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이지 9 / 전체 19
월요일이 되어 나는 초등학교로 갔다. 한 쪽에는 남자 아이들, 또 다른 쪽 자리에는 여자 아이들이 자리잡고 앉아 있는 그 유치한 교실에 들어서려니 마음이 착잡하였다. 이 길로 그냥 달아나서 영영 집에 돌아가지 말아버릴까? 그러나 어머니의 울던 모습이 다시 떠올라 나는 꼼짝도 할 수 없었다.
교실에 들어서자 바그너 선생은 나를 맨 앞줄에 앉혔다. 그러고 나서 아이들에게 나를 익살맞게 소개하였다.
"오늘부터는 라틴어를 아는 대학자님이 너희들과 한 반에서 같이 있게 되었다. 대학자님의 웃음거리가 되지 않으려면 너희들은 앞으로 보다 열심히 공부를 해야 할 거다."
아이들은 '와아' 웃었다. 나는 화가 났지만, 아무렇지도 않은 체하는 수밖에 없었다.
첫째 시간은 국어 수업이었다. 한 아이가 그 날 배울 부분을 읽었다. 그것은 <저녁>이라는 제목의 산문으로 다음과 같이 시작하는 것이었다.
'태양은 잠을 자러 들어가고, 하늘에는 저녁 별들이 나온다. 참새들은 사랑스러운 노래를 멈추고, 덤불 밑에서는 귀뚜라미들이 합창을 시작한다. 하루 종일 밭에서 부지런히 일하던 농부가 집으로 돌아오면, 강아지가 좋아라고 짖어 대면서 마중을 나온다. 그 뒤로 아이들이 두 팔을 활짝 벌리고 달려 나온다. 농부의 아내는 그 뒤에서 행복한 미소를 지으며 남편을 맞이한다.'
정말 유치하기 짝이 없다. 초등학교의 국어 교과서에 실린 글은 어쩌면 이렇게도 유치하단 말인가. 그런데 이 따위를 라틴어 학교 학생이 공부해야 하다니, 이게 무슨 얄궂은 운명이란 말인가!
바그너 선생은 아이들더러 그 문장을 열 번씩 써서 외울 수 있도록 하라고 말하고, 교무실에 볼 일을 보러 갔다. 그러나 나는 차마 그 짓을 하고 있을 수는 없었다. 선생이 자리를 비우는 동안에는 반장을 맡은 푸르트너 마리라는 여자 아이가 감독을 하는 모양이다. 그 아이는 우리 집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사는 농부의 딸이었다.
나는 계집아이에게까지 감독을 받게 된 것에 또다시 울화가 치밀었다. 그러나 어쩐단 말인가! 그저 한숨만 푹푹 쉬고 있을 수밖에... 그러자 옆에 앉은 라이트너가, 이따 오후에 물고기를 잡으러 같이 가지 않겠느냐고 아주 조용한 소리로 물었다. 나는 큰 목소리로 좋다고 대답했다.
"루드비히 토마, 조용히 해! 또 한 번 떠들면 네 이름도 여기에 적을 거야."
"용서하십시오, 여반장 나리. 앞으로는 좀더 조심하도록 합지요."
나는 대꾸하고 나서 주머니 속을 뒤적여 보았다. 주머니에서 시계 태엽을 감는 열쇠가 나왔다. 나는 그 열쇠에 뚫려있는 구멍을 들여다보다 그걸로 호루라기를 불 수 있나 시험해 보았다. 소리가 제법 크게 났다.
그러자 푸르트너 마리가 앞으로 나가더니 칠판에 이렇게 적었다.
'루드비히 토마, 호루라기를 불었음.'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한 마디 하지 않을 수 없었다.
"미안합니다, 여반장 아가씨. 당신이 내 이름을 적지 않으려면 도대체 내가 무슨 일을 해야 할까요?"
그 계집애는 나더러 <저녁>을 쓰라고 하였다. 그것은 너무나 유치해서 나로서는 도저히 쓸 수 없다고 대답했더니, 그 계집아이는 그럼 유치하지 않은 라틴어 학교 학생은 얼마나 글을 잘 쓰는지, 같은 제목을 가지고 글짓기를 한 번 해 보라고 하였다. 그래서 나는 얼른 글짓기를 해 가지고 일어나서, 그것을 발표해도 되느냐고 큰 소리로 물었다.
