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신은 나오는 길로 목욕하고 새 옷을 갈아입고 관음전으로 들어갔다. 용선 법사는 조신이 법당에 들어가는 것을 보고 문을 밖으로 잠그며, “조신아, 문을 잠갔으니 내가 부를 때까지 나올 생각 말고 일심으로 관세음보살을 부르렸다. 행여 딴 생각할셔라.”

“네.”하는 소리가 안으로서 들렸다.

“나무 대자 대비 관세음보살 관세음보살…”하는 조신의 염불 소리가 밤이 깊도록 법당에서 울려나왔다. 조신은 죽을 힘을 다하여서 관세음보살을 부르는 것이었다.

“열심으로 - 잡념 들어오게 말고.”하던 용선 시님의 음성이 조신의 귓가에 붙어서 떨어지지 아니하였다.

등잔불 하나에 비추어진 관음전은 어둠침침하였다. 그러한 속에 조신은 가부좌를 걷고 앉아서 목탁을 치면서 관세음보살을 불렀다. 그러는 동안에도 조신의 눈은 언제나 관세음보살님의 얼굴에 있었다. 반년나마 밤이면 자라는 쇠가 울기까지 이 법당에서 이 모양으로 앉아서 이 모양으로 관세음보살님의 얼굴을 바라보면서 칭호를 하였건마는, 오늘밤에는 특별히 관세음보살님의 상이 살아 계신 듯하였다. 이따금 그 정병(淨甁)을 듭신 손이 움직이는 것도 같고 가슴이 들먹거리는 듯도 하고 자비로운 웃음 띠우신 그 눈이 더욱 빛나는 것도 같았다. 조신이 더욱 소리를 가다듬고 정신을 모아서, “관세음보살, 관세음보살.”하고 부르면 관세음보살상의 한일자로 다물어진 입술이 방긋이 벌어지는 듯까지도 하였다.

그러나 다음 순간에 보면 관세음보살님의 입술은 여전히 다물어 있었다.

절에서는 대중이 모두 잠이 들었다.

오직 석벽을 치는 물결 소리가 높았다 낮았다 하게 조신의 귀에 울려올 뿐이었다. 그리고는 조신이 제가 치는 목탁 소리와 제가 부르는 염불 소리가 어디 멀리서 울려오는 남의 소리 모양으로 들릴 뿐이었다.

“관세음보살, 관세음보살, 관세음보살.”

조신이 몸이 피곤함을 느낄수록 잡념이 들어오기 시작하였다.

“잡념이 들어오면 정성이 깨어진다!”하여 그는 스스로 저를 책망하였다. 그러고는 목탁을 더욱 크게 치고 소리를 더욱 높였다.

잡념이 들어올 때에는 눈앞에 계시던 관세음보살상이 스러져서 아니 보이는 것 같았다. 그러다가 잡념을 내어쫓은 때에야 금빛 나는 관세음보살상이 여전히 눈앞에 계시었다.

“나무 대자 대비 관세음보살 마하살.”하고 조신은 관세음보살 명호를 갖추어 부름으로 잡념이 아니 들어오고 관세음보살님의 모양이 한 찰나 동안도 눈에서 스러지지 아니하기를 힘써 본다.

등잔엣 기름이 반남아 닳았으니 새벽이 가까왔을 것이다.

낮에 쉬일 사이 없이 일을 하였고, 또 김랑으로 하여서 정신이 격동이 된 조신은 마음은 흥분하였으면서도 몸은 피곤하였다. 또 칭호가 만념(萬念)도 넘었으니, 그것만으로도 피곤할 만하였다.

“이거 안되겠다.”하고 조신은 자주 정신을 가다듬었다. 그러나 사흘 동안이야 설마 어떠랴 하던 것은 어림없는 생각이었다. 조신의 정신은 차차 흐리기를 시작하였다.

조신은 무거워오는 눈시울을 힘써 끌어올려서 관세음보살을 아니 놓치려고 힘을 썼다.

그러나 어느 틈엔지 모르게 조신은 퇴 밑에 벗어놓인 김랑의 분홍신을 보면서 관세음보살을 부르고 있었다.

조신은 목탁이 부서져라 하고 서너 번 크게 치고, “나무 대자 대비 서방 정토 극락세계 관세음보살 마하살.”하고 불렀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요, 또 수마(睡魔)는 조신을 덮어 누르는 듯하였다.

이번에는 앞에 계신 관세음보살상이 변하여서 김랑이 되었다. 분홍 긴옷을 입고 흰 버선을 신고 옥으로 깎은 듯한 두 손을 내어밀어 지난 봄 조신의 손에서 철쭉을 받으려던 자세를 보이는 듯하였다.

조신은 벌떡 일어나서 김랑을 냅다 안으려 하였으나, 그것은 허공이었고 불탑 위에는 여전히 관세음보살님이 빙그레 웃고 계시었다.

조신은 다시 목탁을 두들기고, “나무 관세음보살 마하살.”하고 소리높이 불렀다.

