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 날, 우리는 다시 젬멜마이어의 집으로 갔다. 어머니가 그 부인에게 다시 말했다.

"이제 이 아이를 부인의 손에 맡기겠어요. 빨래는 꼭꼭 모았다가 저희 집으로 보내 주세요."

젬멜마이어에게는 또 이렇게 말했다.

"저는 대위님 덕분에 여러 가지 희망을 갖게 되었습니다."

젬멜마이어는 어머니에게 손을 내밀고 천장을 한 번 쳐다보더니 이렇게 말했다.

"저는 인간의 힘이 자라는 데까지는 노력할 것입니다. 하지만, 그보다 하나님의 은총이 필요합니다."

어머니는 그 집을 떠나갈 때 울었다. 어머니는 내게 키스를 해주고서 층계로 나갔다. 그러더니 다시 돌아서서 젬멜마이어에게 말했다.

"저는 이 아이가 마음을 바로잡을 것으로 믿고 있습니다. 기쁜 마음으로 돌아가겠습니다."

그 때에 나는 집 생각이 간절해졌다. 내가 그 동안 집에서 열심히 공부하였더라면, 지금 이렇게 남의 집에 있게 되지는 않았을 텐데... 이렇게 생각한 것이다.

내가 혼자 남아 있게 되자 그 부인은 갑자기 태도가 거칠어졌다. 그 여자는 나를 어느 방으로 안내하였다. 그 방은 창문이 복도 쪽으로 단 하나 나 있을 뿐이어서 그 전날 본 방처럼 밝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어제 우리가 본 방에 있고 싶다고 말했다. 그러자 그 부인이 말했다.

"그 방은 앞으로 오는 백작이 쓰게 될 거야. 그러니까 너는 지금 이 방에 있어야 한단다. 나중에 다른 방을 쓰도록 해 줄 거야."

나는 너무 속이 상해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나는 짐을 풀고 내가 항상 입고 다니던 옷을 바라보았다. 그 옷들이 갑자기 너무나 아름답게 보여서 나는 식사를 하러 갈 때까지 방 안에서 마냥 울었다. 식사를 같이 하는 아이들은 셋이었고, 젬멜마이어 부부도 그 자리에 함께 있었다. 젬멜마이어는 이렇게 말했다.

"하나님께서 이 음식에 복을 내려 주시도록 다들 일어나서 기도하자."

그러나 그 음식이란 것이 기껏 우유에 쌀을 섞어 끓인 죽이었다. 나는 그런 음식을 좋아하지 않는다. 나는 도대체 다른 아이들 꼴은 어떻게 생겼나 궁금해져서 그들을 유심히 쳐다보았다.

그 아이들 중 하나는 빨간 머리에 주근깨가 있었고, 내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 아이 이름은 벤더린이라고 했다. 또 다른 아이는 머리카락이 찰싹 늘어붙어 있었고 마룻바닥만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 아이는 알폰스였다. 그 아이도 역시 내 마음에 들지 않았다. 또 다른 아이가 하나 있었는데, 그 아이는 재미있다는 듯이 나를 빤히 쳐다보고 있었다. 그 아이가 막스였다.

나는 내 힘으로 그 아이들을 붙잡아 내동댕이칠 수 있을 것인지 마음 속으로 저울질해 보았다. 벤더린이나 알폰스 따위를 땅 바닥에 내동댕이치는 것쯤은 별로 어렵지 않으리라는 것을 금방 알 수 있었다. 그러나 막스는 나만큼이나 덩치도 크고 힘도 세어 보였다.

젬멜마이어는 이렇게 말했다.

"너는 이제 이 훈육소의 신입생이니까 다른 아이들에게도 소개하겠다. 다른 아이들은 이 아이에게 좋은 본보기가 되도록 특별히 주의해야 한다. 그리고 너는 새로 왔으니까 좋은 본보기만 잘 보고 따라야 한다."

그 부인도 나서서 내게 이렇게 말했다.

"그렇게 쌀 죽을 휘젓기만 하지 말고 잘 먹어야 한단다. 그렇지 않으면 너는 편식하는 버릇을 고치지 못하게 될 거야."

그래서 나는 말했다.

"저는 쌀을 전혀 좋아하지 않아요."

그러자 그 부인이 이렇게 대답했다.

