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세크 네 농장을 나와 넓은 풀밭으로 들어섰다. 아르투어는 빈손으로 내 뒤를 쫓아오며 물었다.

"얘, 너 기운이 그렇게 세니?"

"시험해보고 싶다면 해보렴. 너 하나쯤은 덤불 숲에다 저만큼 집어 던져버릴 수도 있어."

나는 그를 힐끗 돌아보며 대꾸했다. 그러자 아르투어는 자기도 기운이 세져서 누나에게 꼼짝 못하고 짓눌려 지내지 않아도 되면 좋겠다고 말했다. 그래서 나는 누나가 너를 때리느냐고 물었다.

"때리지는 않아. 하지만 항상 너무 뻐기는 게 문제야. 내 성적이 떨어지면 자기가 엄마 아빠라도 되는 것처럼 날 붙잡고 쏘아댄단 말이야. 내가 힘이 좀 세다면 그럴 때 한 번 단단히 혼을 내주고 싶은데..."

"그건 그래. 누나들이란... 정말 누나만 아니라면 반쯤 죽이고 싶도록 얄밉게 굴지."

"그래. 어떤 땐 나를 툭툭 밀면서 몰아세워서 뒤로 넘어질 뻔한 적도 있다니까."

"그렇지만 누나라고 해서 대책 없이 언제까지나 당할 수는 없잖아. 까짓 것, 그런 버릇을 고쳐주는 건 어렵지 않아."

"어렵지 않다니? 어떻게 하는 건데?"

"뭐 방법이야 아주 많지. 지렁이를 한 주먹 잡아다가 침대에 넣어줄 수도 있고, 도마뱀을 몇 마리 잡아다가 넣어줄 수도 있고... 여자들은 침대에 들어갈 때 그런 선뜩한 것이 몸에 닿으면 놀라서 자지러지게 소리를 지르는 거야. 그러고 나면 다시는 그렇게 잘난 체하지는 못한단 말이야."

그러나 아르투어는 그랬다가는 매를 맞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래서 그렇게 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매 맞는 것을 두려워하면 사내 구실을 할 수 없을 거라고 말해 주었다.

"사내라면 모험을 할 줄 알아야지. 제까짓 게 때리면 얼마나 때리겠어. 맞을 때 맞더라도 그렇게 길을 들여놓으면 훨씬 지내기 편해지지. 고것들을 그냥 내버려두면, 자기들이 잘나서 우리가 꼼짝 못하는 줄 안단 말이야. 그래서 점점 더 고약하게 구는 거야."

"맞아, 내가 지난번 성적표를 받아 왔을 땐 내 볼을 꼬집으며 막 흔들어대지 뭐야."

"그래서 너 울었니?"

"울지 않을 수 있어? 정말 볼이 떨어져 나가는 줄 알았다니까."

"그렇다면 더 이상 망설여선 안되겠다. 오늘 당장이라도 무슨 수를 써야지. 지렁이는 내가 잡아주마."

나는 그 잘난 체하는 뚱보를 보는 순간부터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래서 그 처녀를 혼내주는 일이라면 적극 나서서 도와주고 싶었다.

"지렁이는 어디 있는데?"

"아무 곳이나 질퍽한 땅을 파면 얼마든지 있어."

"물지는 않니?"

"이런 바보... 야 임마, 지렁이는 물지 않아."

"도마뱀은?"

"도마뱀도 마찬가지야."

"그럼 네가 지렁이 좀 잡아 줄래?"

"그래, 필요하다면 얼마든지 잡아주지."

"도마뱀도?"

"그래, 도마뱀도 잡아줄께."

나는 도마뱀 굴이 어디 있는지 잘 알고 있었다. 우리 동네 제재소 뒷산 양지바른 언덕에는 도마뱀 굴이 많이 있었다. 봄철에 거길 가 보면 땅에 온통 도마뱀들이 득실거렸다.

"약속하는 거다?"

"그래, 걱정 마. 난 얼마든지 잡아줄 수 있으니까."

"고마워. 네 덕분에 내가 드디어 복수를 하나 보다."

"남자는 친구의 일에 발벗고 나설 줄 알아야 하는 거야. 신세 진다고 생각할 필요도 없어."

나는 또 그 가정 교사에게도 그런 걸 좀 넣어 주면 어떻겠느냐고 말하였다. 아르투어는 손뼉을 치며 그것 참 좋은 생각이라면서 자기가 꼭 그렇게 하겠다고 다짐했다. 사실 따지고 보면 가정 교사는 누나들보다 훨씬 더 성가신 존재인 것이다.

아르투어는 나에게도 가정 교사가 있느냐고 물었다.

"없어, 우리 어머니는 월급을 주면서 누구를 부릴 만큼 부자가 아니거든."

"넌 좋겠다. 사실 가정 교사는 돈만 많이 들고 귀찮기만 한 거야. 그 녀석들은 말로만 번지르르하게 내 실력이 올라가고 있다고 그런단 말이야. 하지만, 난 성적이 올라가 본 적이 한 번도 없어. 전번에 있었던 가정교사는 항상 우리 누나에게 시만 쓰고 있었어. 그래서 그 시를 누나 커피 잔 밑에다 슬그머니 밀어넣었지. 그래서 우리 아버지가 내쫓아 버린 거야."

나는 그 가정교사가 왜 시를 썼는지, 또 그 녀석이 시를 쓴 것이 뭐가 그리 나쁜 일이냐고 물어보았다.

"넌 그런 건 영 숙맥이구나. 그 자식이 우리 누나한테 반했단 말이야."

"너희 누나한테?"

"그래."

"세상에 그럴 수가!"

"그래도 그게 사실이란 말이야."

"믿어지지 않아."

"나도 그래. 그런데도 반했단 말이야. 그 자식은 틈만 나면 우리 누나를 멍하니 바라보곤 했지."

"어쩜 저렇게 못생겼을까 하고 바라본 게 아니고?"

"시를 썼으니까 분명 그런 건 아닐 거야."

"야, 그거 참 모를 일이다. 그치?"

"응, 어쨌든 그래서 그 자식은 쫓겨났어."

세상에 그렇게 뚱뚱하고 보기 싫은 처녀를 짝사랑해서 속을 태우는 사람도 있다니... 얼마나 어리석은 일인가. 이 세상에는 정말 내가 모를 일도 많은 모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