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곳에서 한 달쯤 지나고 나자 나는 젬멜마이어 집에서 지내는 것이 나에게는 정말 견디지 못할 일이라는 것을 분명히 깨달을 수 있었다. 무엇보다도 그 부인은 먹을 것을 아주 조금밖에 주지 않았다. 내가 배고프다는 말이라도 할라치면 젬멜마이어는 이런저런 말을 훈계랍시고 길게 늘어놓곤 했다.
즉 젊은 사람들이 그렇게 먹을 욕심부터 앞세우면 장차 우리 도이칠란트는 어떻게 될 것인지 걱정이다. 자기는 전쟁에 나가 사흘간 먹지도 마시지도 못하고, 버틴 적도 있다. 나흘째에 기껏 나온 음식이라는 것이 고기는 전혀 없고, 다만 수프 조금하고 곡식 가루를 받았을 뿐이지만 그때 자기는 아무렇지도 않았다.
그는 말하기를, 그렇게 버틸 수 있었던 것은 자기가 조국을 사랑하는 정신이 투철했기 때문이었다는 것이다. 그러고서 그는 젊은 사람들이 언제나 먹을 것만을 생각하면 도이칠란트는 장차 망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그런 얘기를 하고 난 후에 그는 언제나 술집에 가서 맥주를 사 마시곤 했다. 그가 그렇게 술을 사 마시는 돈이 우리 부모에게서 긁어낸 것이라는 사실을 생각하면 정말 속이 뒤집힐 지경이었다.
그 자가 그리고 우리들에게 전혀 관심을 가지고 있지 않았다. 그는 우리가 공부를 하는지 안 하는지조차도 모르고 있었다. 다만 데리고 있는 학생들 가운데 누군가 학교에서 벌을 받고 와서, 자기가 그 처벌 쪽지에 서명을 할 때에만 우리들을 걱정하는 체했다. 받아온 처벌 쪽지에 그 학생이 무례한 짓을 해서 2시간 동안 벌을 받았다고 써 있으면 그는 무슨 무례한 짓을 했느냐고 물었다. 그러고서 그는 이렇게 말했다.
"내가 공부할 때에는 그런 짓을 전혀 하지 않아서 나는 그런 것을 전혀 모른다. 어떻게 그런 짓을 할 수 있는 것인지, 왜 그런 짓을 하는지 도통 모르겠단 말이야. 사람은 그런 무례한 짓을 하지 않고도 얼마든지 살 수 있는 거야."
그는 그럴 때면 아주 오랫동안 설교랍시고 잔소리를 늘어놓았다. 막스는 나에게 이렇게 말했다.
"그 자는 그렇게 우리에게 잔소리하는 것이 가장 큰 기쁨일 거야. 그 작자는 자기 마누라한테는 끽소리도 못하고 조용히 듣고 있어야 하거든."
목요일에는 우리들은 언제나 멀건 수프를 먹어야 했다. 그럴 때 젬멜마이어는 이렇게 말했다.
"너희들이 정말 스파르타 사람답게 될 수 있는지 인내를 시험해 보는 것이야."
물론 우리는 스파르타 사람이 아니다. 그래서 나는 항상 배가 고팠다. 그래서 집에 이런 내용을 적은 편지를 보냈다. 어머니는 곧 나에게 답장을 써 보냈다. 우리 어머니는 무슨 일을 비밀로 하는 것을 견디지 못한다. 그래서 당연히 젬멜마이어에게도 나의 불만을 그대로 써 보냈다. 어머니는 그 편지에 젬멜마이어가 나의 식욕이 왕성하다는 것을 미처 알지 못한 모양이라고 쓰셨다. 젬멜마이어도 어머니의 편지를 받았다.
아침 일찍 그는 나를 불렀다. 그는 방 안에 서 있었고 그의 부인은 소파에 앉아 있었다. 그 부인은 나를 보자마자 대뜸 이렇게 야단을 쳤다.
"왜 배가 고프다고 그런 거짓말을 써서 편지를 보낸 거냐?"
나는 이렇게 말했다.
"그건 거짓말이 아닙니다. 저는 정말 배가 고파요. 멀건 수프만 얻어 먹어서는 배가 고프지 않을 수가 없어요."
그러자 부인이 버럭 소리를 질렀다.
"너는 버르장머리가 없어. 네 생김새부터가 버르장머리 없게 생겼지. 오자마자 막스 같은 녀석과 친해진 것을 봐도 얼마든지 그걸 알 수 있어. 너는 마치 아이들이 다 굶주리고 있는 것같이 네 어머니에게 편지를 써 보내서 우리 부부를 의심하게 만들었어."
