들이 벽제 소리에 길 아래로 피하는 것도 보였다.
원의 일행은 산모퉁이를 돌았다. 용선 대사 일행이 마중을 나서 섰는 양을 보았음인지 가마는 내려놓아졌다. 맨 앞 가마에서 자포를 입고 흑건을 쓴 관인이 나선다. 그리고 둘째 가마에서도 역시 자포를 입은 부인이 나서고, 맨 나중에 분홍 긴 옷을 입은 달례가 나선다. 세 사람은 천천히 걷기를 시작한다. 뒤에는 통인 한 쌍과 시녀 한 쌍이 따르고 사령 네 쌍은 전배까지도 다 뒤로 물러서 따른다. 절 동구에 들어오는 예의다.
서로서로의 얼굴이 바라보일 만한 거리에 왔을 때에 김 태수는 합장하고 고개를 숙인다. 부인과 달례도 그 모양으로 하고 따르는 자들도 다 그렇게 한다. 이것은 절에 대하여서와 마중 나온 중들에게 대하여 하는 첫인사였다. 이에 대하여서 용선 법사도 합장하였다.
이러하는 동안에 맨 뒤에 선 조신은 반 정신은 나간 사람 모양으로 분홍 옷만 바라보고 있었다. 그러고 울렁거리는 가슴과 떨리는 몸을 가까스로 억제하면서 입 속으로 관세음보살을 염하였다.
마침내 태수의 일행은 용선 대사 앞에 왔다. 태수는 이마가 거의 땅에 닿을이 만큼 대사에게 절을 하고, 부인과 달례는 오체투지(五體投地)의 예로 대사에게 절하였다.
조신은 달례가 무릎을 꿇는 것을 보고는 부지불각에 무릎을 꿇어버렸다. 출가인은 부모나 임금의 앞에도 절을 아니하는 법이다.
“쩟!”하고 곁에 있던 평목이 발길로 조신의 엉덩이를 찼다.
용선 대사가 앞을 서고 그 다음에 태수 일행이 따르고 그 뒤에 중들이 따라서 절에 들어왔다.
조신은 평목에게 여러가지 핀잔을 받으면서 정신없이 다른 사람들의 뒤를 따라 들어왔다.
‘지나간 일년 동안에 더욱 아름다와졌다.’
조신은 이렇게 속으로 중얼대었다. 열 다섯, 열 여섯 살의 처녀가 피어나는 것은 하루가 새로운 것이다. 조신의 그리운 눈에는 달례는 아무리 하여도 인간 사람은 아닌 듯하였다. 그의 속에는 피고름이나 오줌똥도 있을 수 없고, 오직 우담발라의 꽃 향기만이 찼을 것 같았다.
‘그 눈, 그 눈!’하고 생각하면 조신은 정신이 땅속으로 잦아드는 것 같았다.
“나무 관세음보살 마하살.”하고 조신은 곁에 사람들이 있는 것도 잊고 소리높이 불렀다. 이 소리에 달례의 눈이 조신에게로 돌아왔다. 달례는 조신을 알아보는 듯 눈이 잠깐 움직인 것같이 조신에게는 보였다.
유시부터 재가 시작된다.
중들은 바빴다.
부처님 앞에는 새로 잡은 황초와 새로 담은 향불과 새로 깎은 향이 준비되고, 커다란 옥등잔도 말짱하게 닦아서 꼭꼭 봉하여두었던 참기름을 그뜩그뜩 붓고 깨끗한 종이로 심지를 꼬아서 열 십자로 놓았다. 한 등잔에 넷이 켜지게 하는 것이다.
중들이 이렇게 바쁘게 준비하는 동안에 태수의 일행은 사처에 들어서 쉬이기도 하고 동해의 경치를 바라보기도 하였다.
퇴 밑에 벗어놓은 분홍신은 달례의 신이 분명하거니와, 달례는 몸이 곤함인지 재계를 위함인지 방안에 가만히 앉아서 얼마 아니 있으면 피어날 섬돌 밑 모란 봉오리를 바라보고 있었다. 모란 봉오리들은 금시에 향기를 토할 듯이, 그러나 아직 때를 기다리는 듯이 붉은 입술을 꼭 다물고 있었다.
저녁 까치들이 짖을 때에 종이 울었다. 뎅 뎅, 큰 쇠가 울고 있었다.
불공 시간이 된 것이다.
젊은 중들이 가사 장삼에 위의를 갖추고 둘러서고, 김 태수네 가족이 들어와서 재자齋者 의 자리인 불탑 앞에 가지런히 서고, 나중에 용선 대사가 회색 장삼에 금실로 수를 놓은 붉은 가사를 입고 사미의 인도를 받아서 법석에 들어와 인도하는 법사의 자리에 섰다.
