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신이 달례를 처음 본 것이 바로 작년 이맘때였다.

철쭉꽃 활짝 핀 어느날 조신이 고을 뒤 거북재라는 산에 올랐을 때에 마침 태수 김 흔공이 가솔을 데리고 꽃놀이를 나와 있었다. 때는 석양인데 달례가 시녀 하나를 데리고 단둘이서 맑은 시내를 따라서 골짜기로 더듬어 오르는 길에 석벽 위에 매어 달린 듯이 탐스럽게 핀 철쭉 한 포기를 바라보고, “저것을 꺾어다가 병석에 누우셔서 오늘 꽃구경도 못 나오신 어머님께 드렸으면.”하고 차마 그곳을 그대로 지나가지 못하고 방황할 때에 만난 것이 조신이었다.

무심코 골짜기로 내려오던 조신도 하늘에서 내려온 듯한 달례를 보고는 황홀하게 우뚝 섰다. 제가 불도를 닦는 중인 것도 잊어버렸다. 제가 어떻게나 못생긴 사내인 것도 잊어버렸다. 그러고는 염치도 없이 달례를 물끄러미 바라보고는 언제까지나 한자리에 서 있었다. 마치 그의 눈과 몸이 다 굳어진 것과 같았다.

갑자기 조신을 만난 달례도 놀랐다. 한 걸음 뒤로 멈칫 물러서지 아니할 수 없었으나, 다시 보매 중인지라 안심한 듯이 조신을 향하여 합장하였다. 그의 얼굴에는 역시 처녀다운 부끄러움이 있었다.

달례가 합장하는 것을 보고야 조신은 굳은 몸이 풀리고 얼었던 정신이 녹아서 위의를 갖추어 합장으로 답례를 하였다.

‘그렇기로, 저렇게 아름다운 여자가 어떻게 세상에 있을까?’

조신은 속으로 중얼거리면서, 이 자리에 오래 있는 것이 - 젊고 아름다운 처녀의 곁에서 그 고운 얼굴을 바라보고, 그 그윽한 향기를 맡는 것이 옳지 아니한 줄을 생각하고는 다시 합장하고 허리를 굽히고 달례의 등뒤를 지나서 내려가는 걸음을 빨리 걸었다. 그러나 조신의 다리에는 힘이 없어서 어디를 어떻게 디디는지를 몰랐다.

달례는 조신의 이러하는 모양을 보다가 방그레 웃으며 시녀더러, “얘, 저 시님 잠깐만 여쭈어라.” 하였다.

“시님! 시님!”하고 수십 보나 내려간 조신의 뒤를 시녀가 부르면서 따랐다.

“네.”하고 조신은 걸음을 멈추고 돌아섰다.

시녀는 조신의 앞에 가까이 가서 눈으로 달례를 가리키며, “작은아씨께서 시님 잠깐만 오십사고 여짜옵니다.” 하였다.

“작은아씨께서? 소승을?”하고 조신은 시녀가 가리키는 편을 바라보았다. 거기는 분홍 긴 옷을 입은 한 분 선녀가 서 있었다. 좀 새뜨게 바라보는 모양이 더욱 아름다와서 인간 사람 같지는 아니하였다.

조신은 시녀의 뒤를 따랐다.

“어느 댁 아가씨시오?”하고 조신은 부질없는 말인 줄 알면서 묻고는 혼자 부끄러웠다.

“이 고을 사또님 따님이시오.” 시녀는 이렇게 대답하였다.

‘그러나 하길래.’하고 조신은 속으로 중얼거렸다. 이 고을 사또 김 흔공은 신라의 진골(왕족)이었다.

“아가씨께서 소승을 불러 겨시오?”하고 조신은 달례의 앞에서 합장하였다.

“시님을 여쪼와서 죄송합니다.”하고 달례는 방긋 웃었다.

조신은 숨이 막힐 듯함을 느꼈다. 석벽 밑 맑은 시냇가 바위를 등지고 선 달례의 자태는 비길 데가 없이 아름다왔다. 부드러운 바람이 그 가벼운 분홍 옷자락을 펄렁거릴 때마다 사람을 어리게 하는 향기가 풍기는 것 같았다. 그 검은 머리는 봄날 볕에 칠같이 빛났다.

“미안하오나 저 석벽에 핀 철쭉을 꺽어줍시오.”
달례의 붉은 입술이 움직일 때에 옥같이 흰 이빨이 빛났다.

조신은 달례가 가리키는 석벽을 바라보았다. 네 길은 될 듯한 곳에 한 포기 철쭉이 참으로 탐스럽게 피어 있었다. 그러나 거기를 올라가기는 여간 힘드는 일이 아닐 것 같았다. 산을 타는 자신이 있는 사람이 아니면 엄두도 내기 어려울 듯하였다.

“그 꽃은 꺾어서 무엇 하시랴오?” 조신은 이렇게 물어보았다. 물론 조신은 그 석벽에 기어오르다가 뼈가 부서져 죽더라도 올라갈 결심을 하였다.

“어머니께서 병환으로 꽃구경을 못하시와서, 꼭 저 꽃을 꺾어다가 어머니께 드렸으면 좋을 것 같아서.” 달례는 수줍은 듯이 그러나 낭랑한 음성으로 이렇게 말하였다.