"음식을 두고 좋다 나쁘다 말해선 안 된단다. 아이들은 어른이 주는 것을 가리지 않고 잘 받아먹어야 해."

그러자 젬멜마이어도 말을 받았다.

"쌀은 영양분이 무척 많은 음식이다. 아시아에서는 어느 나라에서나 사람들이 모두 쌀을 먹고 산다. 고기를 먹는 백성은 쌀을 먹는 나라 백성들처럼 훌륭한 병사가 되지 못한다."

그러나 그 자는 구운 고기에다 감자를 곁들여 먹고 있었다.

식사 후에 그는 또다시 하나님께 이런 음식을 내려 주셔서 감사하다고 기도를 드렸다. 그러고 나서 그는 방을 나갔다. 그래서 우리들도 잠시 동안 바깥으로 나갈 수 있었다. 나는 아이들과 함께 밖으로 나갔다. 층계에서 막스가 날 보더니 자기와 함께 가자고 말했다. 그래서 나도 그 아이를 따라갔다. 우리는 풀밭으로 함께 걸어가서 벤치에 나란히 앉았다. 막스는 나에게 너희 아버지는 어떤 사람이냐고 물었다. 그래서 나는 이렇게 말했다.

"우리 아버지는 돌아가셨지만 전에는 산림 감독관이었어."

막스도 자기 아버지 이야기를 했다.

"우리 아버지는 군대에서 중위였는데 프랑스군과 싸우다 죽었어."

그 아이가 나를 보고 자기 팔을 굽힐 수 있나 시험해 보라고 말했다. 나는 그렇게 해봤지만 성공하지는 못했다. 그러나 막스도 역시 내 팔을 굽히지는 못했다. 그러자 막스는 앉아 있던 벤치를 뛰어넘더니 나보고 그렇게 흉내를 내 보라고 했다. 나는 그 정도는 쉽사리 뛰어넘었다. 그랬더니 이번에는 물구나무 서서 걸어가 보라는 것이었다. 그래서 나는 수레 바퀴처럼 빙빙 돌아서 앞으로 가는 몸짓을 보여 주었다. 그러자 막스는 내가 마음에 든다고 말하면서 자기를 좀 도와달라고 했다. 그래서 나는 이렇게 말했다.

"나도 네가 마음에 든다. 사실 나는 곧 이렇게 될 것을 짐작했어. 왜냐하면 젬멜마이어 부인이 너하고는 친하게 지내지 말라고 그랬거든."

막스는 내 말에 듣더니 말했다.

"그 여자는 아주 인색하고 야비한 사람이야. 먹을 것이라고는 변변한 것은 하나도 주지 않으면서 오히려 우리들이 먹을 것을 뜯어서 절약을 하려 든단 말이야."

나는 또 이렇게 물었다.

"그 젬멜마이어라는 사람은 좀 어떠니?"

막스가 대답했다.

"젬멜마이어는 정말 바보야. 실상 아이들 걱정이나 돌보는 일은 전혀 하지도 않아. 그러면서도 부모들이 찾아올 때만 마치 자기가 아이들을 교육시키는 것처럼 꾸며댄단 말이야."

그래서 나는 말했다.

"그 사람이 어제 우리 어머니에게 그러던데... 자기 밑에서 교육 받은 사람들이 나중에 장교가 되어 자기를 찾아와서 인사를 한다고 말이야."

막스는 이렇게 말했다.

"그 작자는 언제나 그런 말을 해서 부모들이 그 말에 속아 넘어가는 거야. 하지만 앞으로 2,3 주일만 더 있어 보면 아마 누구나 현기증밖에 안 난다는 걸 알게 될 거야."

그래서 나는 하이스 씨에게서 들은 달팽이 페피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그러자 막스는 배꼽이 빠지도록 웃으며 말했다.

"그 사람 이름이 바로 요셉 젬멜마이어야. 그 사람이 바로 달팽이 페피일 거야. 틀림없어. 그리고 너 알폰스나 벤더린을 조심하지 않으면 안 돼. 그 애들은 들은 이야기를 빼놓지 않고 젬멜마이어에게 모두 고자질한단 말이야. 그래서 우리 둘은 서로 협력하지 않으면 안 된다구. 그걸 알아야 해. 내 마음에 드는 사람이 생겨서 매우 기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