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려쏘기 시작하는 아침 햇빛은 순식간에 골짜기까지 내려왔다. 하늘에 닿는 듯한 소나무 잣나무 사이로 금 화살 같은 볕이 쭉쭉 내려쏘아서 풀잎에 이슬 방울들이 모두 영롱하게 빛나고 시냇물 소리도 햇빛을 받아서는 더 요란한 것 같았다.

“우수수.”

“돌돌돌돌.”하는 수풀에 지나가는 바람 소리와 돌 위에 흘러가는 냇물 소리에 섞여서 뻐꾹새와 꾀꼬리와 산새들의 소리가 들리기 시작하였다.

김랑은 작은 바위 위에 걸터앉아서 조신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그 눈은 다정한 미소가 있으나, 그래도 피곤한 빛은 가리울 수가 없었다. 밤새도록 걸음을 걸었으니 배도 고팠다.

“이제 어디로 가요?”하고 김랑은 어디를 보아도 나무뿐인 골짜기를 휘 둘러보았다.

“글쎄, 어디 좀 쉬일 만한 데를 찾아야겠는데, 저 굽이만 돌면 좀 평평한 데가 있을 것도 같은데.”하고 조신은 적은 폭포라고 할 만한 굽이를 가리켰다.

조신의 등에 척척 달라붙은 저고리가 선뜩선뜩하였다.

“좀더 올라갑시다. 어디 의지할 데가 있어야 쉬이지 않아요?”하고 조신은 깨끗한 굴 같은 것을 생각하였다. 혹은 삼꾼이나 사냥꾼의 막 같은 것을 생각하였다. 그런 것이 있을 것만 같았다. 그러한 데를 찾아서 깨끗이 치워놓고 김랑을 쉬이게 하고 또 둘이서 한자리에 쉬이는 기쁨을 상상하였다. 그것은 아무도 볼 수 없는 데, 햇빛도 바람결도 볼 수 없는 데이기를 바랐다. 조신과 김랑과 단둘이만 있는 데이기를 조신은 바라면서 김랑을 두리쳐 업고 또 걷기를 시작하였다.

골짜기가 갑자기 좁아지고 물소리는 더욱 커졌다. 물문이라고 할 만한 좌우 석벽에는 철쭉이 만발하여 있었다.

그 목을 넘어가서는 조신이가 상상한 대로 둥그스름하게 평평하게 된 벌판이라고 할 만한 것이 나섰다. 그 벌판에는 잡목이 있었다.

“아이, 저 철쭉 보아요.”하고 등에 업힌 김랑이 소리를 쳤다.

“응.”하고 조신은 땀방울이 뚝뚝 흐르는 머리를 쳐들었다.

산비둘기 소리가 구슬프게 들렸다.

마침내 조신은 굴 하나를 찾았다. 개천에서 한참 석벽으로 올라가서 굴의 입이 보였다.

“여기 굴이 있다!”하고 조신은 기쁜 소리를 질렀다.

“아가씨, 여기 계시오. 소승이 올라가 있을 만한가 아니한가 보고 오리다.”하고 조신은 김랑을 내려놓고 옷 소매로 이마에 땀을 씻고 석벽을 더듬어서 올라갔다.

조신은 습관적으로, “나무 관세음보살.”을 부르고 그 굴속으로 고개를 쑥 디밀었다. 저 속은 얼마나 깊은지 모르나 사람이 들어가 서고 누울 만한 데도 꽤 넓었다.

‘됐다!’하고 조신은 김랑과의 첫날밤의 즐거운 꿈을 생각하면서 굴에서 나왔다.

“아가씨, 여기 쉬일 만합니다.”하고는 도로 김랑 있는 데로 내려와서 김랑더러 거기 잠깐 앉아 기다리라 하고 개천 저쪽 수풀 속으로 들어가서 싹정 솔가지와 관솔과 마른 풀을 한아름 가지고 왔다.

“불을 때요?”하고 김랑이 묻는다.

“먼저 불을 때야지요. 그래서 그 속에 있던 짐승과 버러지들도 나가고 습기도 없어지고 또 춥지도 않고.”하고 조신은 또 가서 나무와 풀을 두어 번이나 안아다가 굴앞에 놓고 부시를 쳐서 불을 살랐다.

컴컴하던 굴속에는 뻘건 불길이 일어나고 바위틈으로는 연기가 새어나오기 시작하였다.

조신은 나무를 많이 지펴놓고는 김랑 있는 데로 돌아내려와서 김랑을 안고 개천을 건너서 큰 나무 뒤에 숨었다.

