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어머니는 이 일로 더 이상 소란을 피우기 싫은 모양이었다. 어머니는 나를 이렇게 달랬다.
"하지만 마리 누나는 마음이 착하단다. 네가 공부라고는 거들떠보지도 않고, 선생님에게 버릇없이 굴고 하는 걸 보고 내가 속이 상하리라는 걸 잘 알고 있기 때문에 그러는 거야."
"그렇지만 우리 담임 선생 빈딩거는 항상 수염에 달걀 노른자를 묻히고 다닌다구요. 그건 누가 뭐래도 사실이에요."
"루드비히야, 빈딩거 선생은 아주 점잖고 예의 바른 사람이더라. 장래가 아주 유망한 그런 사람이야. 그리고 마리한테도 아주 친절하게 대해 주지. 그 사람이 마리한테 너 때문에 얼마나 걱정이 많으냐고 그러더래. 그러니까 너는 아무 말 않고 잠자코 있는 게 좋을 것 같다."
그래서 나도 더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우리 누나한테 나를 고자질하다니, 그 작자는 도대체 어떻게 생겨먹은 녀석일까? 나는 그 빈딩거라는 자가 도무지 정상이란 생각이 들지 않았다.
그 날 수업 시간에 빈딩거가 또 나를 지명해 문제를 풀라고 시켰다. 나는 그 날도 역시 예습을 해 가지 않았기 때문에 빈딩거가 묻는 것에 제대로 대답을 할 수 없었다.
"야, 이 자식아, 너는 왜 또 예습을 안 해온 거냐?"
나는 처음에 빈딩거에게 무어라고 대답해야 할지 잘 알 수가 없어서 어물어물했다. 그러다가 결국 이렇게 대답해 버리고 말았다.
"어제는 집안에 사정이 생겨서 도저히 예습을 할 수가 없었습니다."
"집안 사정 때문에 예습을 못했다니? 이건 또 무슨 말도 안 되는 수작이냐!"
"어제는 읍내 무도회 때문에 하루 종일 집안이 온통 떠들썩했거든요. 옷을 가져와야 할 재봉사는 시간이 다 되도록 오지를 않지, 그 옷을 입을 사람은 옷이 안 온다고 울고불고 난리를 피우고... 결국은 제가 부랴부랴 그 옷을 찾으러 옷가게에까지 가야 했습니다. 그리고 저는 그 옷을 찾아 가지고 뛰어오다가 넘어져서 발목까지 다쳤어요. 그래서 그걸 치료하느라고 예습은 엄두도 낼 수가 없었어요."
그는 당연히 내 말을 믿지 않았겠지만, 그렇다고 내 말이 사실이 아니라는 것을 증명할 방법도 없었다. 그래서 그런지 그는 나에게 아무 욕도 하지 않고 그냥 놓아 주었다.
그 후 며칠이 지나서였다. 내가 학교에서 돌아오자, 거실 소파에 앉아 있던 마리 누나가 나를 보고 고래고래 고함을 질러댔다. 나는 처음엔 마리 누나가 도대체 뭐라고 고함을 지르는지조차 알아 들을 수 없었다. 어머니가 옆에서 누나를 뜯어 말렸다.
"이제 그만해 두어라, 마리야. 좀 조용히 하렴."
"저 개망나니 자식은 기를 쓰고 나를 불행하게 만들려고 저렇게 난리잖아요!"
나는 아직도 도대체 뭐가 뭔지 알 수가 없었다. 그래서 도대체 무엇 때문에 그러느냐고 물어 보지 않을 수 없었다.
"이거 도대체 무엇 때문에 그렇게 동네방네 떠나가도록 소리를 지르고 야단이야 응, 누나? 도대체 뭐 못 먹을 거라도 먹은 거야?"
그러자 이번에는 어머니까지도 몹시 화를 냈다. 나는 이제까지 어머니가 그렇게 무섭게 화를 내는 것을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다.
"이 녀석아! 네가 도대체 뭘 잘했다고 그렇게 입을 놀리는 거야? 네가 그 동안 누나한테 한 짓은 무엇으로도 변명할 수가 없어! 이 녀석아! 공부 안 한 것만 가지고도 부족해서 거기에다 누나 핑계를 대? 뭐, 어째? 누나 옷 심부름 때문에 재봉사한테 가다가 미끄러져서 발을 삐었다고? 이 녀석아, 그래 놓았으니 빈딩거 선생님이 우리 집을 도대체 무어라고 생각하겠니? 무도회 때문에 온 집안이 발칵 뒤집히고 온통 벌집 쑤셔 놓는, 그런 지체 없는 집으로 밖에 더 생각하겠니? 이 망나니 같은 녀석아!"
"그 사람은 우리 집 식구들이 모두 거짓말만 한다고 생각할 거에요. 나까지도 집어넣어서 말이에요!"
마리 누나는 또 한 번 이렇게 찢어지라고 소리를 지르더니 젖은 손수건으로 눈을 눌렀다. 그렇게 해야 울어도 눈이 붓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내가 그들 사이에 끼어 있으면 도무지 그들의 화가 가라앉지 않을 것을 나는 잘 알 수 있었다. 그래서 나는 더 이상 망설이지 않고 즉각 밖으로 나갔다. 그리고 저녁 식사도 내 방에서 먹었다. 이 일이 있었던 것은 금요일이었다. 그런데 다음 일요일에 어머니가 갑자기 내 방으로 건너오셨다. 그러더니 아주 정다운 목소리로 내게 함께 거실로 나가자고 했다. 나는 무슨 일인지 도무지 영문을 알 수 없었지만 그래도 어머니를 따라서 거실로 갔다.
거실에는 빈딩거가 서 있었다. 마리가 그에게 기댄 체 다소곳이 서 있었다. 그러다가 내가 들어가자 곁눈으로 무섭게 흘겨 보았다. 어머니는 나를 그들 앞으로 끌고 가시더니 말씀하시는 것이었다.
"루드비히야, 이제 네 누나 마리가 너의 담임 선생님 부인이 되게 되었단다."
그러더니 어머니는 갑자기 손수건을 꺼내 들고 울었다. 마리도 따라서 울었다. 빈딩거는 내 앞으로 와서 손을 내 머리에 얹더니 말했다.
"이제 우리 다 같이 힘을 모아서 이 아이가 사회에 유용한 그런 사람이 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하겠습니다."
그 목소리는 그가 학교에서 역사 시간에 우리들의 옛 선조 이야기를 할 때면 항상 끄집어 내는 그 굵은 목소리였다. 이 목소리를 이젠 우리 집에서까지 들어야 하다니! 이런 엿 같은 경우가 어디 있단 말인가!
악동 일기 (2) - 누나의 약혼(2)
- 세부
- 주동식에 의해 작성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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