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없는 동해 바다. 맑고 푸른 동해 바다. 낙산사(洛山寺) 앞바다.

늦은 봄의 고요한 새벽 어두움이 문득 깨어지고 오늘은 구름도 없어 붉은 해가 푸른 물에서 쑥 솟아오르자 끝없는 동해 바다는 황금 빛으로 변한다. 늠실늠실하는 끝없는 황금 바다.

깎아 세운 듯한 절벽이 불그스레하게 물이 든다. 움직이지도 않는 바위틈의 철쭉꽃 포기들과 관세음보살을 모신 낙산사 법당 기와도 황금 빛으로 변한다.

“나무 관세음 나무 대자 대비 관세음보살.” 하는 염불 소리, 목탁 소리도 해가 돋자 끊어진다. 아침 예불이 끝난 것이다.

조신(調信)은 평목(平木)과 함께 싸리비를 들고 문 밖으로 나와 문전 길을 쓸기를 시작한다. 길의 흙은 밤이슬에 촉촉이 젖었다. 싸악싸악, 쓰윽쓰윽하는 비질 소리가 들린다.

조신과 평목이 앞 동구까지 쓸어갈 때에 노장 용선 화상(龍船和尙) 이 구부러진 길다란 지팡이를 끌고 대문으로 나온다.

“저, 앞 동구까지 잘 쓸어라. 한눈 팔지 말고 깨끗이 쓸어. 너희 마음에 묻은 티끌을 닦아버리듯이.”하고 용선 노장이 큰소리로 외친다.

“네.”하고 조신과 평목은 뒤도 돌아보지 아니하고 더 재게 비를 놀린다.

“오늘은 태수 행차가 오신다고 하였으니, 각별히 잘 쓸렸다.”하고 노장은 산문 안으로 들어온다.

태수 행차라는 말에 조신은 비를 땅바닥에 떨어뜨리고 허리를 편다.

“왜 이래? 벌이가 쏘았어? 못난 짓도 퍽도 하네.”하고 평목이가 비로 조신의 엉덩이를 갈긴다.

조신은 말없이 떨어진 비를 다시 집어 든다.

“태수가 온다는데 왜 이렇게 놀라? 무슨 죄를 지었어?”하고 평목은 그 가느스름한 여자다운 눈에 눈웃음을 치면서 조신을 바라본다. 평목은 미남자였다.

“죄는 내가 무슨 죄를 지었어?”하고 조신은 비질을 하면서 툭 쏜다. 평목과는 정반대로 조신은 못생긴 사내였다. 낯빛은 검푸르고, 게다가 상판이니 눈이니 코니 모두 찌그러지고 고개도 비뚜름하고 어깨도 바른편은 올라가고 왼편은 축 처져서 걸음을 걸을 때면 모으로 가는 듯하게 보였다.

“네 마음이 비뚤어졌으니까 몸뚱이가 저렇게 비뚤어진 것이다. 마음을 바로잡아야 내생에 바른 몸을 타고 나는 것이다.”용선은 조신에게 이렇게 훈계하였다.

“죄를 안 지었으면 원님 나온다는데 왜 질겁을 해? 세달사 농장(世達社農莊)에 있을 적에 네가 아마 협잡을 많이 하여먹었거나, 뉘 유부녀라도 겁간을 한 모양이야. 어때, 내님이 꼭 알아 맞췄지? 그렇지 않고야 김 태수 불공 온다는데 왜 빗자루를 땅에 떨어뜨리느냐 말야? 내 어째 수상쩍게 생각했다니. 세달사 농장을 맡아보면 큰 수가 나는 자린데 왜 그것을 내어버리고 낙산사에를 들어와서 이 고생을 하느냐 말야? 어때, 내 말이 맞았지? 똑바로 참회를 해요.”하고 평목은 비질하기도 잊고 조신의 앞을 줄러걸으며 잔소리를 한다.

“어서 길이나 쓸어요, 괘니시리 노스님 보시면 경치지 말고.” 조신은 이렇게 한마디, 평목을 핀잔을 주고는 여전히 길을 쓴다. 평목의 말이 듣기 싫다는 듯이 쓰윽 싸악하는 소리를 더 높이 낸다.

평목은 그래도 비를 든 채로 한 걸음 앞서서 뒷걸음을 치면서 말을 건다.

“이봐 조신이, 오늘 보란 말야.”

“무얼 보아?”

“원님의 따님이 아주 어여쁘단 말야? 관세음보살님같이 어여쁘단 말야. 작년에도 춘추로 두 번 불공 드리러 왔는데 말야, 그 아가씨가 참 꽃송이란 말야, 꽃송이. 아유우, 넨정.”하고 평목은 음탕한 몸짓을 한다.

평목의 말에 조신은 더욱 견딜 수 없는 듯이 빨리빨리 비질을 한다. 그러나 조신의 비는 쓴 자리를 또 쓸기도 하고 껑충껑충 뛰어넘기도 하고 허둥허둥하였다.

그럴 밖에 없었다. 조신이가 세달사의 중으로서 명주 날리군(溟州捺李郡)에 있는 세달사 농장에 와 있은 지 삼년에 그 편하고 좋은 자리를 버리고 낙산사에 들어온 것이 바로 이 김 태수 흔공(金太守昕公)의 딸 달례(月禮) 때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