“왜 숨으셔요?”하고 김랑은 의심스러운 듯이 조신을 쳐다본다.

“짐승이 나오는 수가 있습니다.”

“굴속에서?”

“네, 굴은 짐승들의 집이니까.”

“무슨 짐승이 나와요?”

“보아야 알지요, 곰이 나올는지 너구리가 나올는지 구렁이가 나올는지.”

“에그, 무서워라!”

“불을 때면 다 달아나고 맙니다.”

“시님은 굴에서 여러 번 자보셨어요?”

“중이나 화랑이나 삼메꾼이나 사냥꾼이나 굴잠 아니 자본 사람 어디 있어요?”

이때에 굴속으로서 시커먼 곰 한 마리가 튀어나와서 두리번거리다가 뒷산으로 달아 올라가는 것이 보였다.

“곰의 굴이로군.”하고 조신은 김랑을 돌아보고 빙그레 웃었다.

“그게 곰이오?”하고 김랑은 조신의 팔에 매어달린다.

“아가씨는 곰을 처음 보시오?”

“그럼, 말만 들었지.”

“가만히 보고 계시오, 또 나올 테니.”

“또?”

“그럼, 지금 나온 놈이 수놈이면 암놈이 또 나올 거 아니오? 새끼들도 있는지 모르지.”

“가엾어라. 그러면 그 곰들은 어디 가서 사오?”

“무어, 우리 둘이 오늘 하루만 빌어 있는 것인데. 우리들이 가면 또 들어와 살겠지요.”

“이크, 또 나오네!”하고 김랑은 등을 조신의 가슴에 딱 붙이고 안긴다. 또 한 곰이 새끼들을 데리고 나와서 또 두리번거리다가 아까 나간 놈의 발자국을 봄인지 그 방향으로 따라 올라갔다.

“인제 다 나왔군. 버러지들도 다 달아났을 것이오.”하고 조신은 김랑을 한번 꽉 껴안아본다. 조신의 목에 걸린 염주가 흔들린다.

조신은 굴 아궁이에 불을 한 거듭 더 집어넣고 또 개천 건너로 가서 얼마를 있더니 칡뿌리와 먹는 풀뿌리들과 송순 많이 달린 애소나무 가장구를 꺾어서 안고 돌아왔다.

“자, 무얼 좀 먹어야지. 이걸 잡수어보시오.”하고 먼저 송기를 벗겨서 김랑에게 주고 저도 먹었다. 송기는 물이 많고 연하였다.

“맛나요.”하고 김랑은 송기를 씹고 송기 벗긴 솔가지를 빨아먹었다.

“송기는 밥이구 송순은 반찬이오. 이것만 먹고도 며칠은 삽니다.”

둘이서는 한참 동안이나 송기와 송순을 먹었다.

“자, 칡뿌리. 이것도 산에 댕기는 사람은 밥 대신 먹는 것이오. 자, 이게 연하고 달 것 같습니다. 응, 응, 씹어서 물을 빨아먹는 건데, 연하거든 삼켜도 좋아요.”하고 조신은 그중 살지고 연할 듯한 칡뿌리를 물에 씻어서 김랑을 주었다.

김랑은 조신이가 주는 대로 칡뿌리를 받아서 씹는다. 조신도 먹는다. 그것들이 모두 별미였다. 곁에 김랑이 있으니, 바윗돌을 먹어도 맛이 있을 것 같았다.

얼마쯤 먹은 뒤에 조신은 지나가는 사람이 있더라도 자취를 아니 보일 양으로 나머지를 묶어서 큰 나무 뒤에 감추어버렸다. 그리고는 물을 많이 마시고, 조신은, “자, 인제 올라가 굴속에서 쉬입시다. 그리고 다리 아픈 것이 낫거든 길로 내려갑시다.”하고 김랑의 손을 잡아서 끌고 굴 있는 데로 올라갔다. 불은 거의 다 타고 향긋한 냄새가 나품길 뿐이었다.

조신은 타다 남은 불을 굴 가장자리로 모아서 화로처럼 만들어 놓고 솔가지로 바닥에 재를 쓸어내고 그 위에 마른 풀을 깔았다.

“자, 아가씨 들어오셔요.”하고 조신은 제가 먼저 허리를 굽혀서 굴속으로 들어갔다.

굴속은 후끈하였다.

김랑은 잠시 주저하는 듯하더니 조신의 뒤를 따라서 굴속에 들어갔다.

“지금 이 굴속에는 즘생 하나, 버러지 하나 없으니, 마음놓으시오.”하고 조신은 기름한 돌을 마른 풀로 싸서 베개까지도 만들어서 김랑에게 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