"여반장 나리, 내가 이 글을 낭독해도 괜찮겠습니까? 그러면 이게 잘 되었는지, 못 되었는지 나리께서 지적하실 수 있을 텐데요."
어리석은 이 계집애는 자기가 라틴어 학교 학생의 작문을 심사하게 된 것이 자랑스러운 모양이었다. 나더러 큰 소리로 낭독해보라는 것이었다. 나는 그 계집애의 주문대로 큰 소리로 읽어 내려갔다.
'태양은 잠을 자러 가고 저녁 별들이 나온다. 주막집 앞은 조용하다. 그 때 갑자기 문이 열리고 주막집 머슴이 농부 한 사람을 끌어내 내동댕이친다. 그는 너무 술이 취해 일어나지도 못한다. 그래서 개처럼 기어서 집으로 돌아간다. 그는 바로 푸르트너 마리의 아버지이다.'
낭독을 마치자 아이들은 하나같이 배꼽을 잡았다. 푸르트너 마리는 악을 쓰기 시작하였다. 그리고는 칠판으로 달려가더니 '루드비히 토마, 무례하였음.'하고 적어 놓았다. 그리고 그 밑에다 밑줄을 세 번씩이나 좍좍 그었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칠판 앞으로 나갔다. 그리곤 지우개를 집어 그 계집애가 쓴 것을 깨끗이 지워버렸다. 푸르트너 마리는 너무 화가 나서 발을 동동 구르고 있었다. 나는 그러는 그 애의 땋은 머리를 움켜쥐고 치켜 올렸다. 그러고 나서는 칠판 지우개로 양쪽 따귀를 한 대씩 갈겨 주었다. 라틴어 학교 학생의 이름을 함부로 적지 못한다는 사실을 그 계집애가 똑똑히 알도록 해 준 것이다.
잠시 후 바그너 선생이 돌아왔다. 선생은 이야기를 듣고 나더니 몹시 화를 냈다. 우리 어머니를 생각해서 당장 쫓아내지는 않겠지만, 학교가 끝나고 밤이 될 때까지 벌을 세우겠다고 하였다.
아이들이 가 버리자, 바그너 선생은 나만 교실에 남기고 교실 문을 밖에서 잠가 버렸다. 벌써 점심 때가 지나서, 나는 무척 배가 고팠다. 그러나 배 고픈 것보다도, 초등학교에까지 와서 교실에 갇힌 내 신세를 생각하니 한심하기 짝이 없었다.
오후 3시가 되자 학교 안에는 인기척이 딱 끊어졌다. 이 선생이 정말 나를 어두워질 때까지 여기 가두어 둘 셈인가? 나는 은근히 부아가 치밀었다. 그래서 나는 빠져나갈 구멍을 찾기 시작하였다. 교실 창 밖 바닥에는 돌이 깔려 있어서 뛰어내리기는 아무래도 위험하다. 좀더 주위를 살펴 보았더니 한쪽 유리창 앞에 배가 주렁주렁 열린 배나무가 서 있었다. 나는 얼른 그 유리창 앞으로 달려갔다. 배나무 가지에는 손이 닿지 않았다. 그러나, 유리창턱에 올라서서 조금 멀리 뛰면 손으로 가지를 움켜잡을 수 있을 것 같다.
나는 유리창턱에 조심스럽게 올라서서 배나무 가지를 향하여 힘껏 뛰었다. 성공이었다. 그러나 이런! 나뭇가지는 내 몸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찌직 찢어지는 소리를 냈다. 줄기 쪽 부분이 찢어지며 밑으로 축 처지는 것이다. 덕분에 나는 땅바닥에 안전하게 내려설 수 있었다. 하지만, 그 배나무의 가장 큰 가지가 완전히 떨어져 나가고 말았다. 그 바람에 거의 다 익은 배가 수십 알이나 땅에 후두둑 떨어지고 말았다.
나는 이 돌연한 사태에 눈앞이 아찔하였다. 그러나 이미 저질러진 일, 이제 와서 어떻게 한단 말인가. 나는 집으로 도망쳐 버리고 말았다.
다음날 아침, 초등학교에서 편지가 왔다. 바그너 선생이 보낸 것이었다. 나더러 자기네 학교에 두 번 다시 발을 들여놓지 말라는 내용이었다. 내가 분명 단언하지만, 평생에 그렇게 시원한 편지를 나는 두 번 다시 받아보지 못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