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고 나서 우리들은 집 안을 돌아다녀 보았다. 그 부인은 우리 어머니에게 내 방을 보여주었다. 그 방은 깨끗하였으며 책장과 책상, 옷장 그리고 침대가 있었다. 창문이 큼직해서 여러 집들이 내려다보였다. 어머니가 말했다.

"이 방은 무척 밝고 깨끗하구나. 네가 공부만 열심히 할 수가 있을 것 같구나. 옷장이나 책상은 네 손으로 잘 정돈해야 한다. 그리고 창문 밖을 너무 자주 내다봐서는 안 된다. 네가 앞으로 열심히 공부를 하면 곧 집으로 돌아올 수 있는 거야."

나는 곧바로 마음을 바로잡은 것처럼 행동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집으로 돌아가고 싶었다. 난 벌써부터 집 생각이 나고, 이 부인이 전혀 마음에 들지 않았기 때문이다. 어머니는 그 대위 부인에게 이렇게 물었다.

"이 댁에 다른 소년들도 있습니까?"

그 부인은 이렇게 대답했다.

"남작이 두 사람 있고, 다른 사람도 세 명 더 있어요. 아마 백작이 한 명 또 올 겁니다. 그 가운데 두 사람은 지금 3년째 여기 있답니다. 다른 세 사람은 이제 1년째 공부를 하고 있는데 상당히 자세를 바로잡은 눈치가 보여요. 다만 한 사람만은 아주 말을 듣지 않아서 저의 남편이 가끔 한밤중에 감시를 하지 않으면 안 된답니다. 어떻게 하면 그의 마음을 바로잡을 수 있을 것인지 연구하고 있답니다."

그 부인이 나를 보면서 말했다.

"그 아이와 사귀면 안 된다."

그 아이 이름은 막스라고 했다. 아버지는 중위였는데, 전쟁 중에 총에 맞아 죽었다고 한다. 어머니가 그 부인과 나에게 이렇게 말했다.

"자세히 가르쳐 주셔서 고맙습니다. 넌 이 분들 말씀 잘 듣고 정직한 사람들하고만 사귀어야 한다."

그러고서 어머니는 그 부인에게 오늘은 나를 집에 데리고 갔다가 다음 날 아침에 짐을 꾸려서 다시 데리고 오겠다고 말했다. 우리들은 집을 나왔다. 층계 위에서 어머니가 나를 보고 이렇게 말했다.

'엄마는 이제야 네가 젬멜마이어 대위의 가르침을 받아 딴 사람으로 변하리라는 믿음을 갖게 됐다. 그 분이 그렇게 많이 다른 사람을 바로잡아 주었는데도 너를 그렇게 하지 못한다면 나도 이제는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

나는 어머니와 같이 시내를 돌아다녔다. 어머니가 몇 가지 물건을 살 게 있었던 것이다. 그러다 길거리에서 대학생이 지나가는 것을 보기만 하면 어머니는 나더러 이렇게 말했다.

"너도 꼭 대학생이 되겠다고 결심해야 한다."

악대와 함께 사병들이 행진을 해왔다. 악대 뒤에는 손에 칼을 든 장교가 뒤따랐다. 그 때 어머니는 또 이렇게 말했다.

"네가 젬멜마이어 씨 말을 잘 들으면 언젠가는 저렇게 악대와 같이 행군을 할 수가 있을 거야. 그러니까, 너도 마음을 굳게 먹어야 한다."

오후에 어머니는 산림 감독관 하이스 씨를 방문했다. 그는 시에서 아주 멀리 떨어진 곳에 살고 있었다. 그의 집 주위를 넓은 정원이 둘러싸고 있었다. 그 곳은 우리 집 만큼이나 아름다웠다. 작은 삽살개가 짖고 있었다. 현관에서부터 벌써 담배 냄새가 풍겨 나왔다.

