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나를 별 이상한 놈 다 보겠다는 얼굴로 바라보면서 따지듯이 물었다. 그러자 어머니가 중간에 끼어들었다.

"루드비히는 가끔 그리스어 과목 때문에 비명을 올리곤 한다네. 아마 그 과목이 무척 어려운 모양이지?"

어머니가 나를 변호해주지 않은 편이 훨씬 더 나았을 것이다. 어머니나 나를 감싸고 도는 태도야말로 나를 씹어대고 싶은 빈딩거의 의욕에 불을 지르는 격이었으니까 말이다. 그는 이제 아주 정색을 하고 나섰다. 마치 자기가 근무하는 학교에서 문제아의 부모를 면담이라도 하는 듯한 태도였다.

"도대체 어떻게 그런 소리를 할 수 있는지 전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답니다. 노상 그렇게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할 수 있다니, 정말 이건 어리석은 수작입니다. 그리스어야말로 너무너무 쉬운 과목입니다. 마음껏 놀면서 대충대충 해도 쉽게 배울 수 있는 게 그리스어에요."

그는 도무지 알 수 없다는 표정이었다. 그러자 어머니가 나에게 말했다.

"그런데 너는 왜 점수가 63점밖에 나오지 않은 거냐? 모르는 게 있으면 이제 매형도 오셨으니 자세히 물어 보려므나, 루드비히야."

그러나 빈딩거는 내가 말하는 것을 기다리려고 하지도 않았다. 하긴 그 점 하나만은 나로서도 고마운 일이었다. 그는 한 다리를 다른 다리 위에 꼬아 얹었다. 그리고 천장을 올려다보면서 저 혼자서 큰 소리로 지껄여댔다.

"하하하, 그리스어가 어렵다니! 그런 사람이야말로 그리스의 도리아 지방 사람들의 사투리를 한 번 들어 보아야 할 텐데! 그러면 지금 학교에서 배우고 있는 그리스 표준어가 어렵다는 소리는 결코 나올 수 없을 텐데... 아무리 낯가죽이 두꺼운 철면피 같은 작자라도 말이야... 또 아티카의 방언은 말할 필요도 없고 말이지. 말 그대로 이오니아의 표준 그리스어는 그 구조가 얼마나 기가 막히게 되어 있는데 그 따위 소리를 하다니, 저로서는 금시초문입니다. 그런 말을 한다는 것은 결국 형편없는 편견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스스로 드러내는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나 나는 그걸 잘 몰라서 그렇게 생각했을 뿐이고, 루드비히가 하는 말이..."

우리 어머니는 빈딩거의 공박을 받고 어쩔 줄 모르며 쩔쩔맸다. 그러자 마리 누나가 나서서 어머니를 거들었다. 누나는 한없이 잘난 척 뻐기고 있는 빈딩거의 말을 가로막았다.

"아이 참 여보, 생각 좀 해 보세요. 우리 어머니가 그리스어에 대해서 무슨 편견을 갖고 계신다고 지금 그런 요상한 얘기를 늘어 놓는 거예요?"

그때서야 그 이야기는 비로소 끝이 났다. 내가 보기에는 빈딩거는 장가를 들었어도 멍청하기는 마찬가지였다. 거기에다 대면 마리 쪽이 훨씬 영리한 편이었다. 사태를 수습하면서도 남편을 이렇게 또 두둔할 줄도 알았으니까 말이다.

"저이는 자기 직업에는 너무 열심이에요. 다른 때는 그저 사람이 턱없이 좋다가도, 자기 분야와 조금이라도 관련이 있는 이야기가 나오면 금방 저렇게 융통성 없이 열을 올린답니다."

"암, 그래야지. 사람은 그렇게 자기 직업을 소중히 여기고 열심히 해야지. 루드비히야, 너 이제 알았겠지? 그리스어가 무척 쉽다는 걸 말이야! 저런, 저 꼬마 미밀리 좀 보게나. 저렇게 점잖게 저기 앉아서... 너무 순하게 노는구나!"