나는 이렇게 말했다.
"제가 배고픈 것은 누가 뭐래도 사실입니다. 그런 이야기쯤이야 얼마든지 어머니에게 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자 그 부인이 자기 남편에게 소리를 질렀다.
"우리 부부를 의심하는 이 나쁜 놈에게 뭐라고 따끔하게 말 좀 해요."
그러자 젬멜마이어가 내 앞으로 바짝 다가오더니 이렇게 말했다.
"나를 한 번 쳐다봐라!"
나는 그를 쳐다보았다. 그는 수염을 번쩍 쳐들고 손가락을 훈장을 가리키면서 물었다.
"이게 도대체 뭐냐?"
그래서 나는 자신 있게 대답했다.
"그것은 놋쇠입니다."
그는 눈을 무섭게 부릅뜨더니 소리를 질러댔다.
"이건 최고 무공 훈장이란 것이야. 만약 편지에 남몰래 멀건 수프 얘기나 쓰고 있었으면 내가 어떻게 이런 것을 받을 수 있었겠니? 결코 그럴 수 없는 것이다. 훌륭한 사람이 되려면 스파르타 사람을 본받아야 해. 배고픈 것도 참고, 땀을 흘리고, 추위에 떨기도 하고, 친한 사람이 죽는 것도 눈앞에서 보는 경험을 해야지. 그래야 이런 훈장을 받을 수 있는 거다. 그것은 내가 천성이 스파르타 사람이니까 그런 거야. 나는 젊은 사람들이 다들 이런 훈장을 받을 수 있도록 교육을 시켜야 해. 전쟁이 일어날 것에 대비해서 예비 훈련으로 목요일에는 너희는 멀건 수프를 먹어야 한단 말이다."
그는 계속해서 떠들었다. 자기도 매일같이 우리들에게 맛있는 고기를 구워 주고 그래서 우리가 양껏 먹는 것을 보고 싶다. 그러면 자기 마음도 무척 기쁠 것이다. 하지만 그렇게 했다가는 우리들이 스파르타 청년이 되지 못하고 향락에 빠져 사는 나약한 청년이 될까 봐 그게 걱정이 되어서 주지 못한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또 그는 나에게 이렇게 말했다.
"만약에 네가 구운 고기나 먹으려고 든다면 나는 너의 미래에 대해 아무것도 보장할 수 없어. 그러니 너의 어머님께 이런 편지를 다시 써 보내야겠어."
그 마누라도 내가 거짓말을 했으며, 자기들을 의심하는 버릇없는 아이라고 편지를 써 보내야겠다고 했다. 나는 밖으로 나갔다. 문밖으로 나가려고 할 때 젬멜마이어가 다시 나를 부르더니 말했다.
"내가 이렇게 너희를 교육시키는 이유는 너희들이 무공훈장을 받는 사람이 되도록 하기 위한 거야. 이런 사실을 너도 좀 생각해야 해."
나는 화가 나서 막스에게 그런 이야기를 했다. 막스도 덩달아 젬멜마이어에게 화를 냈다. 그러나 며칠 지나지 않아 나는 어머니로부터 다시 편지를 받았다. 그 편지에는 다음과 같이 씌어 있었다.
'대위님이 모든 사실을 잘 설명해주셨다. 너희들이 멀건 수프를 먹는다 해도 그것은 결코 돈을 아끼기 위해서 그런 것이 아니라 그 자체가 교육이라는 점을 충분히 이해해야 한다. 너는 그런 것을 고통으로만 받아들이지 말고 오히려 너를 스파르타 사람으로 만들려고 하는 분 밑에서 교육 받고 있다는 사실을 기쁘게 생각해야 할 것 같다. 그러나 네가 정말 그렇게 배가 고프다니 용돈을 보내마. 가끔 다른 가게에서 음식을 사 먹어도 괜찮지만 과자 따위를 사서 먹어서는 안 된다. 그리고 항상 젬멜마이어 씨 같은 용감한 장교가 되겠다고 생각하고 열심히 공부해야 한다.'
편지에는 3마르크가 말아져 들어 있었다. 막스도 그 편지를 읽었다. 막스는 편지를 읽고 나서 말했다.
"너희 어머니도 젬멜마이어의 그럴듯한 말에 그대로 넘어가고 말았구나. 어쩔 수가 없겠어. 너희 어머니도 우리들 말을 그대로 믿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시는 모양이야."
그 뒤 3 주일이 지났을 때 사고가 났다. 그 사고의 원인은 어머니가 내게 부쳐주신 바로 그 돈이었다.
악동 일기 (2) - 젬멜마이어 대위(4)
- 세부
- 주동식에 의해 작성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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