조신은, “효성이 지극하시오. 그러면 소승이 꺾어보오리다.”하고 조신은 갓과 장삼을 벗어서 바위에 놓으려는 것을 달례가 받아서 한 팔에 걸었다.

조신은 어떻게 그 험한 석벽에를 올라가서 어떻게 그 철쭉꽃을 꺾었는지 모른다. 그것은 꿈속과 같았다. 한아름 꽃을 안고 달례의 앞에 섰을 때에 비로소 정신을 차릴 수가 있었다.

“황송도 하여라.”하고 달례는 한 팔을 내밀어 조신의 손에서 꽃을 받아안고 한 팔에 걸었던 장삼을 조신에게 주었다.

이 일이 있은 뒤로부터 조신의 눈앞에서는 달례 모양이 떠나지를 아니하였다. 깨어서는 달례를 생각하고 잠들어서는 달례를 꿈꾸었다.

그러나 그것은 이루지 못할 일이었다. 달례와 백년해로를 하기는커녕, 다시 한번 달례를 대하여서 말 한마디를 붙여보기도 하늘에 별 따기와 같은 일이었다.

조신은 멀리 달례가 들어 있을 태수의 내아 쪽을 바라보았다. 깊이깊이 수림과 담속에 있어서 그 지붕까지 잘 보이지 아니하였다. 나는 제비밖에는 통할 수 없는 저 깊은 속에 달례가 있는 것이다. 그러다가 언제나 벼슬이 갈리면 달례는 그 아버지를 따라서 서울로 가버릴 것이다. 달례가 서울로 가면 조신도 서울로 따라갈 수는 있지마는, 서울에 간 뒤에는 여기서보다도 더 깊이 김랑은 숨어서 영영 대할 길이 없을 것이다.

이런 일을 생각하면 조신은 몸둘 곳이 없도록 괴로왔다. 조신은 밥맛을 잃었다. 잠을 잃었다. 그의 기름은 바짝바짝 말랐다. 그는 마침내 병이 될 지경이었다.

‘나는 중이다. 불도를 닦는 사람이다.’ 이러한 생각으로 조신은 눈앞에 알른거리는 달례의 그림자를 물리쳐보려고도 애를 썼다. 그러나 그것은 안될 일이었다. 물리치려면 더 가까이 오고 잊으려면 더 또렷이 김랑의 모양이 나타났다.

마음으로 싸우다 싸우다 못한 끝에 조신은 마침내 낙산사에 용선 대사를 찾았다.

조신은 대사에게 모든것을 참회한 뒤에, “시님, 소승은 어찌하면 좋습니까?”하고 물었다.

이에 대하여 용선 화상은 조신을 바라보고 그 깊은 눈썹 속에 빛나는 눈으로 빙그레 웃으면서, “네 그 찌그러진 얼굴을 보고 달례가 너를 따르겠느냐?”하고는 턱춤을 추이면서 소리를 내어서 웃었다.

조신은 욕과 부끄러움과 슬픔과 절망을 한데 느끼면서, “그러기에 말씀입니다. 그러니 소승이 어찌하면 좋습니까?”하고 애원하였다.

“네 상판대기부터 고쳐라.”

“어떡하면 이 업보로 타고 난 상판대기를 고칠 수가 있습니까?”

“관세음보살을 염하여라.”

“관세음보살을 염하면 이 상판대기가 고쳐지겠습니까? 이 검은 빛이 희어지고 이 찌그러진 것이 바로잡히겠습니까?”

“그렇고말고. 그보다 더한 것도 된다. 달례보다 더한 미인도 너를 사모하고 따라올 것이다.”

용선 화상의 이 말에 힘을 얻어서 조신은, “시님, 소승은 관세음보살을 모시겠습니다. 소승이 힘이 없사오니 시님께서 도력으로 소승을 가지加持 해줍시오.”하고는 지금까지 관세음보살을 염하여온 것이었다.

그런데 이제 달례가 온다. 그 부모를 모시고 불공을 드리러 오는 것이다. 조신의 가슴은 정신을 진정할 수가 없이 울렁거렸다.

길을 다 쓸고 나서 조신은 용선 화상께 갔다.

“시님, 소승은 어찌하면 좋습니까?”하고 조신은 정성스럽게 용선께 물었다.

“무엇을? 무엇을 어찌한단 말이냐?”하고 노장은 시치미를 떼었다.

“아뢰옵기 황송하오나, 김 태수가 오신다면 그 따님도 오실 모양이니……”

“오, 그말이냐? 그저 관세음보살을 염하려무나.”하고 용선 대사는 뚫어지게 조신을 바라보았다.

“소승은 지금도 이렇게 가슴이 울렁거립니다.”


“응, 있다가는 더 울렁거릴 터이지.”

“그러면 소승은 어찌하면 좋습니까?”

“관세음보살을 염하려무나.”

“시님, 소승의 소원이 꼭 이루어지겠습니까?”

“관세음보살을 염하려무나.”

“나무 대자 대비 관세음보살 마하살.”하고 조신은 당장에서 합장하고 큰소리로 관세음보살을 부른다.

용선은 물끄러미 조신이 하는 양을 보다가 조신을 향하여서 한번 합장한다. 대사는 관세음보살을 일심으로 염하는 조신의 속에 관세음보살을 뵈온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