얼마나 오래 불렀는지 모른다. 조신은 이 천지간에 제가 부르는 <관세음보살> 소리가 꽉 찬 듯함을 느꼈다. 김랑도 다 잊어버리고 제가 지금 어디 있는 것도 다 잊어버리고 저라 하는 것도 잊어버린 것 같았다. 오직, “나무 관세음보살.”하는 소리만이 살아 있는 것 같았다.

이때였다.

“똑, 똑, 똑, 똑.”

“달그닥 달그닥.”하는 소리가 조신의 귓결에 들려왔다.

또한번, “달그닥 달그닥.”하는 소리가 났다.

조신은 소스라쳐 놀라는 듯이 염불을 끊고 귀를 기울였다.

이때에 용선 스님이 잠근 문이 삐걱 열리며 들어서는 것은 그 누군고? 김랑이었다. 김랑은 어제 볼 때와 같이 분홍 긴옷을 입고 흰 버선을 신고 방그레 웃으며 들어왔다.

“아가씨!”

조신은 허겁지겁으로 불렀으나, 감히 손을 내어밀지는 못하고 합장만 하였다. 조신은 거무스름한 장삼에 붉은 가사를 걸고 있었다.

“시님 기도하시는 곳에 제가 이렇게 무엄히 들어왔습니다. 그렇지만 아무리 참으려도 참을 수가 없어서 어머님 잠드신 틈을 타서 이렇게 살짝 빠져나왔습니다. 남들은 다 잠이 들어도 저만은 잠을 못 이루고 시님이 관세음보살 염하시는 소리를 하나도 빼지 아니하고 다 듣고 있었습니다.”

“그러기로 이 밤중에 아가씨가 어떻게 여기를!”

“사모하옵는 시님이 계시다면 어디기로 못 가겠습니까? 산인들 높아서 못 넘으며 바다인들 깊어서 못 건너겠습니까? 시님이 저 동해 바다 건너편에 계시다 하오면 동해 바다라도 훌쩍 뛰어서 건너갈 것 같습니다.”하는 김랑의 가슴은 마치 사람의 손에 잡힌 참새의 것과 같이 자주 발락거렸다.

“못 믿을 말씀이십니다. 그러기로 소승 같은 못나고 찌그러진 것을, 무얼!”하고 조신은 부끄러운 듯이 고개를 숙인다.

“못나고 잘나기는 보는 사람의 마음입니다. 제 마음에는 시님은 인간 어른은 아니신 듯…”

“아가씨는 소승을 어리석게 보시고 희롱하시는 것입니까?”

“아이, 황송한 말씀도 하셔라. 이 가슴이 이렇게 들먹거리는 것을 보시기로서니, 이 깊은 밤에 부모님의 눈을 기이고 이렇게 시님을 찾아온 것을 보시기로서니, 어쩌면 그렇게도 무정한 말씀을…” 김랑은 한삼을 들어서 눈물을 씻는다.

“그러기로 아가씨와 같이 귀한 댁 따님으로, 아가씨와 같이 이 세상 더 볼 수 없는 아름다운 이로 천하가 다 못났다 하는 소승을…”

“지난 봄 언뜻 한번 뵈옵고는 시님의 높으신 양지를 잊을 길이 없어서.”

“그러기로 아까 낮에 축원문을 들으니, 아가씨는 벌써 모례 서방님과…”

“시님, 그런 말씀은 말아주셔요. 부모님 하시는 일을 어길 수가 없어서 - 아이 참, 여기서 이렇게 오래 이야기하다가 노시님의 눈에라도 띠우면, 어찌다가 부모님이라도 제 뒤를 밟아 나오시면, 어머님께서 잠시 제가 곁에 없어도 아가 달례야, 달례 아기 어디 갔느냐, 하시고 걱정을 하시는걸.”하고 깜짝 놀라는 양을 보이면서, “아이, 지금 부르는 소리 아니 들렸습니까?”하고 김랑은 조신의 등뒤에 몸을 숨기며 두 손으로 조신의 어깨를 꼭 잡는다. 조신의 귀에는 김랑의 뜨거운 입김과 쌔근쌔근하는 가쁜 숨소리가 감각된다. 조신은 사지를 가눌 수가 없는 듯함을 느낀다.

“아, 물결 소리로군. 오, 또 늙은 소나무에 바람 불어 지나가는 소리.”하고 달례는 조신의 등에서 떨어져서 앞에 나서며, “자, 시님, 저를 데리고 가셔요.”하고 조신의 큰 손을 잡을 듯하다가 만다.

“어디로?”하고 조신은 일종의 무서움을 느낀다.

“어디로든지, 시님과 저와 단둘이서 살 데로.”

“정말입니까?”

“그럼, 정말 아니면 어떡허게요. 자, 어서어서 그 가사와 장삼을 벗으셔요. 중도 장가듭니까? 자, 어서어서. 누구 보리다.”

조신은 가사를 벗으려 하다가 잠깐 주저하고는 관세음보살상을 향하여 합장 재배하고, “고맙습니다. 관세음보살님 고맙습니다. 제자의 소원을 일러 주시오니 고맙습니다.”하고는 가사와 장삼을 홰홰 벗어서 마룻바닥에 내어 던지고 앞서서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