정구업 진언에서 시작하여 몇 가지 진언을 염한 뒤에 관세음보살, 비로자나불, 로사나불, 석가모니불, 아미타불을 불러, “원컨댄 재자의 정성을 보시와, 도량에 강림하시와 공덕을 증명하시옵소서.”하고 한 분을 부를 때마다 법사를 따라서 일동이 절하였다. 김 태수의 가족도 절하였다. 정성스럽게 두 손을 높이 들어서 합장하여 이마가 땅에 닿도록 오체투지의 예를 하였다.
향로에서는 시방 세계의 부정한 것을 다 제하고 향기로운 구름이 되어서 덮게 한다는 향연이 피어 오르고, 굵은 초에는 맑은 불길이 춤을 추고 있었다.
이 모든 부처님네와 관세음보살이 이 자리에 임하시와서 재자의 정성을 보옵시라는 뜻이다.
“옴 바아라 미나야 사바하.”하는 것은 불보살님네가 자리에 앉으시라는 진언이다.
그러한 뒤에 사미가 쟁반에 차 네 그릇을 다섯 위 앞에 올리자 법사는, “금장감로차 봉헌징명전 감찰건간심 원수애납수(今將甘露茶 奉獻證明前... 察虔懇心 願垂哀納受 : 차를 받들어 징명하시는 이께 올리오니 정성을 보시와서 어여삐 여겨 받으시옵소서)하는 뜻이다.
차를 올리고는 또 절이 있었다.
그러고는 법사는 다시, “대자 대비하옵시와 흰옷을 입으신 관세음보살 마하살님 자비심을 베푸시와 도량에 강림하시와 이 공양을 받으시옵소서.”하고는 또 쇠를 치고 절하였다.
달례도 법사의 소리를 맞추어 옥같이 흰 두 손을 머리 위에 높이 들어 관음상에 주목하면서 나붓이 절을 하였다.
그러고는 관음참회례문이 시작되었다.
“옴 아로륵계 사비하.”하는 멸업장진언滅業障眞言 은 법사의 소리를 따라서 일동도 화하였다. 달례의 맑고 고운 음성이 중들의 굵고 낮은 음성 사이에 울렸다. 조신도 전생 금생의 모든 업장을 소멸하여줍소서 하는 이 진언을 정성으로 염하였다.
“백겁에 쌓은 죄를 百劫積集罪
일념에 씻어지다 一念頓蕩除
마른 풀 살우듯이 如火焚枯草
모조리 살위지다 滅盡無有餘 ”
하는 참회게를 이어, “옴 살바 못·모리바라야 사바하. 원컨댄 사생 육도(四生六途)에 두루 도는 법계 유정(法界有情) 목숨 있는 무리 이 여러 겁에 죽고 나며 지은 모든 업장을 멸하여지이다. 내 이제 참회하옵고 머리를 조아려 절하오니, 모든 죄상을 다 소멸하여주옵시고 세세 생생에 보살도를 행하게 하여주시옵소서.”하는 참회 진언과 축원이 법사의 입으로 외어질 때에는 일동은 한참 동안이나 엎드려 일어나지 아니하였다.
이 모양으로 몸으로 지은 업과 입으로 지은 업과 마음으로 지은 업을 다 참회한 뒤에 다시는 죄를 짓지 아니하고 불, 법, 승 삼보(佛法僧三寶)를 공경하여 빨리 삼계 인연을 떠나서 청정 법신을 이루어지이다 하는 원을 발하고는 삼보에 귀명례한 후에,
“삼보에 귀의하외
얻잡는 모든 공덕
일체유정에 돌려
함께 불도 이뤄지다.”
하고는 나중으로,
“이몸 한 몸속에 我今一身中
무진신을 나투와서... 現無盡身
모든 부처 앞에 遍在諸佛前
무수례를 하여지다 一一無數禮
옴 바아라 믹, 옴 바아라 믹, 옴 바아라 믹.”
하는 보례게(普禮偈)와 보례진언(普禮眞言)을 부르고는 용선 대사는 경상 위에 놓았던 축원문을 들어서 무거운 음성으로 느릿느릿 읽었다.
“오늘 지극하온 정성으로 재자 명주날리군 태수 김 혼공은 엎데어 대자 대비 광음대 성전에 아로이나이다.
천하 태평하여지이다.
이 나라 상감님 성수 무강하셔지이다.
큰벼슬 잔벼슬 하는 이 모두 충성되어지이다.
백성이 질고 없고 시화 세풍하여지이다.
불도 흥황하와 중생이 다 죄의 고를 벗어지이다.
이몸과 안해와 딸 몸 성하옵고 옳은 일 하여지이다.
딸 이번에 모례의 집에 시집 가기로 정하였사오니, 두 사람이 다 불은 입사와 백년 해로하옵고 백자 천신하옵고 세세생생에 보살행 닦게 하여주시옵소서.
이몸 죄업 많사와 아직 아들 없사오니 귀남자 점지하여주시옵소서.”
하는 것이었다.
꿈 - 3. 일 년 만에 다시 보았건만
- 세부
- 주동식에 의해 작성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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