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활절 휴가가 되자 빈딩거와 마리가 집으로 왔다. 그는 이미 2년 전부터 헤겐스부르크로 가서 교사 생활을 하고 있어서, 나와 만나는 것도 무척 오랜만이었다.

누나 부부는 두 살 먹은 어린 계집아이를 데리고 왔다. 그 아이 이름도 마리라고 했다. 그런데 우리 누나는 그 아이를 꼭 미미라고 불렀고, 우리 어머니는 또 미밀리라고 불렀다. 빈딩거는 무어라고 불렀는지 잘 모르겠다. 그는 가끔 그 아이를 '우리 공주님'이라고 부르거나 '우리 쭈쭈 두두' 라고 부르곤 했다. 그 계집아이는 저희 아버지를 닮아 머리통이 굉장히 컸고, 코도 저희 아버지 모양으로 들창코였다. 그리고 내내 손가락을 입에다 넣은 채 눈앞에 있는 것을 멍청하게 바라보곤 했다.

어머니는 역에까지 마중을 나가서 그들을 껴안았다. 그러면서 어머니는 그때부터 집에까지 똑 같은 얘기를 계속 되풀이하셨다.

"이제 정말 너희들이 왔구나! 아니 우리 미밀리가 어쩜 이렇게 많이 컸을까? 나는 이렇게 자랐을 줄은 상상도 못했단다."

"네, 그렇지요, 어머니? 어머니 보시기에도 그렇죠? 다른 사람들도 다들 우리 미미 보고는 그래요. 우리 집 의사 선생님인 슈타이니거 박사도 아주 신기하다는 거예요. 발육이 너무너무 좋다는 거예요. 여보, 그렇지 않아요? 어머니하고 지금 우리 집 주치의 선생님 얘기를 하는 중이에요."

그러자 빈딩거는 여기는 학교 교실이 아닌데도 교실에서 늘상 하는 그 말투, 이상하게 억눌러서 뽑아대는 그 굵직한 목소리로 지껄였다.

"그래요, 어머님. 저 녀석은 쑥쑥 자라는 게 눈에 보일 정도라니깐요."

"참 신통도 하지... 어쩜 이렇게도 신통할까!"

어머니는 연신 감탄하느라 입이 닳을 지경이었다. 그러나 나는 그 어린애가 조금도 신통하거나 감탄스럽지 않았다. 아마 빈딩거는 나의 그런 태도가 못마땅했던 모양이다. 빈딩거는 이렇게 빈정거렸다.

"아, 우리 학상님은 여기 점잖게 앉아 계시는군. 그래 너한테는 아직도 시이저의 갈리아 원정기가 너무 어렵겠지?"

그러더니 그는 라틴어로 '"갈리아는 세 개로 나뉘었도다"고 읊었다. 그것은 다름이 아니고 나더러 그 다음 구절을 라틴어로 읊어보라는 뜻이었다. 빈딩거는 나를 보자마자 실력을 시험해 보고 싶었던 모양이다. 그러나 어머니는 내가 만나자마자 빈딩거에게 너무 곤욕을 치른다 싶었던지 중간에서 끼어들었다.

"얘 루드비히야, 너 아직 미밀리한테 인사 안 받았지. 어서 이리 와서 네 조카 좀 보려므나! 이것 좀 보라니까! 요것이 어쩌면 요렇게도 예쁘냐. 아이고 예뻐 죽겠어."

내가 보기에는 그 아이는 조금도 예쁘지 않았다. 솔직하게 얘기하자면 보통 다른 아이들보다 오히려 못생긴 편이었다. 그러나 일단 나도 그 아이가 아주 마음에 드는 것처럼 정답게 웃어 주었다. 마음씨 좋은 우리 어머니는 내가 그렇게 하는 것을 보고 기뻐서 마리에게 말했다.

"얘, 네 동생이 우리 미밀리를 예뻐하는 것 좀 보려므나. 우리 미밀리가 삼촌 마음에 쏙 들 줄 알았다. 요것, 요 귀여운 것!"

거실에 아침 식사를 차려놓았다. 우리 집 하녀인 카티도 오랜만에 바쁘게 움직였다. 소시지를 굽고, 도수가 높은 맥주도 식탁으로 날라 왔다.

