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역시 그렇게 하려고 굳게 마음먹었다. 그러나 그 다음 날은 그 여자 아이가 자기 동무와 함께 있었다. 그래서 또 주지 못했다. 나는 속이 상해서 편지를 라틴어 책 속에 꽂아 두었다. 나는 내가 너무 겁을 집어먹은 것에 대해 스스로 벌을 가하기로 했다. 그 여자에게 말을 걸어 모든 것을 고백한 뒤에 편지를 주겠다고 스스로 맹세를 한 것이다.
라이텔도 나서서 지금 그렇게 해야지, 그렇지 않으면 나는 영원히 못난이로 남을 거라고 했다. 나도 그 점을 인정하고 마음을 단단히 다졌다. 그렇게 마음을 굳힌 것은 공부 시간 중이었다. 마침 라틴어 시간이었다. 나는 선생에게 지명을 당하여, 먼저 읽던 아이의 뒷 부분을 읽어야 했다. 나는 그 여자 아이를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에 먼저 아이가 어디까지 읽었는지, 그리고 지금 몇 과를 배우는지조차 몰랐다. 창피스러워서 얼굴을 붉힐 수밖에... 그런데 선생은 나를 늘 미심쩍게 생각하고 있었으므로 벌써 뭔가 눈치를 채고 나에게 다가왔다.
나는 얼른 책장을 넘기면서 옆의 아이를 툭 걷어차며 물었다.
"이런 빌어먹을... 야, 어디 읽을 참이냐?"
그러나 그 바보 같은 놈이 너무 작은 소리로 말을 했기 때문에 나는 잘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선생은 벌써 내 자리 바로 옆에 와서 서 있었다. 그 때 갑자기 편지가 책갈피 속에서 빠져 나와 마룻바닥에 떨어져 버렸다. 봉투의 색깔은 분홍색이었다. 그래서 그것은 예사롭게 보이지 않았다. 대뜸 들킬 수밖에...
나는 얼른 편지를 발로 밟으려고 했지만, 선생이 먼저 허리를 굽혀 주워올리고 말았다. 더구나 편지엔 프란쯔가 가져온 향수도 몇 방울 뿌렸기 때문에 냄새까지 요란했다. 그것을 집어든 선생의 두 눈이 쑥 튀어나오는 것 같았다. 마치 가위로 잘라낼 수 있을 만큼... 선생은 우선 냄새부터 맡아 보았다. 그가 맡으라고 뿌린 향수가 결코 아닌데도 말이다...
그러고 나서 그는 나를 아래위로 훑어보았다. 그러더니 천천히 봉투를 뜯고, 편지를 끄집어냈다. 그런 후 다시 한 번 나를 훑어보았다. 꼬투리를 잡았다고 좋아하는 그 꼴이라니...!
그는 큰 소리로 편지를 읽기 시작했다.
"충심으로 친애하는 아가씨, 저는 진작부터 아가씨와 친하게 사귀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제가 말을 걸면 아가씨를 괴롭히게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감히 그렇게 하지 못하고, 이렇게 먼저 글월로 제 마음을 전합니다..."
손수건 이야기가 나오는 대목에 이르자 그는 입안에서 웅얼거리는 식으로 편지를 읽었다. 그래서 다른 아이들은 그게 무슨 얘기인지 알아듣지 못했다. 그런 것을 그나마 불행 중 다행이라고 하는 것인지 모르겠다. 그는 편지를 다 읽고 나더니 한동안 입을 꾹 다문 채 고개만 천천히 끄덕였다. 그러더니 이윽고 입을 열었다.
"이 한심한 자식아, 이제 집으로 돌아가 기다려라. 자세한 이야기는 앞으로 듣게 될 테니."
나는 그때 책을 벽에다 집어 던지고 싶을 정도로 화가 났다. 나는 그만큼 바보였다. 그러나 다음 순간, 나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을 수도 있다는 생각을 했다. 편지에는 내가 그저 어떤 아가씨에게 반했다는 것 외에 다른 나쁜 내용은 전혀 씌어있지 않았으니까. 그리고 내가 누구에게 반했든 말든 그건 선생과는 아무 상관도 없는 일 아닌가.
그러나 사태는 점점 고약하게 흘러갔다.
다음 날, 나는 즉시 교장 선생에게 불려갔다. 그는 커다란 장부를 펼치더니 내가 말하는 것을 거기에다 빠짐없이 적어 넣었다. 그는 우선 그 편지를 누구에게 쓴 것이냐고 물었다. 나는 그 편지가 누구를 대상으로 정하고 쓴 것이 아니라, 그저 장난 삼아 한 번 써본 것일 뿐이라고 말했다. 다행히 나는 받는 사람의 이름은 편지 어느 구석에도 써 넣지 않았던 것이다.
그러나 교장은 새빨간 거짓말이라고 고함을 질렀다. 그렇게 말하는 것은 내가 아주 몹쓸 놈일 뿐만 아니라 비겁하기도 한 행동이라는 것이었다. 나는 화가 나서 도대체 그 편지에 씌어 있는 어느 부분이 그렇게 몹쓸 내용이냐고 대들었다. 교장은 못된 처녀 아이들에게 편지를 쓰는 것부터가 망나니 짓이라고 떠들었다.