어머니는 이렇게 모두가 기분 상하지 않게끔 적당히 분위기를 바꿔놓고는, 그 멍청한 녀석이 또 우둔한 짓거리를 할까 겁이 나셨던지, 갓난 아이에게 관심을 돌려 버렸다. 그러자 갓난 아이는 우리 어머니를 쳐다보고 웃더니, 별안간 입을 벌리고 '구구 다다' 하고 소리를 지르면서 발장구를 치고 손을 내밀었다. 물론 그 정도 행동이야 실은 아무것도 아닌 것이다. 하지만 온 집안 식구들 모두 마치 무슨 기적이 일어나는 것을 보기라도 한 것처럼 야단법석을 떨었다.

"너희들 들었니? 저 아이가 '구구 다다' 하고 외치는 소리 말이야!"

우리 어머니는 그 소리가 그렇게도 듣기가 좋은지 정신이 없었다. 그 소리를 몇 번이고 되풀이해서 들려주는 것이다. 그러자 이번에는 누군가 그 소리를 번역한답시고 나섰다.

"저 아이는 그게 우리 아빠라고 한 거에요. 그렇지, 미미야? 그리고 또 할머니라고 말한 거야, 그렇지 미미?"

"아이고, 어쩌면 이 아인 이렇게 똑똑할까. 저 나이에 저런 아이는 나는 여태까지 보지를 못했다. 아이고, 귀여운 내 새끼!"

어머니는 갓난 아이의 뺨에다 입을 쪽쪽 맞춰 주면서 크게 소리를 질렀다. 빈딩거는 무척 흡족한지 히죽 웃었다. 그래서 그의 커다란 이빨이 훤히 들여다 보였다. 그는 식탁 너머로 허리를 굽히고 집게 손가락으로 어린아이의 배를 쿡쿡 찌르면서 말했다.

"이 아이는 무척 머리가 좋아요. 그래서 항상 정신을 똑바로 차리고 주위를 유심히 살펴봅니다. 앞으로 이런 방향으로 계속 발전시켜야겠어요."

우리 어머니는 나도 그 아이를 봐주기를 원했다. 그러나 나는 빈딩거에게 무척 감정이 상해 있었다. 그래서 일부러 이렇게 물었다.

"도대체 저 아이가 무슨 말을 했다고 다들 그래요?"

그러자 우리 어머니는 펄쩍 뛰고 질색을 하면서 내 말에 끼여들었다.

"루드비히야, 너 방금 저 아이가 '구구 다다' 하고 말하는 소리 못 들었니?"

"그게 무슨 소린데요? 그거야말로 정말 아무 말도 아니잖아요."

"얘는 지금 아빠라고 말하는 거란다. 너는 꼭 그렇게 쌀쌀맞게 굴어야 하겠니, 루드비히야?"

누나는 거의 울상이 되어 말했다. 여자들은 역시 그런 분위기를 알아채는 데는 감각이 예민한 모양이었다.

"너는 어째서 그런 것도 알아듣질 못하니. 누구나 다 알아듣는데 말이야."

어머니도 화가 나신 얼굴로 누나를 거들었다. 그러나 나는 이번에는 져 주고 싶지 않았다.

"난 그 따위 소리는 무슨 말인지 전혀 알아 들을 수가 없어요."

"도대체 네가 아는 게 도대체 뭐가 있단 말이냐, 이 엉터리야. 네가 언제인가 아리스토텔레스를 배우게 되면, 우리 아이가 하는 말이 의성어라는 것을 이해할 수 있을 거다. 그것은 음성을 흉내내서 하는 말이란 말이야."

빈딩거는 학교에서처럼 으르렁거리며 두 눈을 부라렸다. 그 통에 그 바보 같은 어린애까지 덩달아 울기 시작했다. 마리는 부랴부랴 아이를 껴안고 자리에서 일어나 왔다갔다 했고, 우리 어머니도 그 곁을 따라다니면서 아이를 얼렀다.

"우리 아기가 또 이쁜 짓을 할 거야. 우리 아기 '구구 다다' 라는 말 한 번 더 해보렴..."

그러자 멍청한 빈딩거가 그 뒤를 따라가며 소리쳤다.

"안 돼. 말하지 마라. 여기서는 한 마디도 더 할 필요가 없어. 저 자식은 네가 아무리 대단한 걸 보여줘도 아무것도 인정하지 않으니깐 말이야."

그제서야 나는 기분을 풀고 실컷 웃을 수 있었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