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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철로 접어들자 세크 네 농장에 손님들이 찾아왔다. 큰 도시에 사는 잘 사는 집 가족들이 여름을 보내기 위해 왔다는 것이다.
그 사람들이 역에서 나올 때, 나는 마침 역 앞 빈터에서 놀고 있었다. 그러나 그들을 별로 유심히 살펴보지는 않았다. 역에서 일하는 짐꾼이 그들의 가방을 부산을 떨며 옮기는 것을 무심코 바라보았을 뿐이다.
짐꾼은 그들 가족의 짐을 마차에 실어 보내고 나서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면서 말했다.
"루드비히, 너도 보았지? 저 사람들의 그 가죽 가방 말이야. 그거 모두 러시아제 가죽으로 만든 것이야. 틀림없이 돈이 굉장히 많은 사람들일 거야."
집으로 돌아오자 우리 어머니도 그 사람들의 이야기를 하셨다.
"루드비히야, 그 사람들은 큰 도시에서 온 훌륭한 사람들이고 돈도 무척 많다더구나. 그러니 길에서 그 집 사람들을 만나면 꼬박꼬박 인사를 하거라."
그 날은 가는 곳마다 큰 도시에서 왔다는 세크 네 농장 손님들 이야기 뿐이었다. 하지만 나는 그 사람들이 뭐가 그리 대단해서 야단들인지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물론 무슨 고문관이라는 그 집 아버지 비숍 씨의 생김새를 놓고 이야기하는 거라면 나도 이해할 수 있다. 그 사람의 생김새며 하고 다니는 꼬락서니가 아주 유난스러우니까 말이다.
비숍 씨는 장화를 신고 다닌다. 러시아제 가죽으로 만들어서 그런지 몰라도 번쩍번쩍하는데다, 걸음을 옮길 때마다 뽀드득뽀드득 가죽 휘는 소리가 요란하다. 그 사람이 서 있는 모습은 또 어떤가. 가느다란 다리 위에 뚱뚱한 몸뚱아리가 놓여 있다. 그 꼴이 영락없이 샴페인 술잔을 닮았다. 이 사람에겐 허리라는 것이 없다. 사방으로 둥글게 퍼진, 살찐 배 뿐이다.
단추로 억지로 채워놓은 셔츠나 조끼, 양복 저고리들은 배를 가리고 있는 게 아니고 떠받치고 있는 것 같았다. 그 단추들이 배의 무게를 지탱하지 못하고 툭 떨어져 나가기라도 하면 그 사람의 배는 마치 폭포처럼 쏟아져 내릴 것 같다. 그러면 그 사람은 무너진 배와 함께 완전히 끝장이 나겠지.
비숍씨 스스로도 자기의 배에 꽤 신경을 쓰는 모양이다. 사람들이 자신의 배를 바라보는 시선을 좀 위쪽으로 끌어올리고 싶은 생각인지, 양쪽 볼에 마치 토끼 꼬리처럼 생긴 하얗고 둥그스름한 구레나룻을 기르는 것이다. 이 수염은 바람만 살짝 불어도 하늘하늘 나부끼곤 한다.
그런데 비숍 씨의 이런 모습에 대해 이야기하는 사람은 하나도 없었다. 하다못해 그의 부인이 촐싹거리는 꼬락서니에 대해 뭐라고 하는 사람조차 없다. 비숍 씨 부인은 지금이 어느 철이라고 손에 장갑을 끼고 있었다. 그리고 질퍽한 땅바닥만 보면 비명을 지르며 치맛자락을 치켜올리곤 했다.
이들 가족은 도착한 첫날 저녁부터 동네를 이리저리 돌아다녔다. 아마 동네 구경을 하는 모양이다. 그리고 작고 보잘 것 없는 집이라도 보게 되면 그 집 앞에서 으레 오랫동안 서 있곤 했다. 그것이 동네 구경을 하는 데 있어서 꼭 지켜야 할 원칙이라도 되는 것 같았다.
그러니 그들이 우리 집 앞에서 걸음을 멈추었을 것은 너무도 당연하다. 나는 비숍 씨의 그 요란한 가죽 장화 소리가 우리 집 앞에서 멎고, 그가 이렇게 말하는 소리를 들었다.
"이 사람들은 도대체 뭘 먹고 사는지 좀 보고 싶군."
그때 마침 우리는 저녁 식사를 막 끝낸 참이었다. 나는 속으로 이것이 무척 다행스러웠다. 마음 같아서는 '이봐요, 뭐든 당신 마음대로 되지는 않을 거요'하고 소리쳐 주고 싶었지만 꾹 참았다.
그러나 그것도 소용이 없었다. 어머니가 그들을 집안으로 안내한 것이다. 어머니는 그리고 비숍 씨가 묻는 대로 저녁 식사로 순대와 쇠간을 먹었다고 곧이곧대로 대답했다. 그러자 그는 우리가 언제나 그렇게 먹느냐고 물었다. 그의 부인은 그러는 동안 우리 가족이 마치 이상한 동물이라도 되는 것처럼 안경 너머로 유심히 살펴보고 있었다.
그 안경이란 것도 제대로 생겨먹은 안경이 아니었다. 안경에 조그마한 손잡이가 달려 있어서 여느 때는 손에 들고 다니다가 필요할 때 눈에 갖다 대는 안경이었다. 나는 그 안경을 후딱 잡아채서 오그라뜨려 개천에라도 내던지고 싶었다. 그런데 어머니는 나를 불러 그들에게 인사를 시켰다.
"루드비히야, 일어나서 어른들께 인사를 드려야지."
나는 일어나서 고개를 꾸벅했다. 그러자 어머니는 나를 라틴어 학교(Gymnasium, 당시 독일의 인문계 중고등학교. 대학에 진학하여 학문을 연구할 학생들이 초등학교 4학년을 마치고 진학한다. 교육 기간은 9년) 학생이라고 소개했다.
"이제 1학년이지요. 진급할 수 있을 정도 실력은 된답니다. 라틴어 성적은 우를 맞았으니까요."
그러자 비숍 씨는 내 머리를 쓰다듬어 주면서 말했다.
"똑똑하다기보다는 아주 튼튼하게 생겼구나. 우리가 있는 농장에 한 번 놀러 오려무나. 와서 우리 아들 아르투어하고 함께 놀아라. 너하고는 동갑내기란다."
그리고 그는 우리 어머니에게 한 달 수입이 얼마나 되느냐고 물었다. 어머니는 얼굴을 붉히면서, 110 마르크쯤 된다고 대답했다. 그러자 그는 놀라운 듯이 자기 아내를 쳐다보면서 말했다.
"여보, 에밀리. 이 사람들은 한 달에 200 마르크도 안 되는 수입으로 생활을 한다는군."
"어쩜, 그럴 수가..."
비숍 씨 아내는 코걸이 안경을 눈에 갖다 대고서 우리집 식구들을 다시 한 번 살폈다. 그리고 나서 그들은 가 버렸다. 그러나 우리 집을 나서면서 비숍 씨는 한 마디 더 하는 것을 잊지 않았다.
"이 사람들은 도대체 뭘 가지고 사는지 알 수 없단 말이야. 그걸 연구해서 논문을 쓰면 아마 박사 학위 따는 건 문제도 없을 거야."