여기서 그만 나는 덫에 걸리고 말았다. 상대방 처녀는 결코 못된 처녀가 아니고, 얌전한 처녀라고, 그만 내 입으로 비밀을 폭로하고 만 것이다. 그러자 교장은 히죽 웃었다. 그러면서, 그 참한 처녀 아이가 도대체 누구냐고 물었다.
나는 입을 다물고 대답하지 않았다. 그는 자꾸 처녀의 이름을 캐물었다. 그래서 나는 명예를 존중하는 사람은 자신의 곤경을 벗어나기 위해 남에게 피해를 주는 법이 결코 없다고 대답했다. 그리고 그런 행동을 강요하는 것은 결코 교육자답지 못한 행동이라고 말했다. 그러자 교장은 표정이 험악해지면서 나를 잡아먹을 듯이 노려보았다.
"좋다. 그 동안 나는 늘 온정을 지니고 네 놈을 대해 왔지만, 이젠 참을 수 없다. 너는 우리 꽃밭에 난 독버섯 같은 놈이야. 나는 이제 너를 뿌리째 뽑아 버리고야 말겠다, 아주 송두리째 말이야! 네 놈이 아무리 버텨도, 난 네 녀석이 누구에게 이 편지를 쓴 것인지 잘 알고 있다, 이 새끼야!"
나는 교실로 돌아오는 수밖에 없었다. 그 날 오후에는 내 문제로 교직원 회의가 열렸다. 교장 선생과 종교 선생은 나를 퇴학시키려고 날뛰었다. 학교 급사가 그 이야기를 전해 주어서 나는 그 내용을 자세히 들을 수 있었다. 그러나 다른 선생들이 나서서 나를 구원해 주었다. 나는 8시간 감금 당하는 징벌을 받게 됐다. 나는 그것으로 일단 일이 끝난 줄 알았다. 그 정도라면 큰 피해를 본 것도 아니기 때문에 별로 마음을 쓰지 않았던 것이다. 그런데 그 이야기는 그걸로 끝난 것이 아니었다.
며칠 후 나는 루푸 씨의 편지와 함께 어머니의 편지를 받은 것이다. 루푸 씨의 편지에는 매우 섭섭한 일이지만, 이제 나를 초대할 수 없다고 씌어 있었다. 교장 선생이 내가 그 어리석은 연애 편지를 그의 딸에게 썼다고 알려 왔다는 것이다. 자기는 그런 일쯤 아무렇지도 않게 생각할 뿐만 아니라, 내가 나이만 좀더 먹었다면 딸을 내줄 수도 있지만, 딸애가 창피스럽다고 길길이 날뛰기 때문에 그런 조치를 취했다는 것이었다.
나는 교장의 비열한 행위에 너무 화가 났고, 도저히 참을 수 없어서 울어버렸다. 그러고는 그를 찾아가 따지기로 했다. 그러나 나는 다시 발길을 돌려 루푸 씨네 집을 찾아갔다. 루푸 씨는 마침 집에 있었다. 나는 모든 것을 있는 사실대로 이야기했다. 그러나 그는 다 듣고 나서도 내 말을 믿지 않았다.
"너는 형편없는 말썽꾸러기야. 나는 그걸 잘 안다. 그리고 나는 그런 문제 따위는 아무렇지도 않게 생각해. 너희 아버지도 그랬고, 나 역시 그랬으니까. 하지만 너는 내 딸을 데려가기엔 나이가 좀 어리지 않으냐?"
그러면서 그는 여송연을 한 주먹 집어 주면서 이제 조용히 집으로 돌아가라고 말했다.
그는 내가 하는 말을 전혀 믿지 않았고, 두 번 다시 나를 초대하지도 않았다. 세상 사람들은 교장 선생이 거짓말을 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거짓말은 항상 학생들이나 하는 것으로 믿는 것이다. 그러나 오히려 질 나쁜 거짓말은 교장 선생 같은 사람들이 더 잘 하는 것을 난 알고 있다. 나는 학교를 졸업하고 대학에 들어가는 날에는, 이 비열한 악당을 반쯤 죽을 만큼 두들겨 주겠다고 맹세했다.
이 일로 나는 오랫동안 불쾌했다.
그 뒤 한 번은 길거리에서 루푸 씨의 딸을 만났다. 그 처녀는 그 때 두세 명의 자기 친구들과 함께 있었다. 그 때 그 처녀들은 팔꿈치로 서로 쿡쿡 찌르면서 킬킬거렸다. 그리고 뒤돌아보면서 계속 웃어댔다. 나는 대학에 가서 멋진 청년이 되어 저들에게 복수하리라고 생각했다. 내가 학생회장이라도 되어서 무도회를 열면 저 바보 같은 처녀들은 나와 춤을 추고 싶어서 몸이 달 것이다. 그러나 그때 나는 저 바보같은 것들을 본 체도 않으리라.
그러나 아무리 그렇게 상상해도 내가 그 즐거운 일요일을 뺏긴 손해는 만회할 수가 없었다.
악동 일기 (2) - 나의 첫사랑(2)
- 세부
- 주동식에 의해 작성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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