방안에는 사슴 뿔이 많이 걸려 있었다. 하이스 씨는 우리가 찾아가자 아주 반가워했다. 하이스 부인은 커피와 과자를 내왔다. 하이스 씨 부부는 우리 어머니와 함께 앉아 예전에 우리 아버지가 살아있었을 때의 이야기를 하였다. 하이스 씨는 우리 아버지와 가장 가까운 친구였다는 것, 언제나 둘이 함께 다니곤 했다는 이야기를 했다. 그리고 하이스 씨는 파이프로 나를 가리키면서 말했다.

"너도 산림 감독원 집 출신이니까 역시 숲에서 살아야 한다. 그래 너도 그럴 생각이 있니?"

나는 이렇게 대답했다.

"저도 역시 그렇게 하는 게 제일 좋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어머니는 이때 한숨을 내쉬면서 말했다.

"그런데 이 애는 공부하기를 싫어한답니다."

하이스 씨는 큰 소리로 이렇게 말했다.

"이것 봐. 내가 산림감이 되려고 얼마나 열심히 공부를 했는지 아니? 그렇게 해도 모자라!"

그러면서 하이스 씨는 내가 지금 어디 있느냐고 물었다. 어머니는 내가 집에서 라틴어 학교에 다닌다는 것, 그러나 공부라고는 전혀 하지 않는다는 것 등을 말했다. 사람들이 그게 모두 자기가 아들에게 엄하게 하지 않는 탓이라고 말해서 이번에는 나를 젬멜마이어 대위한테 데리고 갔다는 얘기도 했다. 그는 학생들을 잘 다룬다는 것, 그래서 내가 내일 그곳으로 가게 되었다는 것 등을 이야기한 것이다. 그러자 하이스 씨는 껄껄 웃더니 말했다.

"나는 그 젬멜마이어 대위가 그렇게 훌륭한 선생이라는 얘기는 전혀 들어본 적이 없는데요."

어머니는 그 말을 듣고 이렇게 말했다.

"그는 선생이 아니라 다만 소년들에게 굳은 의무감을 주는 겁니다. 또 그의 부인은 보모이므로 그 부인으로부터 예의 범절을 배우는 것이랍니다."

하이스 씨는 파이프를 물더니 담배 연기를 엄청나게 많이 내뿜었다. 그러면서 그는 물었다.

"혹시 그 대위 이름을 어떻게 쓰는지 아세요? 그 이름의 철자가 어떻게 되는지 언뜻 잘 떠오르지가 않는군요."

어머니가 대위의 이름 철자를 말했다.

하이스 씨는 그걸 듣고 나서 입에서 파이프를 빼더니 "젬멜마이어, 젬멜마이어...'"라고 여러 번 되뇌었다. 어머니가 하이스 씨에게 말했다.

"혹시 그 사람을 잘 아세요?"

하이스 씨는 그가 바로 같은 사람인지는 모르겠으나, 전쟁 때 자기 부대에 요셉 젬멜마이어라는 중위가 한 사람 있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는 이런 말을 들려 주었다.

"그 자는 너무 멍청해서 사병들까지 모두 그 녀석을 '달팽이 페피'라고 불렀지요. 또 그 녀석은 총 소리가 났다 하면 어디론가 얼른 기어들어가서 숨곤 했습니다. 그러나 아마 두 사람은 같은 사람은 아니겠지요."

어머니도 그 말을 듣고 말했다.

"젬멜마이어 대위는 아주 똑똑한데다, 다른 사람들이 모두 그를 칭찬하는 것으로 봐서 전쟁 중에 만나셨던 그 사람은 아닐 거에요. 저는 그 사람을 찾아가게 된 것과 우리 아이가 그 사람을 어렵게 여기게 된 것을 하나님께 감사하고 있답니다."

하이스 씨도 말했다.

"아마 그 사람이 옛날 그 달팽이 페피는 아닐 겁니다."

커피를 마신 후 우리들은 그 집을 떠났다. 돌아오는 길에 어머니가 나에게 말했다.

"그 분은 사냥꾼이라서 가끔 그렇게 어린 아이들에게는 적당하지 않은 농담을 잘 한단다."

나는 젬멜마이어 대위가 눈을 둥글게 하던 모습을 떠올리며 틀림없이 그가 그 달팽이 페피일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어머니에게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