나는 그저 맛있는 음식을 먹게 된 것이 기뻤을 뿐이다. 하지만, 다른 사람들은 그 어린아이를 둘러싸고 쳐다보느라고 음식은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그런데 그 아이는 누나가 아무리 입에서 손가락을 뽑아 주어도 다시 갖다가 집어넣곤 했다. 그 짓은 아무리 반복해 보았자 소용이 없을 듯 싶었다. 누나도 나중에야 그걸 깨달았던지 그 짓을 포기하고 아이의 모자를 벗겼다. 그러자 숱이 적은, 곱슬 금발 머리가 드러났다. 어머니는 마치 엄청나게 신기한 것이나 발견한 것처럼 커다랗게 소리를 질러댔다.

"아이구, 내 손녀딸이 저렇게 금발이구나, 금발이야!"

우리 어머니는 손녀의 머리에다 키스를 했다. 마리는 연방 그 아이에게 이렇게 어르고 있었다.

"미미야, 외할머니란다, 외할머니. 할머니 안녕하셨어요 이렇게 인사해야지."

그러나 그것은 누가 보기에도 말도 안 되는, 무리한 주문이었다. 그러나 정작 부모들 생각에는 그게 그렇지 않은 모양이었다. 자기네들의 기술이나 정성이 부족해서 문제일 뿐이지, 그 어린아이는 충분히 그런 인사를 할 수 있는 것으로 생각하는 모양이었다. 빈딩거도 그 아이에게 허리를 굽히고는 '쭈쭈 두두' 하고 소리를 지르며 얼러댔다.

그러자 두 살 짜리 아기는 으왕 하고 울어댔다. 뿐만 아니라 뭔가 토하려는지 캑캑거렸다. 마리는 어머니 귀에 무어라고 한 마디 하더니 아기를 안고 휭 하니 밖으로 나갔다. 빈딩거는 자리에 남아 있었으나 식사를 할 생각은 하지도 않고, 불안한지 방 안을 오락가락 거닐었다. 그러더니 걸음을 멈추고 밖에다 귀를 기울이며 물었다.

"여보, 별로 대단한 건 아니겠지?"

"네, 아무렇지도 않아요."

마리는 그러고서도 한참 더 밖에 있다가 아기를 데리고 들어왔다. 어머니가 그 뒤를 따라 들어오면서 이렇게 말했다.

"너무 오래 기차를 타고 온데다 갑자기 낯선 사람들이 너무 많아져서 그런 모양일세. 얘가 너무 흥분해서 그런 게 한꺼번에 탈이 난 것 같구먼."

사람들이 모두 자리에 앉았을 때는 소시지 구운 것은 물론 수프까지 싸늘하게 식은 뒤였다. 우리는 그제서야 모두 음식을 먹기 시작했다. 부활절을 축하하며 술잔을 마주쳤다. 어머니는 이렇게 즐거운 일은 정말 오래간만이라고 이야기하셨다. 우리가 모두 한 자리에 모여 앉은데다, 마리가 얼굴이 썩 좋아보이고, 또 이렇게 어여쁜 미밀리가 함께 있기 때문이라는 얘기였다. 게다가 나도 평소보다는 성적이 좀더 나아졌다는 말씀도 하셨다.

그러나 빈딩거 앞에서 내 성적표 이야기를 꺼낸 것은 어머니의 완전한 실수였다. 그는 내 성적표 때문에 어머니가 기뻐한다는 사실을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던 것이다. 그래서 나는 일부러 그에게 성적표를 가져다 보여주어야 했다. 그는 성적표의 교사 평가란에 적혀 있는 글을 일부러 소리 내어 읽었다.

"이 학생은 재능은 평범한 편이나, 줄기찬 노력을 하고 있어서 성적이 점차 좋아질 것으로 사료됨."

그리고 나서 그는 과목마다 하나하나 점수를 소리 내어 읽었다.

"라틴어 65점, 흠 이건 내가 예상했던 바로다. 그리고 산수는 72점, 그리스어는 기껏 63점, 너는 이 과목 성적이 왜 이렇게 엉터리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