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집은 드디어 내가 다니는 학교가 있는 읍내로 이사를 왔다. 이사를 오자 내 담임 선생 빈딩거가 가정 방문차 우리 집에 찾아왔다. 그러더니 빈딩거는 그 후부터 줄곧 우리 집을 찾아왔다. 아마 여학교를 졸업하고 집에 와 있는 우리 큰누나 마리를 노리는 모양이다. 그러나 집에서는 내가 모르게 하려고 쉬쉬하였다.

마리 누나는 평소에 나만 보면 언제나 욕을 퍼부었다. 어머니가 왜 그러느냐고 나무라도, 내가 아무 짝에도 못 쓸 망나니라고 하면서 조금도 기세가 누그러지지 않았다. 그러던 마리가 느닷없이 나에게 무척 상냥해졌다. 내가 학교에 갈 때면 현관까지 따라 나와, 과자를 가지고 가서 먹으라는 둥, 옷깃이 구겨졌다며 바로잡아 주는 둥, 이만저만 곰살 맞게 구는 것이 아니었다.

어느 날인가는 나에게 새 넥타이를 사 주기도 했다. 지금까지는 내 옷차림을 보고 욕이나 퍼부었지, 한 번도 뭔가 사 주었던 적이 없는 누나였다. 나는 그런 행동이 뭔가 의심스러웠지만, 좋은 게 좋다고 그리 꼬치꼬치 캐려 들지 않았다. 마리는 내가 학교에서 돌아오면 자주 이렇게 묻곤 했다.

"담임 선생님이 공부 시간에 너를 불러 세워서 대답하라고 시키지 않던? 그 선생님이 너에게 친절하게 구니?"

그러나 아무것도 모르는 나는 이렇게 냉정하게 쏘아주곤 했다.

"누나 따위가 나하고 무슨 상관이 있다고 나서고 그래? 괜히 몇 살 더 먹었다고 나한테 어른 행세 할 생각은 꿈도 꾸지 마. 난 누나 같은 사람은 상대도 하지 않으니까 말이야."

마리 누나는 갑자기 옷차림마저 달라졌다. 나는 그저 마리 누나가 또 새 옷을 또 사 입었구나 하면서 건성으로 지나치곤 했다. 처녀들은 남들에게 조금이라도 잘 보이려고 언제나 새 옷을 사 입으려고 안달을 하는 것이니까. 그러나 결국 시간이 좀 지나면서 나도 그 까닭을 알게 되었다.

우리 담임 선생 빈딩거는 나를 아주 못마땅하게 여겼고, 나도 그가 전혀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 작자는 하고 다니는 꼴도 지저분했다. 그 모습을 보면 아마 아침마다 계란 프라이만 해 먹는 모양이었다. 콧수염에 언제나 달걀 노른자가 덕지덕지 묻어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말을 할 때면 작자의 입에선 언제나 침이 튀어 나왔다.

빈딩거의 눈은 고양이 눈처럼 파랬다. 대개 학교 선생이란 작자들은 못생긴 경우가 많지만 이 작자는 특히 더 심했다. 머리를 자주 감지 않아서 지저분했고, 비듬도 많았다.

빈딩거가 맡고 있는 과목은 역사였다. 그는 수업 시간에 고대 도이칠란트 사람들의 생활에 관해서 이야기를 할 때마다 언제나 수염을 쓰다듬으며 목소리에 무게를 넣곤 했다. 그렇게 하면 우리가 자기를 마치 고대 도이칠란트 사람으로 착각할 줄 아는 모양이었다. 그러나 나는 우리 조상들이 빈딩거처럼 배가 뚱뚱하고, 그렇게 신발을 질질 끌며 걸었으리라고는 상상할 수 없었다.

그는 다른 아이들이 잘못하면 그냥 야단만 치고 말았지만, 내가 잘못하면 아예 교실에 잡아 가두곤 했다. 그렇게 하는 것이 나의 장래를 생각해서 각별히 배려한 때문은 결코 아니다. 그는 나에게 그런 벌을 줄 때마다 이런 악담을 결코 빼놓지 않았다.

"네 따위 인간은 결코 이 사회에서 쓸모 있는 사람이 될 수 없다. 이 빌어먹을 자식아."

그러나 빈딩거 말처럼 과연 그렇게 될 것인지는 앞으로 좀 더 두고 보야야 알 노릇이라고 나는 생각했다. 나는 최소한 우리 조상을 볼품없이 보이게 하지는 않을 자신이 있었다.

마침 마을의 합창단이 주최한 무도회가 열리게 되었다. 마리 누나는 그 무도회에 입고 가기 위해 연분홍색 옷을 맞춰 입었다. 그런데 바느질하는 여자가 일을 좀 늦게 마치는 바람에 마리는 안달을 하며 화를 냈다. 그러고 나서 어머니와 마리 누나는 모양을 한껏 낸 채 무도회장으로 득달같이 달려가 버렸다.

다음날 아침 식사 때 어제 저녁 무도회 이야기가 나왔다. 마리 누나가 나에게 말했다.

"얘, 루드비히야, 너희 빈딩거 선생님도 오셨더라. 아이 참, 그 분은 너무 매력이 넘치는 분이야!"

이 소리에 나는 약이 바짝 올랐다. 세상에 매력 있을 인간이 따로 있지, 세상에 그게 빈딩거라니...! 그래서 나는 마리 누나에게 그 고운 분홍빛 옷에다 그 작자가 달걀 노른자나 침을 잔뜩 묻히지는 않더냐고 쏘아붙여 주었다. 그러자 마리 누나는 얼굴이 갑자기 새빨개졌다. 그러더니 느닷없이 자리에서 펄쩍 뛰어 일어나 문 밖으로 달려갔다. 그리고 나서 문 밖에서 마리가 우는 소리가 들려왔다.

나로서는 아무리 생각해도 마리 누나가 정신이 이상해진 것으로 밖에는 보이질 않았다. 그런데 뜻밖에도 어머니까지 마리 누나의 편을 들고 나서는 데는 나도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너 그 선생님 얘기를 그렇게 버릇없이 하는 게 아니다. 마리 누나가 그런 얘기를 듣고 어떻게 참을 수가 있겠니!"

"도대체 그게 누나하고 무슨 상관이 있다는 거에요. 그 자가 항상 지저분한 건 사실이라구요. 있는 사실을 사실 그대로 말한다고 해서 울다니! 그건 누나가 바보 같은 짓을 하는 거지 뭐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